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2007.02.01 09:00:00

한상철 | 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자 청소년 가운데 20% 이상이 출산을 하고 있고, 약물남용이 청소년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AIDS의 유령이 청소년의 육체적, 정신적 황폐화를 가속화시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 대책을 마련 중이다. 특히 M. Wright Edelman은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하고, 과거 어떤 시대보다 더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청소년 문제행동이 적다고 안심하고 있을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실종된 듯한 청소년문화에 대해 염려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문제행동이 소수 청소년들에게 존재하는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비교적 건강하다고 하는 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잠재적 비행의 배경에는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특이한 문화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변화에 따른 청소년의 지위변화
한국의 ‘청소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학생 운동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반독재 정치 운동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사춘기적 방황과 갈등,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과 실험정신, 대안 문화 등과 같은 청소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청소년들이 근대화 이후 부모나 기성세대로부터 독립하고, 구별화됨으로써 그들 나름의 확고한 사회적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히피운동이나 반 문화운동을 통하여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그들의 주류 문화를 형성하였고, 21세기 사회에서 그들은 대량실업과 세기말적 혼란 속에서 사회의 불안 세력이자 가능성의 세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청소년은 1980년대 대학생 운동의 절정기를 맞으면서, 조직력과 이데올로기가 극도로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청소년의 실험성과 자유로움은 상실되어 버렸던 것이다.

청소년에 의한 문화 변혁적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이 불러 일으켰던 신문화 조류나 1960년대 말부터 일었던 ‘청년문화운동’이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통기타와 히피풍조 패션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운동은 서구 풍조의 모방이자 퇴폐풍조로 간주되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정책에 의해 억제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주도했던 그 시대의 청년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서 곧바로 기성세대 체제에 편입되어 버렸던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반독재 투쟁은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루게 되지만, 청소년들의 행보는 곧바로 소비에만 열중하는 ‘신세대’로 규정됨으로써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형성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의 글에 따르면, 근대 한국사에서 청소년의 위상은 크게 세 단계를 통해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조혜정 교수의 단계구분에 근거하여 필자 나름의 견해를 덧붙여 설명하고자 한다.

‘학생’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근로 청소년
첫 번째 단계는 대가족의 ‘소인’일 뿐이었던 청소년들이 가족을 빠져나와 ‘학생’이라는 독자적인 위상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근대 국가기구는 모든 아이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를 지었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개인의 공간을 갖기 시작하였다. 학생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고, 이 시대에는 청소년 자신들이 이 지위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이들은 주변적 범주로 인식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외 계층’, ‘학교 공부보다 생계유지가 더 시급한 사람’이라는 식의 범주화가 근대 전반부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행운아는 자기를 상급 학교에 보내 줄 경제력을 가진 아버지나 잡다한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숙제를 하도록 배려하는 어머니를 가진 아이였다. 소수의 선택된 아이만이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시대에 ‘학생’이 되는 것은 축복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 시대에 ‘학생’에 속하지 않는 청소년은 주변적인 범주인 ‘근로 청소년’에 속한다.

교복을 입은 같은 또래의 학생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계층인 이들을 위해 1970년대 국가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근로 청소년회관을 지어서 검정고시 반을 운영하거나 취미교실을 운영하여 이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화장법을 가르쳐서 이들을 숙녀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 더 이상 학생과 근로 청소년의 이분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좋은 청소년’,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
두 번째 단계는 다수의 청소년들이 학생인 시점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불우한 청소년이 아니라 부적응자이거나 일탈자로 범주화되는 단계이다. 이 시점에서 10대는 ‘학생’과 ‘비학생’으로 이분화되었으며, 학생은 ‘좋은 청소년’인 반면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으로 취급되었다. 1980년대까지 지속된 대량생산 체제에서 학교는 그 체제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기능을 수행했으며, 기성 사회는 그 체제에서 이탈하는 청소년을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의 청소년은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으로 구분되고, 청소년이란 용어는 중·고등학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의식화시킬 것을 두려워해서 선배들이 모교에 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이 금지되었고, 그래서 많은 선후배가 함께 하는 청소년 동아리의 맥이 끊겼다. 따라서 1980년대를 통해 중·고등학교는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중등학교 학생들은 ‘학생’ 이외의 정체성을 버려야 했다. 강압적이고 통제 일변도의 학교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런 특수한 역사적 시점을 거치면서이다.

이 시대의 학생은 더 이상 특권 계층이 아니었으며 단지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 모범생 등으로 인식되었을 뿐, 공부하는 곳에서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은 열등생, 부적응자, 비행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인정받았으며, 그들의 사소한 허물이나 실수는 묻힐 수 있을망정 공부 못하는 사람의 허물은 인생의 실패나 부도덕으로 낙인 되었던 것이다. 대량 생산시대에 필요한 인력은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화되고 평준화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은 점차 평준화를 지향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을 백화점의 상품과 같이 개성 없는 생산품 또는 진열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소비 주체로서의 청소년
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 전후 본격적인 소비 자본주의 체제가 진행되면서 ‘학생’의 위상이 ‘청소년’이란 위상으로 또는 ‘소비자’란 이름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단계이다.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적극적으로 이탈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학교의 규범에 얽매인 학생들을 보다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구체적인 예로써, 1987년 당시 체육부는 ‘청소년육성법’을 제정하였고, 1988년에 체육부 내에 ‘체육청소년국’이 설치되었으며, 1990년에는 청소년헌장이 선포되고 ‘체육부’가 ‘체육청소년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당시 정부 차원의 청소년 정책이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을 ‘청소년’이라는 신분으로 이미지 변신을 도모한 것은 성공적으로 평가되지만, 학교 내 각종 규제에 얽매여 있는 10대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크게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다. 1991년 청소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학생들은 잠시 학교를 떠나 자연 속에서 수련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었다. 청소년의 범위를 9세부터로 정한 것도 학생들의 수련원 활동을 권장하기 위한 차원에서이다. 1997년 이래로 다시 청소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청소년헌장을 개정하는 등 ‘학생’이 아닌 ‘전인적 청소년’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청소년을 육성하겠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이 잔존해 있는 한,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생 지배에 대한 욕심이 계속되는 한 청소년 활동의 활성화는 사실상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러나 국가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 청소년의 세계가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자본은 청소년을 위한 길거리 농구장을 마련하였고, 유명 상표를 부착한 신발과 의류를 팔았으며, 10대를 위한 각종 잡지와 패션 책을 통해 10대들만의 무수한 이야기를 제공하였다. 청소년들은 정부에서 벌인 행사에서와는 달리 시장의 자본이 만든 공간에는 자발적으로 찾아다녔으며, 노래방, 피시방, 오락실, 호프집, 콜라텍을 선택하였다. 1980년대 이후 자본에 의해 청소년들의 학교 밖 놀이공간들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졌으며, 청소년들은 그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개별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10대들은 한편으로 자본이 만든 새롭고 광활한 소비 공간의 유혹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후된 학교가 밀쳐내는 힘의 작용에 의해 독자적인 생활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아이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재미없는 공간에 불과하며, 오래 머물다가는 낙후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줄 뿐이다. 실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수는 적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몸만 학교에 있는 식의 태업에 들어갔고, 상당수는 학교생활을 삶의 일부로만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가끔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 서양의 청소년들보다 학교에 더 잘 다니지만, 또한 더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학교 망신시키는 행동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고답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학교 운영책임자도 있다. 청소년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해결책이 없으니까 그냥 덮어두자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청소년들의 행동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와 자유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들의 반항적인 행동만을 문제 삼는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청소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내 청소년문화의 형태
교육이란 본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작용이며,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조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교는 교육의 일차적인 장(場)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을 구속하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 내 청소년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이버공간이나 B-boy 댄스 활동, 밴드 활동 등에 몰두하면서 학교 밖의 공간을 확보해 놓은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대해 큰 기대도 불만도 없는 편이며, 학교에서는 그들 나름의 시간 때우기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에서 무턱대고 잠자기, 그들만의 정보교류, 쉼터, 그리고 부모님께 최소한의 효도를 제공하기 위한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아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학원에도 다니고 여러 종류의 비공식적 모임에 참여하거나 독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계획해 나간다. 문화센터를 통해 영화 만드는 것을 배운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사회경험을 하는 등 새로운 학습의 공간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 더 머물다가는 변화되는 역동적인 사회 환경에서 도태되고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스스로 학교를 탈퇴하고 자기만의 공간 및 생활터전을 창조해 나가는 적극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류는 딱히 자기만의 창조적 공간을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다. 인기 대중가수의 열성적인 팬 클럽회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트나 콜라텍 등에 가서 열심히 춤도 추고, 노래방에 가서도 적극적으로 노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발랄하고 당돌한 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이들에게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간섭은 잔소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당돌하리만큼 정열적이고 반항적이지만, 노는 데 빠져있을 뿐 비행이나 일탈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네 번째 부류는 아마 현재 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는 수동적인 청소년들이다.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 학교에 가라면 가고, 텔레비전도 조금 보고, 친구를 따라 콜라텍에도 가끔 가고 노래방에도 간다. 이들은 대체로 “별 생각 없이 살아요”, “사는 게 재미없어요”라고 반응한다. 일 중독증에 걸려 놀 줄 모르는 부모세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아마 이들 중 다수는 10년 후에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앞의 세 부류는 오늘날 그 숫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지만, 아직도 소수일 뿐 지배적인 청소년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90% 이상의 청소년은 네 번째 부류에 속할 것이다. 어른들은 앞의 세 부류에 대해 염려하고 심지어 문제청소년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경우 나름대로 문화공간을 가지고 있거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그리고 열심히 놀고 있을 뿐, 비행이나 문제행동에 개입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들이 새롭고 역동적인 청소년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네 번째 부류의 청소년들은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엮어가고 있으며, 잠재적 비행요인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내포하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스트레스와 욕구불만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청소년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현대 사회의 청소년들은 성인 사회의 문화를 단순하게 수용하고 흡수하는 스폰지 세대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생성하는 문화 주체적 세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다수가 아닌 소수에 의해 생성되고 확산되는 청소년문화이기에 하위문화 또는 대항문화라는 좋지 못한 평판을 듣고 있는 듯하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동반자로서 가치를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에만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더 큰 터전으로 뛰쳐나와서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시험하고 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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