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서두르면 그르친다

2009.07.29 18:16:00

‘이해찬 세대’란 말이 있었다. 1983년생으로 2002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을 말한다. 1998년 당시 교육 수장이었던 이해찬 장관은 ‘2002학년도 대학입시 개선안’을 발표했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폐지하고 특기·적성 교육을 강화하여 한 분야만 잘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했다.

이해찬식 교육 정책은 점수 경쟁과 사교육으로 얼룩진 교육 현장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인 조치였다. 문제는 소질과 능력을 중시하는 교육이 ‘공부 안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불러 일으켜 전반적인 학력저하 현상으로 이어졌다. 특기·적성 교육을 할 만한 교육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폐지되자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방황했다. 게다가 특기·적성으로 뽑아야할 대학은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전히 성적으로 줄을 세웠다.

이미 이해찬식 교육 정책의 실패를 맞본 교육계로서는 최근 대통령까지 나서 아직 명칭도 생소한 입학사정관제를 마치 교육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인 듯 밀어붙이고 있어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전 한 라디오 방송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임기(2012년) 안에 100% 가까운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 학생들을 선발할 것이라고 했다. 정권 출범과 함께 입시는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사실상 지난해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시작 단계이니만큼 전체 4년제 대학 정원인 35만명 가운데 1% 남짓한 4555명을 선발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입학사정관제 도입 대학이 급격히 늘어나 47개 대학에서 2만 690명을 선발한다. 이는 전체 4년제 대학 정원의 6%에 해당한다.

선발 인원이 증가한 만큼 입시 업무를 담당할 입학사정관도 늘어야 당연하지만 전년도 203명에서 올해는 360명으로 고작 157명 증원하는 데 그쳤다. 그것도 정규직이 아니라 대부분 계약직이다. 그러다보니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인원은 4배 이상 늘었으나 이를 담당할 입학 사정관은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쳐 올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전년도보다 더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입학사정관 혼자서 수 백명 많게는 수 천명의 지원 서류을 검토하고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의 잠재능력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이라고 해서 면접만으로 선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1단계는 대부분 학생부 성적으로 일정 배수를 선발한다. 그리고 2단계에서는 수능, 논술 등 객관적인 근거를 핵심 자료로 활용한다. 그러니 무늬만 입학사정관제지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입시 전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해서 특별히 준비하는 학교도 손에 꼽을 정도다. 교사들도 입학사정관제를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니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은 입학사정관제가 정착되기까지 100년이 걸렸고, 이웃나라 일본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정착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지 기껏 2년도 채 안된 나라에서 앞으로 3년 안에 100% 가까운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 학생들을 선발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입학사정관제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제도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교육 정책이라도 서두르면 그르치기 십상이다. 입학사정관제는 객관적 수치가 아닌 학생의 가능성을 보고 선발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격하게 선발 비율을 늘리기 보다는 적은 인원이라도 공정하게 선발하고 있다는 인식부터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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