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후원자에서 교육주체로

2007.03.01 09:00:00

이혜숙 | 한국방송통신대 연구교수


우리사회에서 학부모는 어떤 존재로 비춰져왔는가? 학교교육에서 후원자이거나 소위 ‘치맛바람’의 근원지, 왜곡된 교육열의 주도 세력쯤으로 다루거나 비춰졌다. 적어도 십여 년 전에는 학부모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에 학부모를 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교육정책 토론 프로그램에서 학부모 대표가 패널로 반드시 등장하거나 새로운 대입제도의 도입이나 전형제도의 변화 등 학교교육이나 교육정책과 관련하여서 교사단체의 인터뷰와 같은 비중으로 학부모단체의 인터뷰를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굳이 구색 맞추기라고 저평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 만큼 학부모 집단에 대해 교육당국자들이 의식하고 있으며, 이들의 의견 수렴을 중시한다는 반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학부모 집단을 다루는 현재의 모습이 단지 시간 흐름의 결과는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학부모들의 적극적이며 투쟁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참교육학부모회와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등 초기의 학부모운동 단체의 역할이 컸다.

초기엔 학교 후원자 역할에 머물러

해방 이후 초기의 학부모단체는 학교교육의 재정 협력자, 후원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에서 재정 지원을 담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에서 주체로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였다. 해방 이후부터 학교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진 1995년에 이르기까지 학내 학부모 조직은 이름과 성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그 역할에서의 변화는 적었다.

해방 후 처음으로 생긴 학내 학부모 후원단체는 ‘후원회’이다. 후원회는 1946년에서 1952년까지의 학교후원조직으로 당시의 취약한 국가교육재정을 보조하였던 단체이다. 후원회의 주요활동은 회비와 찬조금, 기부금, 자축금 등의 명목으로 기금을 모아 재정적인 후원을 하였다. 그러나 학부모에게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강요하는 폐단이 발생함에 따라 교육부에서 ‘사친회’로 개편하였다.

1953년 사친회는 후원회의 폐단을 방지하고, 당시에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PTA(Parent teacher association)의 기능을 도입하여 발족하게 되었다. 사친회는 교사와 학부모가 협력하여 학교교육의 효과를 증진시키겠다는 의욕으로 출발하였으나 사친회비 징수로 인해 심한 파장을 일으켰으며, 특히 교사가 회비 징수를 책임지게 됨으로써 비교육적인 문제와 폐단을 낳게 되었다. 사친회는 후원단체가 아닌 교육단체로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단체였으나 잡부금 등의 징수 문제로 인해 1962년 해산되었다. 이후 각급 학교 산하에 사친회를 폐지하고 ‘기성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가의 교육비 전담 능력에 어려움이 컸었는데, 기성회는 1963년 발족하여 긴급한 교육시설의 확보와 학교운영을 지원하여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후 기성회비가 학교의 시설 부족을 원조하는 데서 나아가 교재연구비란 명목 하에 교원 생계 보조금 지급으로 성격이 변질되면서 기성회 회비 전용, 회비 징수 등에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여 폐지되고, 1970년에는 ‘육성회’ 조직이 만들어졌다. 육성회는 1995년 ‘학교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지기까지 학교의 학부모 조직으로 자녀교육을 위해 학부모들이 교육비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다 1995년 학교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학부모들의 학교교육 참여가 제도적으로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학교 내에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학교 외에서 만들어진 학부모운동 단체의 역할이 컸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학교 내 공간에서도 학부모들의 주체적인 참여의 길이 마련되어 50년 이상 학교 재정 충당을 담당한 학부모의 역할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전교조 영향으로 등장한 학부모회

학부모들의 학교교육 참여 촉구에 대한 주장은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 내에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학교 내 학부모 조직의 역할이 후원의 역할에 그치는 동안 학교교육의 문제를 제기하던 학부모들이 학교 밖의 모임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면서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역사는 새로 씌어지게 되었다. 학부모들이 교육주체로서 자신의 권리와 목소리를 드러낸 것은 1989년 학부모운동 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를 발족시키면서이다. 이로써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의 후원자라는 소극적 위치에서 탈피하여 학교교육의 모순을 문제를 제기하고 학교의 변화와 개혁을 요청하는 적극적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참교육학부모회가 발족하면서 학부모운동이 태동되었는데 이런 움직임은 당시의 시대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980년대는 교육계에 일대 지각변동이 있던 시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교원노조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이며, 학부모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교사들은 교육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의 이념을 표방하고 교사의 자주적 단결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1989년 5월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결성하게 되었다.

전교조의 결성은 다른 교육운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우리사회에서 교육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전교조의 결성은 국가주도의 교육에 변화를 촉구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비록 합법성을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요구되었지만,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도 교육주체로서 교육운동의 전면으로 나서게 된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이런 배경에서 학부모운동은 전교조의 결성과 더불어 일어나게 되었다. 전교조가 결성되고 난 몇 달 뒤인 1989년 9월에 참교육학부모회가 결성되고, 그 1년 뒤인 1990년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가 발족하면서 학부모운동이 교육운동의 전면으로 부각된 것이다.

1989년 5월 28일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학부모들도 교육주체 선언을 하여 그 맥을 이었다. 이 당시에 학부모들은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의 실현을 주장하는 전교조를 교육문제 해결의 주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단체로 인식하였을 뿐 아니라 교육문제는 교사, 학부모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할 때만이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기존의 육성회, 새마을 어머니회가 문교부, 교육청의 전교조 탄압에 동원되어 어용 학부모의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학부모들이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며 자주적 학부모 모임의 필요성을 요청하였고 이것이 참교육학부모회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게 되었다.

변화하는 학부모들의 사회적 인식

참교육학부모회는 1989년 3월 11일 마산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민주 학부모 건설 준비 위원회 주최로 개최된 마산지역 학부모 중심의 모임을 그 시초로 하였다. 이후 발기인 성격의 모임이 창립총회로 이어지고, 대구, 의정부, 서울, 광주 등의 순으로 지역 학부모회가 결성되면서, 1989년 9월 22일에 단일 조직으로서의 참교육학부모회가 창립되었다.

참교육학부모회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겪는 고민을 통하여 좀더 나은 교육환경을 조성해 주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자생적인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에서 소외되어 온 학부모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고 이와 함께 교사, 학생, 사회 각 계층의 의견도 함께 수용하여 교육문제에 대한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또한 교육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그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여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 학부모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참교육학부모회는 발족 초기부터 전교조가 주창하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위한 참교육 운동’에 동의하는 등 전교조 지원 및 연대의 차원에서 출발하였다. 참교육학부모회는 교사들이 결성한 전교조의 영향으로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결성한 단체이다. 참교육학부모회 임원이 교육비평의 한 좌담회에서의 말에서 전교조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참교육학부모회가 출범할 당시에는 전교조 교사에 대한 탄핵이 극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육성회 간부 같은 극소수 학부모들이 전교조 교사를 불순한 교사로 매도하면서 교사를 찾아내는 데 일조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건 안 된다. 학부모의 자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학부모회가 결성되었습니다. 당시 학부모들은 교육체제 전반에 대해서, 그리고 극소수 부유층이 주도하는 ‘치맛바람’에 대해서 깊은 불신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이 전교조 사태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것이었다고 봅니다.”

참교육학부모회가 전교조의 영향을 받아 발족한 데 비해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는 전교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전교조의 결성이라는 사회적,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 하에서 설립된 단체이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는 1989년 3월 크리스천 아카데미 주체로 열린 ‘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화모임’에 참석했던 학부모 모임을 주축으로 1989년 비공식 모임인 두 차례의 워크숍 개최를 통해, 1989년 7월에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고 10월 이후 60여 명의 준비위원이 모여 학부모 연대의 정식 출범을 위한 2차의 준비활동을 가졌다. 이후 1990년 3월 3일 발기인 대회를 가진 후 1990년 4월 28일 창립되었다.

교육의 주체로서 학교교육에 참여

학부모운동 단체의 설립은 당시 사회의 민주화 흐름과 관계가 깊다. 1980년대 우리사회는 거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기존의 지배적인 질서와 새롭게 창출되는 대안적인 질서가 대립·갈등하는 시기였다. 우리사회를 규율하고 있는 기존의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고 의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이른바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하였고,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모든 행위들을 민주화 운동의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이런 사회 각 부문에서의 민주화를 향한 요구와 시도가 교육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교육운동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1989년 참교육학부모회와 1990년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의 설립으로 학부모도 교육의 한 주체로서 자신들의 교육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전개하여 교육운동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학부모운동을 통해 학부모들은 개별적인 대응이 아닌 조직적인 대응으로 학교교육의 문제와 모순을 제기해 나가면서 기존의 개별 학부모들이 보여 왔던 학교와의 관계 변화를 주도하여 왔다. 교육에서 소외되어 주변적인 위치에 머물던 학부모들이 학부모운동 단체의 활동을 통해 당당히 교육에서 주체적 역할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교육학부모회와 인간실현학부모연대의 설립은 학부모 참여의 양상이 기존의 후원, 지원의 성격에서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서의 권리의식을 주장하고, 이런 주장을 사회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사회적 성격을 띠는 학부모운동의 전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학부모 참여의 패러다임을 바꾼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양대 학부모운동 단체의 설립은 그 동안 교육논의에서 소외되던 학부모들이 학부모의 관점으로서 자녀의 학교교육에 참여하는 시대를 열게 되었으며,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의 길을 확대하는 데 공헌하게 되었다.
이들 단체는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 ‘육성회비반환청구소송’, ‘학교운영에 학부모 참여 보장’ 등 기존 학부모 조직과 다른 주장을 통해 학부모 참여의 새 패러다임을 형성해 나갔으며, 교육의 주체로서 학부모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한 몫을 담당하였다.

1990년대 이후 다양한 변화 생겨나

1990년대 이후 시민단체에 의한 시민운동의 활성화로 교육운동은 시민단체에 의해 주도되는 성격을 보여준다. 학부모운동 역시 학부모 및 시민이 연대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학부모운동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학부모들로 구성된 기존 학부모운동 단체와 함께 시민의 학교교육 참여를 촉구하는 교육시민운동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에 결성된 ‘교육개혁과교육자치를위한시민회의(교육민회)’는 학부모, 시민이 함께 모여 만든 최초의 교육시민운동단체라 할 수 있다. 교육민회의 등장은 학부모운동 단체들은 물론이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시민단체들 간의 협력과 연대활동을 촉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교육민회는 국가적 정책대안과 교육개혁을 위한 운동을 중심과제로 삼아 교육시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990년대 중반에는 ‘새교육공동체를위한시민모임’이 교육개혁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교육바로세우기전국협의회’, ‘올바른교육개혁을위한범국민연대회의’, ‘정의로운사회를위한교육운동협의회’, ‘참교육시민모임’ 등의 교육시민단체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들의모임’, ‘교육공동체시민연합’, ‘학교사랑학부모연합회’, ‘자녀교육학부모연대’들이 만들어졌으며, 가장 최근인 2006년 9월에는 ‘뉴라이트학부모연합’이 발족되었다.

학부모운동 단체가 발족한 후에 생겨난 교육시민단체들은 기존 학부모운동 단체와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보충수업폐지 반대, 0교시 수업유지, 모의고사 수시 실시,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찬성, 평준화 해제 요구 등 경쟁 중심적 교육구조가 유지되는 일련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면서 기존 학부모운동 단체와 그 주장을 달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2000년대 들어 학부모운동 단체 또는 교육시민단체가 성격이 다르며, 그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2006년에 결성된 뉴라이트학부모연합은 뉴라이트운동의 연장선에서 결성된 단체로서 교육시민단체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90년대 이후 교육시민단체의 출현은 학부모운동의 기조를 보수와 진보의 양대 진영으로 재편하는 듯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사안별로 의견이 첨예하게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학부모운동이 다양한 교육시민단체의 출현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에서 벗어나 그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학부모가 균질적이지 않은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교육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더욱 다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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