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다’, ‘집히다’와 ‘짚이다’

2009.11.02 23:12:00

‘지피다’, ‘집히다’와 ‘짚이다’는 각 철자가 다르다. 그러나 ‘집히다’는 발음 과정에 ‘ㅂ’과 ‘ㅎ’이 ‘ㅍ’으로 축약되어 발음된다. 결국 세 단어는 철자가 다르지만, 발음이 [지피다]로 하나다. 그러다보니 세 단어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각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지피다’
아궁이나 화덕 따위에 땔나무를 넣어 불을 붙이다.- 군불을 지피다.

‘집히다’는 ‘집다(연필을 집다./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다.)’의 피동사로
1. 손가락이나 발가락으로 물건을 잡아서 드는 상황.- 손에 물컹한 것이 집혔다.
2. 기구로 물건을 마주 잡아서 드는 상황.- 핀셋에 집힌 솜을 병에 넣었다.

반면, ‘짚이다’는 동사로 흔히 ‘짚이는’ 꼴로 쓰인다.
헤아려 본 결과 어떠할 것으로 짐작이 가다.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짚이는 바가 없다.

이상 정리한 내용을 근거로 주변에서 활용되는 표현을 열거해 보면,

○ 장작불을 지피다.
행정도시 수정 추진 논란 등 복잡한 정국에 불을 지폈다.
유럽과 미국 주식시장이 급등세로 돌아선 점도 구리 매수세에 불을 지폈다.
○ 편지 한 통이 내 손에 집혔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둥글둥글한 물체가 손에 집혔다.
침도 많이 흘리지만 입안으로 손에 집히는 물건을 무조건 가져갑니다.
○ 앞으로의 남북관계의 행보는 명확하게 짚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태도는 원인 진단이 쉽지 않지만 짚이는 데가 있다.
추천작을 한 편 이상 들고 심사장에 나서야 했으나, 작품이 선뜻 짚이지 않았다.

라고 쓴다.
이 중에서도 ‘지피다’와 ‘집히다’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거나, 특정한 상황을 부각시키는 현상을 말할 때, ‘불을 지피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지피다’를 써야 할 자리에 ‘집히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 아래 예문이 그렇다. 특히 아래 예문은 언론 매체에서 따온 글이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 최고 인기 모델 자리를 두고 경쟁 그 뒤를 뉴SM5가 3.1%, 투스카니가 2.8%를 기록하며 인기 중고차 경쟁에 불을 집혔다.
○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댄서 4명과 함께 원더걸스의 의상과 안무를 똑같이 흉내 내 ‘So Hot’의 인기에 다시 불을 집혔다.
○ 경쟁력 약화 및 수익성 악화, 그리고 모바일 고객 접점을 활용한 비즈니스모델의 급부상 등이 노키아의 변신에 불을 집혔다.

언어 규범의 통일과 전파는 학교 등의 공교육 기관을 통해서 하고 있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은 전파력이 큰 매체이다. 따라서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의 언론 매체도 교육 효과가 크다. 이런 의미에서 언론 매체의 잘못된 언어 표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바른 언어 사용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공부를 하고, 바른 언어 표현에 앞장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방송은 이념의 편중과 막말 방송 등으로 국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기회에 올바른 언어 정책에 앞장서서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면 어떨까? 오늘날 언론 매체가 국민에게 즐거움과 교육적 기능을 함께 한다는 의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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