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적선(積善)돼야
신묘년의 음력설이 지났다. 신년에는 웃어른과 스승을 찾아다니며 덕담을 듣곤 한다. 또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어른은 아이들에게 덕담을 건넨다. 이런 것들이 다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루어진다. 이처럼 사람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은 어려움을 만나면 슬기롭게 용기있게 넘어가도록 하는 기원의 힘이다. 그러기에 신년의 말에는 적선으로 가득차야 한다. 입학하는 아이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학교에서 새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은 말을 통해 적선을 베풀게 된다. 가르침이 적선이다. 그 배움의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마음에 축적해 나가는 인생은 한 해의 삶이 밝아지는 것이다.
사람의 운을 바꾸는 것에는 6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적선이다. 사람이 남에게 물질적으로 적선을 베풀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적선을 베풀 수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베푸는 적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많은 말에 포함돼 있는 좋은 구절은 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정신적인 적선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교사는 말을 통해서만 한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남모르게 뒤에서 한 인생의 길에 깊은 기도를 통해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설계해 보도록 이끌어 준다. 이것도 바로 교사가 하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6가지 중에 명당과 사주를 빼고는 교사가 다 지니고 있다. 적선, 기도, 독서, 사주, 스승, 명당 등이 인생을 바꾸는 용어들이라고 혹자는 말하곤 한다.
교사는 교직의 오랜 경험을 말로써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 학생과 스승 사이의 긴 인연을 맺는 역할을 한다.
말이 많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말이 적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말이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했던가? 말을 통해 베푸는 적선이 학생과 스승 사이를 1차적으로 관계정상화의 길로 이끌어 가는 매체가 아닐까? 그러기에 적선은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 묻지마 형식으로 내뱉는 말은 궁극적으로 학생과 교사 사이를 갈라놓는 앙금으로 남게도 되고, 정선된 적선의 말은 교사의 위상을 한층 드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학생이 적선의 말에 무반응을 보여도 교사는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을 이끌어 갈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입장에서 그들의 용어에 맞는 말로 이끌어 가는 최선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동안 교사는 말의 한계가 곧 교사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교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침없는 말은 체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체를 통해 걸러지는 것만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만 교수·학습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