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되면 무엇이 생각날까? 일선 교사들에게는 교육과정의 마무리라는 생각보다는 어디를 가게 될까? 아니면 어떤 학교로 가게 될까 등 인사가 핫이슈다. 이처럼 2월의 인사는 겨울철의 냉풍을 열풍으로 바꾸어 놓는다. 인사철이라 유난히 꽃바구니며 화분이며 떡이며 참으로 푸짐한 달이다. 승진을 위해 보내는 축하 화분과 꽃바구니, 다른 곳으로 임용되었다고 상조회에서 마련한 떡. 참으로 인정 넘치는 한국인의 푸짐한 진면목을 보는 것 같다. 건너편 야산에는 하얀 눈이 온 산을 수놓아 2월을 마치 축복의 설국달로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하다. 차거움과 따뜻함의 조화, 검은 것과 흰 것의 대조가 주는 갈등의 진풍경은 한편의 소설 드라마와 같다고 할까?
2월에 겨울이 주는 오묘한 원리와 개념을 무엇이라고 한마다로 표현해야 할까? 마치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풀다가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바꾼 과정을 연습장에 펼쳐내 놓은 장면은 아닌지. 한낮에 창밖을 내다보는 겨울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거리의 아름다운 장식품도 빛을 잃어버렸는지 누추한 조형물같이 서 있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어디를 달렸는지 시커먼 물결자국으로 도배를 한 얼룩들,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두툼한 목도리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순서없이 나붓기고, 보도블럭의 빈 틈새에 쌓인 하얀 눈은 바람에 휘날려 지나가는 행인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겨울이면 늘 그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던 눈보라도 이제는 이상기온 현상으로 온 천지를 고루 덮어 추억의 낭만을 겨울 관광객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원색적인 본능을 들어내는 데카당스적인 태도에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2월의 클라이맥스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부터 더욱 긴장감을 높인다. 각 학교의 졸업식에 피어나는 겨울꽃 잔치는 앙상한 교정에 따뜻함 뿐만아니라 방학으로 조용한 교정에 한바탕 품평회로 끝나고, 꽃다발을 받아 들고 부모님과 사진을 찍고, 은사와 다정하게 포옹하며 마지막 옹골찬 코메디 사진을 만드는 장면 등은 3월의 꽃피는 계절의 아름다움에 묻어두고, 선배가 물러간 빈 자리를 신입생들은 적응교육으로 다시 자리를 채우면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는 신입생,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는 신출내기. 모두가 프레시맨으로서 교정의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자격을 취한다. 그런데 유독 고등학교 학생들의 적응교육은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룬다.
나이가 18세에 이르면 어느 정도 자기의 갈 길을 생각도 해야 한다. 어떤 것에 더 집중도를 높여야 하는지도 생각할 나이다. 하지만 고3이 되어도 자기의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험의 결과가 나와야만 갈 길을 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점수가 인생의 갈 길을 결정하는 우리나라 교육풍토가 문제인지, 대학을 잘 가야 갈 길을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인지, 갈등은 신입생때부터 시작하여 3년 간 지속된다.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왠지 자본주의 사회의 허상을 그려낸 소설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어느 한 모퉁이는 항상 허전하기만 하다. 교정을 떠나가는 선생님, 교정에 새로 전입하는 교원들, 서로가 주고 받는 품앗이처럼 새얼굴로 새모습으로 화기애애한 웃음의 충전소를 만들면 2월의 소설 드라마는 막을 내리고 3월의 꽃피는 수업은 교실을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