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이 참으로 어렵다고들 한다. 교실은 교사와 학생만의 따뜻한 공간이다. 웃음과 행복이 넘쳐나는 곳이요, 주고받는 대화가 스승과 제자 사이의 배움의 길을 열어가는 동맥인 것이다. 학교를 가면 학생은 교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것도 고등학교 인문계 학생의 경우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온종일 교실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만나면서 말로써 행동으로써 주고받는 삶의 거실로 만들어 간다. 그러기에 학교는 학생에게 주는 영향은 참으로 다대하다. 학생이 하루종일 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은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적다. 책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말의 정보를 얻어 가는 곳이 학교의 교실이다. 그런 아름다운 교실이 타락과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어느 학부모가 교실로 가는 자녀를 걱정하지 않을 이 누가 있을까? 사람이 모여 지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기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소한 것이 발전되어 큰 사건으로 이어지기에 교실은 점점 더 경계의 대상이 되고, 같이 생활하면서도 서로를 의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면 교실을 책임지고 있는 담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울면서 호소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상주해 있으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체크해야 할까?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은 침묵과 대화를 섞어 가면서 일관되게 하루일과가 진행된다. 말없이 하루를 지낸다면 따분할 것이지만, 친구가 있기에 그리움이 있고, 교사가 있기에 배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참다운 교실이 존재하기에 학교는 따뜻한 공간으로서의 정을 만들어내는 산실역할을 한다. 싸움을 하고 친구를 속이고 그래서 서로를 미워하여 상호간의 불신을 싹트게 하는 그런 환경에서는 배움의 올바른 정서가 싹이 틀 수 없는 것이다.
배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학생은 건전한 마음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가르치는 자는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쏟아내는 지식의 정도를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가르침이 열정이 없고, 교사의 지식의 양이 학생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는 서로간의 불신의 벽이 생기기 마련이다. 교실이 깨끗해야만 학생의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처럼 교실을 닦고 쓸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교실의 외향의 더러움을 덜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다. 입에서 쏟아지는 비속어를 정화시키는 역할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청소인 것이다. 교실을 닦는 것은 더러워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깨끗한 걸레로 닦아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청소를 한 교실에서는 상쾌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기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교실인 것이다. 교실에서 학생이 친구를 때려 서로 간에 눈물을 흘리는 더러운 장소가 되고, 학생이 선생님께 비속어를 사용하여 사회의 핫이슈를 만드는 그런 큰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학교의 교실이 아닌 것이다. 소박하면서도 검소한 자신의 마음을 가꾸어 가는 그런 아담한 교실이 큰 일을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되는 것이요, 살아있는 교실인 것이다. 스승이 웃고 학생이 웃는 그런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갈 때 우리의 교실은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 어떻게 하면 자율학습을 없애버리고 어떻게 하면 학교 수업을 빨리 마치고 집에 가야 한다는 그런 생각으로 학생들의 마음에 가득 채워지게 만든다면 학교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것이다. 그런 교실에선 스승의 웃음은 통곡으로 변하고 학생의 웃음은 울분과 분노로 변하는 것이다. 스승이 눈물을 흘리면서 학생에게 웃음을 줄 수는 없고, 행복을 전해주고자 하는 자가 불행하면서 타인에게 행복의 웃음을 선사할 수 없는 것이다. 겉으로 아무리 웃어도 웃음의 이면에서 풍겨나는 가식은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행복의 탈을 쓴 가식이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