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만한 문인 얼마나 있을까

2016.07.26 11:09:00

지지난 주말 김제 청운사에 다녀왔다. 하소백련축제기간이지만, 그걸 즐기러 간 것은 아니다. 신곡 라대곤 문학비 제막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2014년 4월 1주기때 추모문집 ‘라대곤 문학론’을 봉정하기 위해 처음 청운사에 갔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그랬다. 라대곤 소설가 겸 수필가가 속세를 떠난 것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추모문집 ‘라대곤 문학론’의 기획, 엮은이였던 나로선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딱 2명만 참석했던 1주기때와 다르게 모인 200명 넘는 추모객이 신기하기만 하다. 3주기 석 달쯤 지나서 열린 문학비 제막식이지만, 그리 많이 모인 것은 아마도 ‘라대곤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라는 이름의 단체로 움직인 덕분이지 싶다.

그런데 라대곤 문학비가 처음은 아니다. 2002년 4월 13일 한국문인인장박물관(관장 이재인, 충남 예산군 광시면 소재)에 라대곤 문학비가 세워진 바 있다. 라대곤 문학비는 서해, 탁류소설문학회⋅군산문인협회⋅경기문학인회⋅수필과비평사가 공동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라대곤 문학비는 청운사 주지 도원스님이 제안하여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몸체 무게만 8톤인 라대곤 문학비에는 건립추진위원, 집행위원 등의 이름이 빼곡이 새겨져 있다. 4천여 만 원의 비용은 유족과 문인 모금으로 거의 충당되었단다. 특히 절반 넘는 문인 모금은 엉뚱하게도 사후 신곡만한 대접을 받을 문인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반 독자들 이해를 위해 잠깐 부언하면 신곡 라대곤은 사업가 출신 문인이었다. 한 마디로 사업해서 번 돈을 문단에 아낌없이 쓰는 기업가였다. 보통 기업들이 하는 낯내기 차원의 메세나가 아니었다. 그 자신 소설가요 수필가였기에 문인들과 전방위적으로 어울렸다. 사업가답게 친교가 두터웠다.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 값은 어김없이 그의 몫이었다.

추모문집 ‘어서 오소서’에 약속이나 한 듯 그런 일화들이 나온다. ‘어서 오소서’에는 수필 39, 시 22, 평론 5편이 실려 있다. 일별해보니 1주기 추모문집 ‘라대곤 문학론’에 실린 글이 재수록된 경우도 있지만, 처음 보는 내용들이 훨씬 많다. 고인과 관련없는 일반 글들도 몇 편 들어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생전의 신곡 라대곤 풍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수필들이다.

이제 어느 정도 밝혀진 셈이다. 추모문집이며 문학비까지 신곡 라대곤을 기리고 기억하는 것이 문학적 업적과 함께 이루어진 그의 베풂 때문임을. 뭐, 돈으로 하는 베풂이야 그렇다치자. 무릇 문인이 가난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남에게 베풀기는커녕 제 도리조차 다하지 못하는 문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령 출판기념회를 비롯하여 부모 조문이나 자녀 결혼식 등 애경사때 부조를 받고도 그걸 품앗이하지 않는, 받고도 갚을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문인들이 부지기수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뿐이 아니다. 아집과 전횡 등 무릇 문인이나 독자를 안중에 두지 않는 행태를 보이거나 파리 목숨의 비정규직 사회현실을 문단에서 그대로 복기하는 이들도 있으니 과연 사후에 신곡만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절로 의구심이 생겨나는 걸 어찌 할 수 없다. 이래저래 라대곤 소설가 겸 수필가는 그냥 범인(凡人)이 아닌게 확실하다.

한편 참석자 면면을 보니 좀 아쉽기는 하다. 부산⋅광주⋅제주 등 전국 각지라곤 하지만, 유독 서울쪽 인사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다. 지역뿐 아니라 중앙문단에 걸친 소설가 겸 수필가로서의 그의 활동과 친교를 옆에서 지켜본 나로선 당연한 아쉬움일지도 모르겠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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