‘타도대상’으로 낙인찍힌 교복의 애환

2009.03.25 08:50:00

매년 졸업식 때가 되면 ‘전통’이나 ‘추억’이란 명목으로 낯 뜨거운 ‘졸업식 뒤풀이’가 벌어진다. 밀가루와 날계란에다 케첩, 식초, 간장까지 심지어는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 쓴 교복을 가위이나 칼로 찢는 ‘교복 환송식’이 유행처럼 돼버렸다. 그들은 교복 규제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는 것이 마치 구속의 틀 속에서 탈출하여 완전한 자유를 찾는 것으로 여긴다. 정든 교정을 떠나기가 아쉬워 선생님, 친구들과 촌스러운 기념사진을 찍고 가족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으며 섭섭함을 달래던 졸업식 날 풍경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학교생활에도 많은 자율을 도입하면서도 학생의 신분과 소속감·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서 교복은 오랫동안 학생의 공식적인 정장 역할을 해왔다. 근대화시기를 보낸 40대 이상 기성세대에게 교복은 학창시절을 기억시키는 대표 아이콘이다. 황금색 단추와 스탠드칼라의 남학생 교복, 하얗게 풀 먹인 칼라와 무릎을 덮는 긴 치마의 여학생 교복이 일반 사양이었다. 특히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상의의 칼라만 떼어 풀을 먹여 빨고 다려입는 일이 중요한 일과였다.

교복은 최초의 서양식 학교가 설립된 개화기가 시작점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시작, 그 표상이었다. 학생이라야 입을 수 있었기에 과거 어려웠던 시절, 한 번만이라도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도 있을 만큼 기성세대에게 교복은 많은 애환을 담고 있다. 예전에 고급 의상은 모두 맞춤복이었고, 생애 첫 맞춤복은 당연히 교복이었다. 학창시절은 일생에서 몸이 가장 빨리 자라는 시기라서 부모님들의 주문에 의해 교복은 실제 체격보다 훨씬 넉넉하게 맞추어야 했다. 따라서 보통 바지나 소매를 한두 번 접어 입고 다니다가 철이 바뀔 때마다 닳아버린 단을 펴가며 입어야 했다. 대개는 한 벌로 3년을 버텨야 하는데도 재단사는 몸의 구석구석 치수를 왜 그토록 정확하고 진지하게 쟀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개화기 이후 정부의 평준화 시책에 따라 두발 제한과 함께 교복의 색상과 디자인을 전국적으로 통일시켰다.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중·고등학생을 마치 군대처럼 ‘개성 없이’ 획일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이때부터 교복은 학생들의 반발 대상이 되어 졸업식이 끝나는 대로 밀가루를 집어 쓴 채 갈기갈기 찢기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그 후 교복은 일제의 대표적인 잔재로 취급되어 1983년 교복자율화 조치와 함께 대부분 폐지되었다. 이는 개화기 배재학당 학생들이 최초로 교복을 입기 시작한 이후 85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교복 폐지 이후 사복 착용에 따른 과소비, 빈부계층간의 위화감 조성, 생활지도 등의 문제로 학부모와 교육계가 그 필요성을 실감함에 따라 또다시 교복착용이 대세가 되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종래의 교복이 소속감 고취나 통제를 위해 획일적이고 딱딱한 모습이었던 것과는 달리 학교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심미성과 기능성이 부가되었다는 점이다. 교복이 신분에 따른 위화감과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고 교내외 생활지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학생의 인권과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요즘처럼 다양하고 자율화된 시대에, 교복을 꼭 입혀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여전히 찬반논쟁이 뜨겁다.

과거 가난하고 학생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때, 한 번만이라도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학생의 오랜 ‘공식 정장’이자 ‘교육용품’인 교복이 신세대들에겐 규제의 상징으로써 ‘타도대상’으로 낙인찍힌 존재가 되었다. 최근 들어 학생복에 걸맞지 않은 고품질과 높은 가격, 변형교복, 도덕성을 잃은 과열판촉 등 사회적으로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키는 교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할 차례가 아닌가 한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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