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8) 세배할 때마다 떡죽먹기

2013.02.12 10:42:00

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8-- 세배할 때마다 떡죽먹기

세배를 하면 당연히 세뱃돈을 바든 것으로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세뱃돈이라는 것을 몰랐다. 또 요즘처럼 자기 집에서 집안 어른들에게만 세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동네를 돌면서 동네 어른들께 모두 세배를 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들에게 세뱃돈이 아니라 집집마다 세배를 온 사람에게 내오는 상이 있었으니, 어른들께는 술이 나오고, 함께 온 어린이들에게는 떡국이 나오는 것이다. 온 종일 3~40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세배를 하고나면 집집마다 떡국을 얻어먹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이제 먹는 것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동네에 살다보면 어느 집에서는 어떤 음식이 맛이 있고, 어떤 집에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이제는 대부분 잘 알게 되었다.

‘영수네 집에 가면 곶감만 먹어야지’
'경민이네 집에서는 유과가 맛이 있는데…‘
‘부잣집 철이네에 가서는 맛있는 조청에 인절미를 찍어 먹으면 맛이 있겠지.’
등등으로 세배를 다니면서 온 동네를 다 알게 되어 버린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집안 어른들을 따라 다니면서 함께 세배를 하다가, 틈만 나면 한바탕 뛰어 놀다가 다시 세배를 가면 배가 부른 것을 막을 수가 있으니 틈만 나면 한바탕 뛰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다음 집으로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을 어른들이 천천히 걸어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줄달음질을 쳐서 다음 집의 앞에서 서서 기다리는 짓을 되풀이 하면서 배를 꺼치려고 노력을 하였었다. 배를 꺼친다는 말도 낯선 분들이 많을 것이다. 더부룩하게 부른 배를 뜀박질로 좀 덜 부르다는 느낌이 오게 만든다는 말이다.

가난에 찌들어 제 때 끼니를 다 먹지도 못하고 자라던 아이들은 이런 명절이나 되어야 배부르게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집집마다 주는 떡국을 몽땅 다 먹어 치우는 것이다. 그렇게 먹고 보니 너무 배가 불러서 어떤 집에 가서는 내다 주는 떡국을 다 먹을 서가 없을 때도 있었는데, 그게 아깝게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설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얼마나 배가 고프게 살았던지, 하는 것을 알만한 이야기 하나 다시 들어보자.

얘들아, 앉아서 놀자 !
“엄니,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네에.”
“그만 참고 자거라. 그래도 너는 죽을 한 그럭 반이나 묵었잖냐?”
“나물만 들고 쌀도 한나 읎는 멀건 죽인디 묵으나 마나제.”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하지만 어머니는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 알았다야. 자 물이라도 한 그럭 마시고 자그라. 낼 모레믄 아랫뜸 김부잣집 종배네 모내기를 하는 날잉께 쌀밥 한 그럭 얻어 묵을 수 있응께. 쪼끔만 참그라.”
점돌이의 투정에 가슴이 아파오는 어머니는 어린 점돌이를 달래다가 가슴에 꼬옥 껴안고 속삭여 줍니다.

산나물에다가 겉보리 간 것을 한 주먹 넣어서 멀건 죽을 끓였지만 그것도 넉넉히 먹을 수가 없어서 점돌이에게 한 그릇을 부어 주고서 자신은 반 그릇 남짓밖에 못 먹었습니다. 온종일 산을 헤매며 산나물을 뜯노라고 지친 팔다리가 아리고, 쑤시고, 뱃속은 쪼르록 소리만 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도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없는 자신이 밉고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점돌이의 투정에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6.25 전쟁통에 공산당과의 싸움을 위해 살던 집들을 모두 불태우고 소개<작전을 위해 사람들을 살던 마을에서 떠나 다른 곳에 있도록 하는 조치>를 당해서 이웃마을로 쫓겨 온 것이 한없이 서럽고 억울합니다.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오두막집이지만 내 집이 있었고, 산골 다랑이 논이지만 몇 마지기 땅도 있어서 지금 보다는 훨씬 나았는데, 전쟁이 터지고 공산당이 휩쓸고 지난 뒤 우리 경찰과 국군이 들어왔을 때 산 속으로 숨어든 공산당(빨치산) 때문에 산골 마을들은 거의가 소개를 당했고, 이렇게 이웃 마을로 옮겨와서 남의 집 방 한 칸에 눌러 살면서 지난 겨울을 났는데 벌써 식량은 떨어지고 간신히 봄을 맞았습니다.

점돌이 어머니는 점돌이의 몽구리<바짝 깎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등도 쓸어 주다가 내리 깔리는 눈을 주체치 못한 채 잠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종배네 집의 모내기 날 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은 논에 나가서 못자리에서 모를 쪄내고 있습니다. 점돌이 어머니도 남들에게 질세라 서두르고 집을 나섰습니다.

“점돌아, 이따가 새참 나오면 버든 들 사장나무 아래로 와, 잉.”하고 일러두고 휑하니 사립문을 나섭니다. 해가 떠오르기가 바쁘게 사장나무 아래 쉰 평 남짓한 마당에는 온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진을 치고 와글와글 울고 뛰고 야단이 났습니다.

굶주린 아이들이 부잣집 모내기 날이라고 푸짐하게 내오는 참이나 점심을 얻어먹기 위해 모여든 것입니다. 부잣집에서도 이날만은 커다란 가마솥을 닦아서 솥뚜껑이 솟아오를 만큼 수북하게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어서 온 동네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이 마을의 풍습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이렇게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야 마을 사람들이 농삿일을 돕는데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을 하고 전해온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먹지 않고 모내기를 나오기 때문에 10시쯤이면 벌써 음식을 이고 들고 나타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이 때는 남자들을 위해 마련한 막걸리와 간단한 요기거리<시장기를 가실 만큼만 먹는 간단한 음식>만 나오니까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게 몇 숟갈씩 얻어먹고서는 물러나야 합니다.

다시 모내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도랑물에 들어가서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느라고 고무신짝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이 납니다. 미꾸라지 한 두 마리를 잡아 가지고 무슨 보물이라도 된 것 마냥 자랑스러워합니다.

“나 미꾸라지 두 마리나 잡았다 ! 이것 봐라!”
“으디, 으디?”
“안되야. 도망간단 말야,”

이렇게 야단들을 하는 아이들은 땀등거리<삼베나 모시베로 만든 가슴과 등만 가리게 된 땀받이 옷> 에 흙탕물을 매대기<반죽이나 진흙을 함부로 되바름>를 쳐서 아이들이 미꾸라지인지 미꾸라지가 사람인지 모를 만큼 모두가 흙투성이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점심을 이고 아주머니들이 나타나자 사장나무 밑은 벌써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맙니다.

“느그덜은 쩌리 가서 가만히 기대리고 있어라. 곧 점심을 퍼서 나눠 줄텡께 잉.”

아주머니 말씀에 아이들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풀각시도 만들고 네 잎 짜리 토끼풀도 찾으면서 기다립니다. 어른들이 손발을 씻고 나오시고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졌습니다.

“점돌아, 이리 와서 밥 묵어라.”

어머니가 부르기 무섭게 접돌이는 어느새 숟가락을 들고 밥그릇에 덤빕니다. 커다란 행기<밑이 널찍하며 펑퍼짐하게 생긴 주발의 한 종류>에 수북하게 담긴 밥은 아마도 집에서 먹는 밥그릇에 담는다면 세 그릇은 될 성싶게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가난한 점돌네 식구를 위해 특별히 더 많이 퍼담은 그릇을 주었나 봅니다.

어머니는 점돌이가 정신 없이 퍼먹는 모습을 보니 숟가락이 가지 않습니다. 자신은 조금씩 떠먹으면서 갈치 볶음을 떼어 놔주고, 김치를 찢어 놓아주면서 점돌이가 먹는 수발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점돌아 ! 아그만 멕이지 말고, 너도 어서 좀 묵어. 여기 밥 더 줄팅께, 어서 묵어야 일을 하제 잉.”

이웃에 사시는 영순이 엄마가 밥을 가득 떠 넣은 채 우물거리면서 하시는 말씀에 점돌이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입니다. 그 푸짐하던 밥그릇이 반도 더 없어지고 나자 , 영순이 엄마는 밥을 한 그릇 더 가져다 주셨습니다. 점돌이가 그 큰그릇을 거의 다 먹었고, 점돌이 어머니는 나중에 가져다 준 밥을 먹었습니다. 어지간히 먹었던지 점돌이가 수저를 놓고 물그릇을 찾아들고 자리를 떴습니다. 벌써 아이들은 밥을 다 먹고 저 만치 나무 그늘에서 뒹구는 아이, 씨름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어른들도 피곤하신지 풀밭에 누워 눈을 감고 낮잠을 청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점돌이는 너무 먹어서 움직이기가 거북해 뛰어 놀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물을 한 그릇 떠서 몇 모금 마시고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배가 너무 불러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 엄두가 나지않습니다. 정자나무에 기대앉아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점돌이에게 이웃집에 사는 병식이가

“점돌아, 빨리 일어나 ! 우리 닭싸움하자.”하고 함께 놀자고 재촉을 합니다. 그러나 배가 너무 불러서 움직이기도 싫고, 움직일 수도 없는 점돌이는 “아그들아, 앉어서 놀저.”하고 말해 보지만 한 창 신바람이 난 아이들은 누구 하나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놀이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점돌이는 정자나무에 기대앉은 채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에 파리가 날아들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정자나무에서 땅바닥으로 쓰러져 깊은 잠이 들어 버립니다.

버드내 들판 여기저기에서 모내기에 바쁜 모습과 존재산 기슭으로 내리 뻗친 산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이 한층 더 한가롭습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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