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학생부 하면 정문지도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무서운 단속이 그 다음으로 내 마음에 잠재해 있음을 지금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작 학생과에서 학생을 지도하면서 느껴본 결과 의외로 정문지도가 학생들의 인성교육의 바로미터가 됨을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정문에 서서 교복을 잘 입고 오지 않는다고 학생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리고, 지각생을 붙잡고 벌을 주는 차원에서 벗어나 먼저 학생들이 교사에게 인사하는 법부터 바로 가르쳐 주는 방안이 선행돼야 바른 교칙 의식이 학생들의 내면에 자리잡을 것임을 느끼게 했다. 정문지도에서 나타난 학생들의 다양한 행동은 담임을 통해서 지도하게 하고, 학생부에서는 기본생활습관이 바로서는 학생상을 정립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학생생활지도가 정문지도에서 시작되는 것은 학생의 바른 행동을 습관화시키는 강화에 따른 것이다. 교육심리학에서 스키너의 행동수정이론은 정문지도에서 가장 잘 적용되어 그 효과를 창출해 낼 수 있다.
매일 아침 정문지도에서 느끼는 학생들의 바른 인사지도는 그 효과가 재빠르게 나타난다. 교사가 지나가면 인사부터 할 줄 아는 그런 학생상이 눈에 뜨이게 늘어감을 눈여겨 볼 수 있다. 학교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어 올바른 자아를 형성시켜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도록 의도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교육의 한 측면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꾸준한 학생들의 바른 인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한 가지 교육은 정문지도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정문지도가 기존의 학생부의 지도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변해가는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학생들은 통제를 더욱 싫어한다. 심지어는 학부모조차도 그렇다.
학교가 인성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게 하도록 학생부는 정문지도 방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럴 때 학생들은 학생부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교복을 바르게 입고 있지 않다고 무조건 지적할 것만도 아니다. 교무실에 들어오는 학생을 바로 교육시키고, 담임이 반 학생을 바르게 교육시킬 때 학생들은 복장에 대해서 바른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학년 교무실에서나 학급에서나 학생들이 아무렇게 해서 들어와도 그냥 보고만 있는 상황에서는 학생부의 복장지도 정문지도 효과는 역효과만 창출할 뿐이다. 학생들이 표현하는 언어를 듣고 있노라면 어떤 때는 역겨울 정도다. 바른 말씨는 이미 학생들의 마음에는 없는지 표현하는 말에는 비어 투성이다. 게다가 은어까지 쓰는 여학생들의 말씨를 듣고 있노라면 여학생과 남학생의 구별은 이제 없는 듯하다.
이런 사례들을 듣고 학생지도의 방향을 구상해 보면 인성지도가 가장 급선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사를 교사로 보지 않고 친구를 친구로 보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볼 여유조차도 없는 오늘날의 학생에게 정작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 있는 인성교육의 장이다. 예전에 한국교육신문에 도덕 교육은 필기시험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기고를 한 적이 있다. 도덕 교육이 죽었다고 쓴 사이버 모 기자분의 말이 다시금 도덕 과목 평가에 대한 경종을 울리게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인성교육은 몇 점인가 하는 물음에 나는 거침없이 100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는 교사는 과연 얼마나 될까? 나의 수업시간에는 어떤 학생도 바른 말을 쓴다. 비속어는 귓속말로도 쓰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한국에 교사들은 몇 명일까? 이 질문은 교사들을 폄하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평가하면서 살아가는 한 교사로서 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한 학교만이 처한 상황이 아니기에 하는 소리다.
바른 인성교육은 바른 정문지도에서 학생들의 행동을 고쳐 나갈 때 학생들의 마음에는 웃어른이 교사임을 알게 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