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방송을 기다린다

2009.11.18 11:29:00

지난 11월 9일 KBS 2TV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 캠퍼스 퀸 특집에서 한 여대생이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네티즌이 분노를 하고 있다. 급기야 한 일반인은 “키 발언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KBS를 상대로 1,000만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제출했고, 첫 조정 신청 이후 계속해서 정신적 피해 보상의 요구가 뒤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에 루저 발언을 했던 여대생은 “프로그램 측에서 요구한 대본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고, 제작진 또한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의도된 것이라는 인식이 짙다. 출연자가 밝힌 대본 문제도 그렇고, 그대로 자막처리까지 한 것으로 보아 자체 심의 의도가 없었다. 실제로 당일 방송은 시종일관 편견과 왜곡을 학습을 시간이었다.

‘미수다’뿐만 아니다. 최근 우리 텔레비전은 예능프로라며 알맹이 없는 전파를 보내고 있다. 출연진이 나와서 사담(私談)을 늘어놓고, 준비된 대본에 따라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한다. 주제도 없는 이야기에 정제되지 않은 언어 표현이 난무한다. 출연자는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막말을 하고, 비속어와 반말을 한다. 방송 내용도 진지함은 없다. 천박한 질문에 천박한 대답이 오고 간다.

주말 황금시간대를 장악한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지면 먹기 힘든 음식을 먹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면 제작자는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는다. 강제로 물에 밀어 넣고 추위에 떠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가학적인 게임, 복불복 게임 등 필요 없는 전파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드라마도 위험 수위를 넘었다. 불륜 관계는 기본 설정이다. 초저녁 시간대의 속칭 가족 드라마도 이상한 부부 관계, 이상한 연인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게다가 이른바 막장드라마는 인륜을 저버리는 설정부터, 치정 싸움에 여차하면 폭력으로 치닫는다.

이를 두고 점잖은 사람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끄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텔레비전 앞에 앉고 싶은 것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즐기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안방에다 텔레비전을 놓는 것은 그에 대한 최소한의 실현 방법이다.

무턱대고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우리가 매달 시청료를 납부하는 데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배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에 따라 방송국은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고, 우리는 당연히 텔레비전을 볼 권리가 있다. 더욱 방송은 공익사업이다. 대중의 건전한 의식 확산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충실한 정보 전달과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은 구성도 특별한 것이 없이 비슷비슷하다. 출연자도 개그맨이든 가수든 연기자이든 말만 잘하면 여기저기서 고정 패널로 등장한다. 그들은 방송을 위해 공부하는 것도 없는 듯하다. 거침없는 화법에 입담만 걸쭉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텔레비전은 저속하다 못해 잔인함이 느껴진다. 당장의 시청률에는 안전장치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방송 발전에는 도움이 안 된다. 국민 정서를 헤치고 시청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출연하는 연예인에게도 성취감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 방송 하드웨어 발전까지 저해한다.

프로그램 내용의 좋고 나쁜 것에 대한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고, 사회적 통념도 고정된 것은 아니다. 또 최근 오락프로그램이 근엄한 틀을 깨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안방을 편안하게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역 효과가 나듯, 일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정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방송국은 지금부터라도 우수한 문화 콘텐츠 개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세부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주제와 구성은 물론 진행자와 출연자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일 년 내내 새로운 방송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각본도 없이 말장난을 하면서 노는 내용은 방송으로 적합하지 않다. 허무한 웃음보다는 감동이 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각박하다. 텔레비전이라도 우리를 감싸주지 않으면 힘든 세상이다. 이 시대에 따뜻한 영상 언어를 통해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송을 기다린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납덩이처럼 무거운 일상을 내려놓을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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