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굴곡도 아름답다

2012.09.17 11:41:00

인생은 고행(苦行)이라고 한다.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삶은 쉽지 않다. 세상의 길은 거칠고 험하다. 삶의 소소한 순간도 늘 흔들리며 간다. 개인이 몸만으로 그 길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경제적 어려움도 밀려오고, 뜻하지 않은 불행도 만난다. 인간이기에 생기는 증오, 질투, 불신, 냉담, 탐욕이 마음을 휘젓고 삶을 흔든다. 상황에 따라서 마음을 추스르며 극복할 경우도 있지만,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길이 없을 때도 많다.

사람들은 당당하게 살아가는 듯 하지만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도 요즘 부쩍 삶의 고통을 지고 있다. 우선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치매가 벌써 다섯 해를 넘었다. 그런데 요즘 그 증세가 심하시다. 아내와 나도 걱정스럽지만 함께 사시는 어머니는 매일 가슴을 적시고 계신다.

아내도 몸이 말이 아니다. 비가 오면 몸이 쑤신다고 힘겨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평생 청년 같은 몸일 줄 알았는데, 어깨며 허리로 손이 자주 간다. 해를 거듭할수록 먹는 약도 많아진다. 두 녀석은 어떨까. 입 밖에는 내지 않지만 저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

운전 중에 라디오를 자주 듣는다. 그중에 청취자와 전화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결된 사람들은 사연이 깊다. 어제도 서른여섯 때 혼자된 아주머니 이야기가 울컥 눈물을 쏟게 한다.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혼자 3남매를 키운 이야기였다. 이제 마흔을 넘긴 가장이 고치기 힘든 병에 걸렸는데, 아내마자도 극복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스물도 안 된 두 딸이 병원비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는 이야기다.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내 한쪽 가슴이 미어져 온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그치질 안는다. 그들의 삶에 닥친 불행이 눈물을 흘리게 할까. 나는 그들을 덮친 불행도 안타깝게 느끼지만, 그들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픔과 몸 부비며 살아가는 눈물겨운 삶이 나를 감동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상에 살아가자면 눈물 날 일이 많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봄철에 씨를 뿌리듯 슬픔도 묻어두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가꾸어 간다. 불평도 없다. 포기할 줄도 모르고 걸어간다. 겉으로 보기에 금방 포기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감동을 준다. 팔다리가 없어 먹고 입고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람이 초인적인 능력을 보인다. 다리가 없는데도 온 힘을 다해 달리면서 지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어머니가 고통을 받아들이시는 것도 고개가 숙여진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치셨을 때 나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해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를 지키셨다. 나와 아내는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자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를 돌보신다고 의지를 보인다. 당신도 오랜 질병으로 몸도 쇠약하신데,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치매를 병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당신이 감당해야 할 운명으로 생각하신다.

불행은 우리를 힘겹게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불행을 밀어내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적으로 꾸며 대응하고 산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존재다. 우리가 보기에 불행한 사람처럼 보일뿐이지 그들은 절대로 불행하지 않다. 행, 불행을 따질 겨를도 없이 그들은 자신의 삶을 향해 뜨겁게 가고 있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나를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단 한번 뿐인 인생을 뜨겁게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이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심상사성(心想事成)이라는 말이 있다.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처럼 우리의 세상살이는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불행이란 것도 어느 것이 불행인지 엄격히 가리기 힘들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것을 가리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삶이란 이유도 해석도 붙일 필요가 없다. 그저 살아야 한다. 경험해야 한다. 이것저것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생각으로 소중하고 신비로운 삶을 낭비하는 꼴이다. 머리로 살지 말고 온몸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삶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다. 오직 현재다. 열심히 사는 것이 진리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때그때 한번뿐인 새로운 삶이다. 이 한번뿐인 삶에 쓸데없는 고민으로 허비한다면 이것이 불행이다. 갑자기 다가온 불행을 한탄하고 원망만 한다면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서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산에 오르면 몸이 뒤 틀린 고목을 보게 된다. 혹독한 바람과 추위를 이기지 못해 몸까지 굽어진 것이다. 그러나 고목은 굽은 흔적이 멋있게 보인다. 부드럽게 누운 몸의 곡선이 운치가 있다.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성장한 고목에서 생명의 경의를 만난다.

우리의 삶도 순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역경의 바람과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릎을 꿇었다면 삶의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지 못한다. 나무가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역동적인 곡선을 아름답게 자랑하듯, 우리도 고통스러운 삶을 이겨내면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난다. 추위를 느껴 본 자만이 봄의 훈풍을 눈물겹도록 소중하게 여긴다. 마찬가지로 삶의 고통을 극복한 사람이 삶을 뜨겁게 산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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