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일어나고 있는 교육계의 사건 사고를 조용히 관조하고 있노라면 교육계가 서산의 석양처럼 힘없는 태양의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학생이 있기에 발랄하고 생기있어 교실이 떠나갈 뜻하고, 교사의 학생 지도 소리에 校舍는 언제나 동력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제는 교사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학생들의 시끄럽고 방만한 목소리가 학교의 위층 아랫층의 구별도 없이 구르는 바위 소리처럼 들리고 있을 뿐이다.
정문에서 외치던 학생부장의 목소리는 어디에 갔는가? 운동장에서 훈시하던 교장의 목소리는 어디로 숨어들고 있는가? 교실에서 열정적인 신임 교사들의 목소리는 책속에 잠들고 있는가? 오늘의 사건 사고가 학교 현장에서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최근에 교육계에서 터져나오는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태도는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태도 또한 사회적인 도를 넘어 법적인 단계에 들어서지 않고는 학교의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 지 의심이 갈 정도다.
아무리 교권이 추락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배움의 장소가 학교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배움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어느 모 잡지 표지에서도 보이듯 배움이 필요한 자가 배움을 청하는 자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비어를 예사로 사용한다면 이것은 제재 차원을 넘어 준엄한 심판을 받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교사의 수업이 학생의 만족도에 미치지 못한다고 교사 평가를 시행한다고 하나 그 시행이 정당하지 못하게 평가되었을 때는 교사의 합당한 소원을 받아들여 재평가를 하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요즘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시대가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신임 교사까지도 학생들의 눈치를 보면서 회초리 들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지도한다고 밤늦게까지 남아서 상담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닌 현실을 수필을 쓰듯 인생의 머나먼 상상의 추억 속으로 떠나보면 내 과거 초년기 교사 시절의 그 열정은 어느 여름에 다 태워 버렸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왜 열정은 부활을 꿈꾸지 못 하는 지. 오늘은 복고풍의 시대가 다고오고 있다고 저마다 웰빙을 찾아 헤매는데 왜 교육계는 웰빙을 찾아 방황하지 못할까?
석가가 수없는 날들을 헤매면서 고행 끝에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먹어야 산다는 평범한 진리가 아니었던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를 만들어 내어 부강한 나라를 세운다 하여도 인간이 인간을 배신하고 웃어른을 바로 구별할 줄도 모른다면 그것은 패륜아와 다름없는 것이다.
바른 교육은 바른 인간으로서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도덕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데에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창의적인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이 꼭 회초리를 들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초리가 필요악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자타가 공감하는 바다. 회초리를 들되 손바닥과 종아리 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때리지 못하는 그런 방안이 모색되면 모르겠으나, 교사가 회초리로 종아리를 한 두 대 때렸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생각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