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나라는 이미 벌집을 쑤셔 놓은 꼴이 돼 버렸다. 그런데도 국민은 알 필요도 없고,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 되며, 불필요한 논쟁도 하지 말란다. 이같은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일까? 또, 최근 이 나라 행정을 이끌 장관 청문회에서 드러나는 놀라운 기록들도 이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 나라에 그렇게 인재가 없단 말인가. 출세와 성공만을 가르치면서 다그친 선생님들도 반성의 대열에 서야 할 판이다.
솔직히 공무원은 정부에 대하여 욕을 잘 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모임에 가도 사석에서 “나라가 망하려면…”이라고 운을 떼는 사람이 많아졌다. 많이 놀랐다. 누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현직 관료는 여간해선 정권이나 나라를 욕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있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러나 누적된 실망 때문인지 열을 올리면서 핏대를 세운 공무원도 가끔 보인다.
나라가 망하려면 국가와 국민이 밖을 보지 않고 안으로만 눈을 돌린다. 로마는 서기 378년 고트족과 맞붙은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발렌스 황제가 전사했다. 로마의 쇠퇴는 이때부터이다. 하지만 그전부터 제국은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카이사르 때부터 이뤄진 정복 전쟁이 마무리된 까닭에 외부를 향한 긴장보다 내부에서 성공의 과실과 권력을 누가 어떻게 빼먹느냐가 중요했다. 부패와 사치로 국가의 총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아지자 황제는 인플레이션 유발로 발생한 막대한 세뇨리지(seigniorage·화폐 주조 이익)를 통해 부족분을 메웠다. 데나리온 은화의 순도를 동화수준으로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오늘날과 달리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능하고, 세금을 더 뜯자니 시민 반발이 부담된 때문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국가가 생필품 가격을 통제하고 암시장 상인들을 사형에 처했다. 식민지와 본토에 차별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팍스로마나는 이렇게 무너져 갔다.
중국도 새 국가가 들어서면 오랑캐를 정리한답시고 잠시 정복 전쟁에 나서다 금세 대문을 걸어 잠그곤 했다. 영토 내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국가보다는 황권만 안정되면 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15세기 명나라 영락제는 정화에게 함정 60여 척을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탐험케 했다. 길이 120m 목선이었던 정화의 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 원정 때 탔던 산타마리아호(26m)보다 4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영락제 사망 후 대항해는 흐지부지 됐다. 중국에선 서세동점이 잉태된 시기를 이때쯤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역사에 밝은 시진핑 국가 주석이 실크로드 재건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야당은 차기 권력 쟁탈에 눈이 멀어 있고, 우리 나라 권력 핵심부는 현재 권력을 사수하기 위해 여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젊은이들도 영어 실력은 선배들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세계를 향한 패기가 더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만 하겠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중요한 변혁의 시기에 금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그저 버티기만으로 이 험난한 파도를 넘기에는 너무 힘이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고, 조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그 조직이 설 수 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나라와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가치다. 우린 이 상식을 얼마나 쉽게 팽개치고 있는가. 국민의 신뢰, 내부 구성원들간의 신뢰, 그리고 미래가치에 대한 모두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국가 발전이란 헛된 구호에 불과하다. 무신불립 정신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대전환기에 국가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나라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가려면 국민을 받들면서 일하는 공무원만이라도 참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잃어버린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치 지도들이 찾아야 할 수레의 두 바퀴는 진실에서 나오는 권위와 신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