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성 인식하는 동반자적 관계

2007.03.01 09:00:00

김성열 |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



오늘날 학부모가 수행하는 역할은 이전에 비하여 다양하다. 재정후원자의 역할을 넘어서서 자원봉사자로서 그리고 학교교육과 관련한 의사결정자로서, 교육위원과 교육감선출권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이제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할 것이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증대되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학부모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새롭게 수행하기를 요구받고 있는 역할에 대하여 논의하려고 한다.

‘우리 아이’를 위한 지원 필요해

초·중등학교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역할은 재정적 후원자로서 시작되었다.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으로 규정되었지만, 열악한 국가재정 때문에 무상으로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부모가 일정액의 교육비를 부담해야만 했다. 학부모들이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학부모조직이 구성되었다. 시대에 따라 학부모조직은 후원회, 사친회, 기성회, 육성회 등으로 변천되어 왔다. 초등학교 교육의 완전 무상 의무교육화 그리고 중학교 교육의 완전 무상 의무교육화가 이루어진 후,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학부모 역할 수행 조직이었던 육성회는 폐지되었다.

사실 그동안 학부모들의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역할 수행은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논란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가재정의 부족으로 인한 의무교육비 부담주체로서 학부모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이 논란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초·중학교 교육의 완전무상화가 이루어지면서 해소되었다. 다른 하나는 공적으로 제도화되지 않은 일부 학부모들의 학교운영에 대한 재정적 기여의 정당성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발전기금의 조성을 제도화함으로써 일부 학부모들의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공식화하였지만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학부모들이 재정적 후원자로서 역할을 떠맡는 것을 완전히 폐지해야 하는가? 모든 학부모가 의무교육단계에서 발생하는 교육비를 공적(公的)으로 부담하는 역할은 이미 폐지되었고, 더 이상 요구되지도 않는다. 국가가 새로 태어난 세대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기 위한 공통의 교육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미 부담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학교가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거나 운동부를 구성하여 운영하거나 특정의 시설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도 여전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물론 공공 재원으로 부담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단위학교가 주체가 되어 발전기금을 조성하여 그러한 소요재정을 충당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발전기금의 조성이 그것에 참여하지 않은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에서 개별학교의 특별한 소요재정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유 있는 학부모들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제도를 통하여 재정적 기여를 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단위학교 수준에서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를 위하여 기여하려는 마음과 행동은 소중히 여겨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단위학교 수준에서 재정적 기여를 하는데 내가 그렇지 못한다고 해서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부모 능력 활용할 수 있어야

학부모들이 단위학교 수준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자원봉사자이다. 학부모들은 학교행사에 노력 봉사를 하는 일, 교통지도를 하는 일, 학교급식 운영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일, 일일교사로 참여하거나 보조교사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해왔다.

학부모들의 자원봉사활동은 크게 보아 노력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와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는 봉사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학부모들의 자원봉사활동은 학교가 요청하는 도움에 노력을 제공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학부모들은 학교행사에 노력 봉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학교체육대회, 연구학교 시범발표회 등 외부에서 오는 방문객이 많은 행사를 치룰 때에는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학부모들도 그러한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교통지도를 하는 것과 같은 자원봉사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은 녹색어머니회를 조직하여 효율적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학부모들은 급식식자재 검수요원으로, 학교급식에 모니터요원으로 참여하거나 배식하는 데 참여하여 봉사하기도 한다.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자원봉사 활동은 최근에 들면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학부모에게 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 또한 전문성을 갖춘 학부모들이 늘어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교원들이 부족하여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중·고등학교에서의 수준별 교육과정도 전문성을 갖춘 학부모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면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전문성을 갖춘 학부모들에게 시민강사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교통비 등에 해당하는 상징적 수준의 보상을 하여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자원봉사자로서의 학부모 역할은 학교의 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충분하게 갖출 수 없는 한 여전히 요구될 수밖에 없다. 학교는 또한 학교행사에 학부모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자원봉사자로서 활동하는 것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우선,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를 귀찮아하거나, 크게 반겨하지 않는 경우들도 없지 않다. 학부모들의 자원봉사활동을 위한 자생조직이 불법찬조금 등을 조성하여 학교가 곤란한 일을 당하는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학교에 학부모들의 전문지식을 활용할 개방적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일부 학부모들이 자원봉사활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서 치맛바람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학부모들만이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학부모들의 다양한 능력을 학교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봉사는 활성화되어야 한다. 학교는 학부모들의 노력과 전문성을 자원봉사를 통하여 제공받으려는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학부모들은 학교행사나 일을 돕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 자녀들을 키우는 데 학부모로서 도움을 학교에 보태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권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공동 목표 달성하기 위한 노력

학부모들이 학교운영과정에서 의사결정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의사결정자로서 학부모 역할이 제도화된 것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되면서부터였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들로 하여금 재정적 후원자로서나 자원봉사자로서 역할을 넘어서서 학교운영과정에 학부모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장 중심의 닫힌 학교운영을 학교구성주체 중심의 열린 운영구조로 바꿈으로써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의 실정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창의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단위학교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사결정과정에 학교의 구성주체들을 참여시킴으로써 학교장 중심의 ‘닫힌’ 의사결정체계를 단위학교 구성주체 중심인 ‘열린’ 의사결정체계로 바꾸어 놓은 제도이다.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하여 단위학교 의사결정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단위학교 의사결정자로서 학부모들은 무엇보다도 학교운영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하려는 의욕을 가지는 것이 요구된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약 학부모들 사이에 학교운영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한다면, 학교운영위원회는 실패의 위험에 봉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들과 지역사회 인사들은 학교운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하며, 특히 학교운영에 관하여 식견과 합리성을 가진 학부모들은 참여하는 것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학부모들은 또한 교장, 교사들과 학교교육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학교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함께 나눠가지는 동반자적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위원회를 이용하여 학부모들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하여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동반자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무조건 관철시키려고 하기에 앞서 교장이나 교사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동반자적 관계는 동등한 기반위에서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운영위원은 학교장의 이중적 지위에서 오는 고충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학교장에 대하여 부정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이는 학교현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집행자인 학교장을 무력하게 할 뿐 아니라, 나아가 학교운영위원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행하는 자신들의 모든 활동이 개인 자격이 아닌 학부모들의 대표자격이라는 점을 언제나 유념하도록 해야 한다. 학부모 학교운영위원은 개인적 판단에 따라 활동하기 보다는 전체 학부모들의 의사를 파악하여, 비록 그것이 자신의 판단과 다를지라도 대변해야 한다. 학부모 학교운영위원은 안건을 상정하거나 발의하기 전에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며,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학부모들에게 전달하고 보고하여야 한다.

의식 있는 유권자로서의 조건

교육위원과 교육감의 선출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이 지난 2006년 정기국회에서 개정되었다. 학교운영위원이 선출하던 교육위원과 교육감을 이제는 주민들이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학교운영위원이던 학부모들만이 참여하던 선거에 모든 학부모가 유권자로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006년 8월 교육위원 선거까지 적용되었던 학교운영위원으로 구성되는 교육감 또는 교육위원 선출선거인단에 의한 교육감과 교육위원의 선출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일부에서는 지역교육의 수장(首長)이나 대의기관의 구성원을 학교운영위원인 일부 학부모들이 선출하는 것은 지역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거인단의 규모가 작은 데서 초래되는 비리와 담합 등의 가능성, 학교운영위원의 30~40%를 차지하는 교원집단의 과도한 영향력의 작용 가능성들도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금년 2월 14일에 실시된 부산교육감선거부터 적용된 주민직선은 지역 교육운영의 책임자 선출에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그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게 하였다. 주민직선은 주민들로 하여금 지역 교육운영의 책임을 진 사람에게 잘잘못을 직·간접으로 따져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함으로써 주민통제의 원리라는 지방교육자치제의 본래적 의미를 실현한다. 교육위원과 교육감의 주민직선은 교원들의 집단이기주의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요구들에서 교육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교육위원과 교육감의 선출권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커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기술적 능력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으로 우리 지역의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지역단위에서 학부모회를 조직하는 것도 그러한 조건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부모 조직은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출권자인 학부모들을 의식 있는 유권자로 만드는 일, 학부모들의 교육적 요구를 선거과정에 공론화하는 일 등을 할 수 있다.

능력 갖추기 위한 제도 필요해

이제까지 살핀 바와 같이 학부모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리고 과중하기까지 하다. 어떤 이의 지적처럼 학부모의 공적 역할은 커져 버렸고,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짐이 무거워짐을 느끼고 있다. 학부모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역할수행능력을 충분하게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학부모들에게는 그러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게 현 실정이다.

“학교와 교육은 학부모의 도움 없이는 개선될 수 없다”는 인식을 우리 모두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들의 역할 수행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학부모지원 프로그램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학부모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정보제공, 참여촉진, 역량구축, 재정지원 등)에 관하여 국가수준, 지방 및 지역수준, 단위학교 수준의 의무를 규정하는 가칭 ‘학부모지원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지원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교육개혁법(NCLB ACT)’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학부모들이 학교운영과정에 의사결정자로서의 역할이 제도화된 것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되면서부터이다.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반면에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학교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함께 나눠가지는 동반자적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반자적 관계는 동등한 기반위에서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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