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기행

2010.10.11 10:14:00

모처럼 제1회 내신고사 중 시간을 내어 백령도 유람을 떠났다. 주5일제 토요일이 끼어 있어 학습에 새로운 자료를 수집하는 데도 좋은 시간이었다. 인천에서 백령도까지 5시간이 소요되었다. 백령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관사에서 숙식을 해결한 덕분에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다.

배를 탈때부터 군인들이 부두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에 거주하는 군민이 약 3천 여 명이나 된다고 하니 군인이 없는 백령도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은 당연했다. 백령도에 내리자 군인들은 더 많았고, 곳곳에 보이기 시작한 진지는 백령도 천안함을 더욱 선명하게 연상해 주는 듯 했다.

첫날은 관사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백령도 관광버스를 타고 유람을 하였다. 기억에 선하게 남는 것은 바닷가 천연의 비행기장과 홍돌 또는 콩돌이라고 하는 작은 돌멩이들로 이루어져 있는 해안이 인상적이었다. 천연의 비행장은 큰 대형버스가 달려도 마치 포장도로를 달리는 듯 하였고, 콩돌은 마치 효녀 심청이가 몽은사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쌀알 3000석을 이 바닷가에 부어 그 흔적을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의 잔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밑을 파 보았다.

그래도 콩돌만 계속 쏟아져 나왔다. 만져보아도 부드럽고 쳐다보고 있어도 눈부신 돌멩이의 빚을 받으면서 할머니가 파는 막걸이를 들이키니 수평선 너머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추억의 상념들이 안개와 더불어 잠시 망아의 경지에 빠지는 듯 했다.

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로 간 곳은 천안함이 침몰하여 함미를 건져올린 곳이었다. 불러도 대답없는 가신 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마련된 현수막이 아직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안함의 함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바닷가 푸른 물은 말없이 잔잔하기만 했다. 슬픔을 달래는 시간도 잠깐 버스는 다시 심청이의 효녀각을 찾았다. 푸른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효녀 심청이 조각상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심청이 몸을 던진 장삿곶에 바라보았다.

남과 북을 이어갈 수 있는 장삿곳 그곳의 물살은 너무나 거칠어 당시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버뮤다 삼각지를 연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기에 장삿곶을 지나는 뱃사람들은 항상 이곳을 지날 때면 용왕님의 혼을 달래기 위한 미명으로 죄없는 처녀를 사서 강물에 던졌다고 하니 오늘날 과학의 힘으로 이 신비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대의 발달에 차이가 있기에 인간은 저마다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지혜가 달랐을 뿐이다.

백령도는 사방이 바다라 사실 바다를 대상으로 사람들이 살아갈 것으로 추정했으나 이곳에 거주하는 70% 사람들은 농사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바다를 메워 농지가 많이 확보된 까닭에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그리 나쁘지도 않다고 한다. 백령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고부장님의 안내로 이곳 명승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교감 이희용 선생님의 차편을 이용해 여러 곳을 쉽게 갈 수 있어 백령도를 찾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 학생들의 생활과 학습 그리고 교사들의 생활상도 잘 알 수 있게 되어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서 1박 2일의 시간을 보냈다. 
조기철 인천 초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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