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6-- 떡국용 장조림
떡국에 쓰는 양념장을 무엇을 쓰느냐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지방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산골에서는 옛날에는 꿩고기를 장조림을 해두고 떡국을 끓일 때마다 조금씩 넣어서 간도 맞추고 약간의 고기 냄새와 맛이 나도록 하곤 하였다. 귀한 꿩고기를 많이 넣어서 충분하게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바닷가나 평야지대에서는 꿩이 흔하지 않으니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평야지대에서는 닭을 꿩 대신으로 썼으니, ‘꿩 대신 닭’이 된 셈이다. 그렇지만 바닷가에서는 꿩이나 닭보다는 바다에서 나는 굴을 대신 썼다. 그래서 굴을 넣어서 떡국을 써야 하였다.
이렇게 떡국을 끓일 장국의 재료를 준비하는 것은 남자들의 일이었다. 닭을 잡아야하고 그것을 씻어서 잘라주는 것까지가 남자들의 할일이다. 닭 중에서 가장 통통하게 살이 찌고, 크게 자란 놈을 택하여 잡아야 한다. 대부분 미리 잡을 것을 정해두고, 다른 일이 생겨도 이것을 절대로 잡거나 하는 일은 없다.
설날을 2,3일 남겨두고서 닭을 잡는다. 잡은 닭은 반드시 짚불로 그을어서 잔털이 남아 있는 것을 깨끗하게 제거하고, 또한 피하 지방을 피부로 스며들게 하여 줄이는 효과도 있다.
여기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이니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니 그렇게 알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내가 8살이었을 때였다. 공비토벌을 하느라고 경찰과 군인들이 합동작전으로 공산당의 잔당인 공비들을 토벌하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 와서 커다란 장닭이 한 마리 마당에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젊은 군인이 한 사람 그 장닭을 잡아서 먹자고 덤볐다. 그 때야 민간인이 군인이나 경찰들이 하는 일을 마다하거나 싫다고 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닭을 잡겠다고 마구 쫓아서 잡아가지고 털을 다 뽑아 놓고서, 그을리기 위해서 짚을 가지러 갔다. 그 사이에 닭을 잡으면서 목을 잘 비틀러 숨을 끊어 놓지 않았던지, 닭이 부스스 일어나더니 ‘날 살려!’ 하는 듯이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짚을 가지러 가던 군인은 깜짝 놀라서 닭을 쫓기 시작하였다. 닭은 털을 다 뽑아 버렸으니 몸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아서 비틀비틀하면서 죽을힘을 다해서 달아나고, 젊은 군인은 기어이 잡겠다고 쫓아가는 재미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닭은 곧 잡을 듯 달려오는 군인을 피하기 위해 달려가다가 짚들을 쌓아 놓은 짚더미 곁에 다가서더니 짚단들의 사이에 고개를 쿡 쑤셔 박은 채 몸을 잔뜩 움츠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자기의 눈에 군인이 안 보이니까 자기 생각으로는 잘 숨어있어서 군인이 자기를 못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쫓던 군인은 닭을 움켜쥐고서는 “허허! 이 자식이 대가리만 쳐 박으면 나도 안 보이는 줄 알았나 보네. 내 원 참!”하면서 낄낄거렸다. 이렇게 닭을 잡으면 어른들은 날개 끝부분과 닭발, 닭똥집을 생것으로 먹어치웠다. 날개끝 부분과 닭발을 도마에 놓고 ‘탕탕탕탕‘ 두들기는 것은 좆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좆아주면 닭발이나 날개 끝부분의 뼈가 부드럽게 된다. 이것을 소금과 참기름을 섞은 양념에 찍어서 먹으면 생것 이지만 고소한 맛이 난다.
닭은 살만 발라서 아주 자잘하게 자르고, 뼈는 골라서 따로 모아두면 일단은 모두 잡아넣고서 장조림을 한다. 물론 나중에 뼈들은 모두 발라내고, 살만 떡국 감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만든 장조림은 설날부터 보름이 되도록 까지 찾아오는 친척이나 손님들이 올 적마다 조금씩 떠 넣어서 떡국을 끓이는데 사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보통 초열흘까지도 세배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아낙들은 보통 보름까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준비 자세를 가진 주부들에게는 이만큼 좋은 재료는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