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모사’와 ‘성대묘사’

2009.09.21 14:46:00

KBS 1TV에 ‘반갑습니다. 선배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스타의 모교를 찾아가서 학교 다닐 때를 회상하고 후배에게 용기와 꿈을 주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지난 9월 17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는 동명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출신의 개그우먼 김신영 편이 방영되었다. 김신영은 데뷔 초부터 각종 패러디를 통해 현란한 몸 개그와 코믹한 분장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또한 성대모사를 잘하는 개그우먼으로 통한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타가 학교에 찾아오니 어린 학생들은 마냥 좋다. 또 스타가 같은 학교 출신이라니 더욱 애정이 간다. 이날도 모교에 등장한 김신영은 학교 다닐 때 말썽부리던 이야기까지 진솔하게 고백함으로써 재학생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특히 이날 공개된 김신영의 학교생활기록부는 압권이었다.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는 기록이 여기저기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특기를 살려 우뚝 선 김신영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화면에 크게 확대되어 나온 김신영 학교생활기록부에 3학년 취미 특기 사항에 ‘성대묘사’라고 써놓은 것이 보인다. 아마도 김신영의 재능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있었나보다.

하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 표기된 ‘성대묘사’는 ‘성대모사’의 잘못이다. 우선 사전을 검색하면,

‘성대모사(聲帶模寫)’
자신의 목소리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나 새, 짐승 따위의 소리를 흉내 내는 일.
- 성대모사를 잘하다.
- 역대 대통령 성대모사와 흘러간 유행가 모창이 그의 장기이다.

아울러 ‘묘사’와 ‘모사’의 차이점도 살펴보면,

‘묘사(描寫)’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 따위를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표현함. ‘그려 냄’으로 순화.
- 심리 묘사/상황 묘사/사실에 바탕을 둔 충실한 묘사/생생한 현장 묘사
- 그 소설은 주인공의 성격 묘사가 뛰어나다.

‘모사(模寫)’
1.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림. 또는 그런 그림.
- 그는 초상화를 모사에 불과하다며 한사코 그리지 않았다.
2. 원본을 베끼어 씀.
3. 어떤 그림의 본을 떠서 똑같이 그림.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이 목소리가 독특한 사람의 흉내를 내면서 ‘성대묘사’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묘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낸다는 뜻이다. 이는 ‘심리 묘사/인물 묘사/외양 묘사’로 많이 쓴다.

어떤 사람이나 새 또는 짐승의 소리를 모방하는 일은, 그대로 사진을 찍듯이 그려 낸다는 뜻으로 한자의 ‘본뜰 모(模)’자를 써서 ‘성대모사’라고 한다. 이는 사전에도 단독으로 올라 있는 단어다.

만일 ‘성대 묘사’라고 하면(이 때는 띄어 써야 한다.), 이는 발음기관인 성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표현해 낸다는 뜻이다.

이번 ‘성대모사’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 오류 건은 안타까운 면이 많다. 학교생활기록부는 개인의 학교생활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다. 50년 이상 보관되는 자료다. 정서법이 무제가 있으면 안 된다.

과거와 달리 최근 방송에서는 스타가 개인 정보를 여과 없이 공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 때 생활기록부 등이 공개되는데 그 속에 치명적인 맞춤법 오류가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선생님들이 세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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