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문학 행사가 있지만 동시 낭송회는 처음 들어본 터에 참석까지 하게 되었다. 인천의 아동문학단체인 ‘서해아동문학회’가 연례행사로 치루는 동시낭송회가 26일 인천시 장수동 청소년 수련관에서 개최되었다. 얼마 전에 ‘서해아동문학’지에 실을 동시를 보내달라는 원고청탁을 받고 예전에 써두었던 동시 두 편을 보냈는데, 그런 연고로 이번 동시 낭송회에 나도 낭독자의 한 사람으로 초대되었던 것이다.
마침 방학이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 행사 장소로 갔다. 청소년회관 관장이 시인이어서 그런지 회관 경내엔 조병화, 이육사, 이상 등 여러 시인의 시화 액자가 내걸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본관 로비로 들어서니 수많은 시화가 질서정연하게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린이들 작품부터 기성시인들의 작품까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작품부터 80대 노시인의 작품까지 같은 크기의 액자에 아담하게 담겨 행사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행사 개최 테이프 커팅이 있고 난 후 우리는 모두 별관 지하에 있는 소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로부터 80대의 원로 문학가, 각 학교 선생님, 학부모 등 육칠 십여 명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시간이 되어 낭송회가 시작되었다. 행사장 앞 대형 화면에 컴퓨터에 연결된 시화가 비춰지고 컴퓨터 조작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하나씩 하나씩 동시 낭송이 이어져 갔다.
80대의 노시인이 하모니카를 들고 나와 윤극영의 ‘반달’을 멋지게 불러재끼는가 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자작 동시를 낭송하고 이어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자작동시를 낭송하는 등 행사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행사의 의미를 더한 것은 모두 다 한결같이 자작시를 낭송했다는 점이다. 평소에 동시를 쓰지 않는 기성시인들까지 모처럼 써본 동시를 들고 나와 아주 진지하게 낭송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나도 모처럼 써본 동시를 낭송했다. 스크린에 비친 나의 동시를 보며 잔잔하게 읽어나갔다.
형광등
햇빛 들이치는 교실에서
들려오는 외침소리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 주춤하며 교실을 들여다보신다.
졸린 눈 껌벅이며 하소연 하는 목소리
“교장 선생님 졸려요. 잠 좀 자게 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얼른 형광등을 꺼주시는 교장 선생님
아이들 운동장에서
열심히 볼을 차는 동안
텅 빈 교실은
지그시 눈 내리감고 비로소 잠이 든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낭송을 하고 인사도 하지 않고 들어와 얼마나 쑥스럽던지. 서해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오랫동안 회장을 맡아왔던 장현기 고문은 인사말을 통해 ‘요새 아이들이 도시의 거리, 골목에서 배울 것이 점차 없어지는 때에 아이들의 순수한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이런 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고 격려했다.
한편 동화작가 김수영씨의 동화구연은 단연 돋보였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어린시절 이야기’라는 창작동화를 대형화면 삽화와 함께 아주 낭랑하고 멋지게 낭송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란 것은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어린이들이 낭송한 창작동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두 편만 소개한다. 새말초 3학년 김명균 학생과 인수초 2학년 이가현 학생의 동시다.
할아버지 선물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사주셨다
할아버지 돌아와 주세요.
식구들이 할아버지를 기다려요.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그립다.
할아버지가 사 주신 자전거
아무도 안 주고 싶은데
엄마가 억지로 주라고 한다.
엄마가 얄밉고 나쁘다.
할아버지 하늘나라에서도
울지 말고 씩씩하게 힘내세요.
-김명균
아프던 날
두부 사가지고 가다가
데굴데굴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앞집 할머니
“애 엄마, 빨리 나와 봐!”
엄마가 깜짝 놀라 뛰어나왔다.
일곱 살 때
데굴데굴
또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언니와 아이스크림 먹으며 뛰어가다
눈 밑에 코가 찢어져
병원에 갔다.
굴러 떨어진 흔적이
지금도 상장처럼 남았다.
-이가현
행사가 끝난 후 우리는 기념촬영을 하고 주체 측에서 마련한 콩국수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어떤 모임보다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낭송회였다. 동시는 시의 원류라 할까, 시의 근원이라 할까. 모든 시는 동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시작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쓸 수 있다. 다만 어린이처럼 해맑은 마음을 간직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이 동시이기도 할 것이다. 행사의 말미를 장식한 것은 문학회 현금순 부회장의 강연이었다. 시를 쓰다가 동시를 쓰게 된 에피소드를 소개해 힘찬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가한 여름방학 모처럼 즐겁고 뜻 깊은 행사엘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