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 지나 더위가 한풀 누그러지겠지 하던 때 늦더위가 아쉬웠던지 경상도 밀양의 기온이 38도를 넘어섰다는 보도는 올 여름의 절반이 비오는 날 아니면 구름 낀 날로 해수욕장의 경기를 어둡게 했던 서운함의 보상이라도 하듯 더위가 기성을 부리고 있다.
가까운 남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찾아 아이들에게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발자취를 모색해 보기로 했다. 8월 둘째 주 금요일 주말이라서인지 그다지 길이 막히지 않았다,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며 양평의 들녘도 전원의 아름다움도 도시 생활에 찌른 화이트 컬러나 블루 컬러에게나 마음을 확 튀어 주는 느낌이었다. 시골 출신이라 시골에 살 때는 도시에 사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도리어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은 인간의 생활이 환경의 영향에 따라 바뀌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전원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와 그의 묘의 아름다움은 찾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고, 세사에 찌들인 현대인의 물질주의 정신을 뜨거운 말복 더위에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그의 예리한 눈매와 꼿꼿한 선비정신의 날카로움은 부정과 부패에 찌들려 고통받는 이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유배 생활에서도 변함없이 쓴 500여권의 서책이 오늘을 사는 학도들에게 배움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어지러운 세태를 살았지만 그것에 편승해서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려고 하지 않았고, 자연이 주는 순수 그대로의 본질을 바라보며 살아가려 했던 그의 내면의 검약과 소탈함은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죄를 원상회복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고, 후대에 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멈출 줄 모르게 했다.
다산(茶山)이라는 호의 특징도 눈여겨 볼 수 있다. ‘다’에는 많을 다자가 아니라 마시는 차 다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호를 지을 때는 그 사람의 특징을 고려해 짓는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의 호를 보아도 운암 이승만, 거산 김영삼, 동초 김대중 대통령 등의 호는 그 사람의 현재의 특성과 미래를 내다보는 면이 있다. 호는 자기의 호를 스스로 짓는 일은 없다고 한다. 정약용의 호가 다산인 것도 그가 너무 자주 차를 많이 마신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문학가 꽁초 오상순의 호도 마찬가지다. 오상순은 담배 꽁초를 늘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줄담배를 피운다는 뜻에서 나왔다. 이처럼 다산 정약용의 호도 차를 마시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버릇이 만성화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생각의 깊이를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했다는 의미다. 잠시 휴식을 취할 때에도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생각의 깊이를 찾아가는 여유. 그것을 배움으로 전해주는 것 같았다.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펼쳐지는 주변의 이름다운 정경이 마치 정약용의 생가를 이끌어 가는 물줄기인 양, 그의 품안으로 모여지는 물줄기의 소실점이 생각의 여울을 갖게 했다. 한 인물의 역사적 조명은 그의 저서를 통해서, 여유당이라는 그의 은거지를 통해서, 후대 사람들에게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명상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은 아닐지. 양평에 민물고기생태연구소도, 그가 물고기의 연구를 위해 남겼던 업적의 부산물은 아닌지. 참으로 그의 이미지가 양평을 새로운 명소로 만들게 된 것도 그의 끝없는 노력의 결과물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한 인물의 외모는 한 줌의 재로 사라졌어도 한 인물이 남긴 길고도 긴 그의 정신적 신장은 계속 성장을 멈추지 않고 치솟고 있다. 교사가 한 인물을 길러내어 명사로 만들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큰 힘이 후대에 펼쳐지게 되는 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것도 교사의 직분의 위대함을 정약용은 예리한 눈매로 다시 한번 이심전심으로 전해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