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어머님께!

2006.02.01 09:00:00

장세진 | 전주공고 교사, 문학평론가


어머님!
이렇게 불러보기는 처음입니다. 살아 계실 때는 ‘엄마’나 ‘어머니’로 불렀으니까요. 이렇듯 어머님께 편지를 써보는 것도 51년 만에 처음이지 싶습니다. 아, 아니군요. 대입에 실패하고 돈번다고 무작정 상경하여 대책 없이 살 때 돈 좀 보내달라며 한두 번쯤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화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어떻게 지내세요? 불현듯 어머님 생각이 간절히 솟구쳐 헤아려보니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3년이나 지났군요. 그렇게 훌쩍 떠나실 것을 왜 그렇게 여유롭게 사시질 못하셨습니까? 나들이하실 때 택시도 타시고, 화려한 옷에 맛난 음식도 사자시라고 용돈을 넉넉히 드렸는데도 말이에요.

일흔 셋이라는,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연세에 딱 한번의 발병으로 그렇듯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 혹 그런 고생 때문은 아니었나요? 아, 아니에요. 서른일곱에 청상과부가 되시어 우리 형제를 키우느라 몸에 밴 고생이 더 큰 연원이라 생각하니 그 죄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아들들 장성하여 웬만큼 먹고 살 만해져 어머님 편히 사시게 해드린다고 저희들 깜냥으로는 자부했는데, 그렇듯 허망하게 가실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정말이지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하고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성현의 옛 글이 이렇듯 가슴을 파고들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답니다.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려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씀을 조금만 일찍 깨우치고 실천에 옮겼더라면 어머님을 하늘나라로 인도한 그 발병은 아예 얼씬거리지도 못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스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머님!
지난 추석 때 형네와 함께 외할머니와 이모를 찾아뵈었습니다. 어머님도 아시죠? 저수지 확장공사로 인해 외가 마을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산소를 이곳으로 옮겨 온지도 어느덧 이태가 되었답니다. 그 후 외가엔 설날에만 세배 드리러 갔는데, 이번엔 형이 굳이 가자고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아직도 막걸리쯤은 거뜬히 자신다는데, 저를 금방 못 알아 보시더라구요. 외숙은 옛집 옆에 큰집을 지어 작년에 이사했습니다. 외숙의 큰애는 작년에 결혼했는데 벌써 아들까지 낳았답니다. 이모는 여전히 두통기가 있어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한다네요.

이번에 이모로부터 어머님의 비밀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2000년 형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어머님이 그러셨다면서요. “작은 아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속만 썩이던 놈이 이렇듯 듬직한 집안의 기둥이 되다니!”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저는 한없이 기뻤답니다. 고 3때 59명 학급에서 59등을 한, 그리하여 무던히도 어머니 속을 상하게 한 저였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이제 제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어쩌면 눈썹이 휘날리게 공부하여 버젓이 교사가 되면서부터 저는 다시 태어난 셈이니까요. 사는 나라가 달라 어머님께 낱낱이 보여드릴 수는 없을지 몰라도 살아생전에 이모에게 털어 놓으신 저에 대한 그 신뢰만큼은 저버리지 않는 아들이 될 자신이 있습니다.

어머님!
며칠 전 큰애가 대학 수시 실기시험을 봤습니다. 이곳에서 좀 먼 곳이라 하루 연가를 내고 제가 데리고 다녀왔습니다. 시험을 치르는 3시간 넘게 부모마음이 뭔지 알 듯했습니다. 자식 키워봐야 부모마음 안다고, 어쩌면 그 말이 그리도 딱 맞는지요!
그런데 큰애든 작은 애든 할머니 얘기 한번 안하는 거예요. 사실 걔들은 어미가 키운 게 아니라 어머님께서 키워주신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할머니와의 추억’ 예컨대 명절 때면 노상 두둑한 용돈을 주시던 할머니를 벌써 잊었단 것인지,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떠올라 서글프기 짝이 없군요.

그렇더라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저도 50줄에 들고 보니 부모가 뭘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님이 제법 진하게 와 닿는걸요. 이제 와서 말이지만 손자 생각이 나셔서 아이 하나 더 낳으라고 하실 줄 뻔히 알면서도 끝내 못들은 척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랍니다. 아들놈 있으면 뭐합니까, 뭘 바라고 키울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비록 ‘딸딸이’ 아빠지만 어머님이 저희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손녀들을 잘 키울께요.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밤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임을 실감하며 아침 출근을 위해 이만 접어야 할까 봅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이야기해 드릴께요. 편안히 계십시오. 인영아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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