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속(聖俗)의 경계가 여기 있나니

2007.03.01 09:00:00

-불이의 가름, 당간지주


불이의 경계
언젠가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를 찾았을 때입니다. 템플스테이를 하며 절에 머물고 있던 외국인들이 서해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벽안의 그들을 보면서 ‘아, 이 산사체험이야말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우리 문화상품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이란 달리 사찰이라고 불립니다. 사찰에서 찰(刹)이란 찰간(刹竿)을 말합니다. 찰간이란 곧 당간(幢竿)을 이르는 것이니,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높은 기둥에 걸어두는 깃발 따위를 말합니다. 이 당간을 고정시키는 장치가 찰간지주, 곧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되는 것이죠. 사찰이라는 의미에서 보듯 우리나라 절의 상징이 곧 당간지주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당간지주는 일주문보다 앞서서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화엄사와 같이 당간지주가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는 당간지주가 들어선 이후 그 절이 확장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절 입구의 당간지주는 이곳에서부터 성역이라는 것을 일러주며, 속세에 찌든 마음을 버리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한편, 당간지주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상징하고, 나아가 이 성속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깨침을 던지고 있습니다. 성과 속의 경계를 나타내면서 성과 속이 둘이 아니라 같다는 이런 엉터리 논리가 어디 있냐고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불’이라는 이 짧은 말에는 ‘너와 내가 남이 아니다’라는 말도 성립되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이 다름 아니다’라는 의미도 숨어 있습니다. 말장난 같은 그 오묘한 의미를 되새겨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나와 너는 분명 다릅니다만, 나는 네가 있기에 그리고 너는 내가 있기에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하루 살았다는 것은 결국 오늘 하루를 죽었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까. 흔히 성인이라고 부르는 예수, 공자, 간디,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들도 속된 세상에서 빛을 남긴 분들이지, 어디 멀리 외계에서 뚝 떨어진 분들이 아니잖습니까.

당간이 사라진 당간지주를 지나 일주문을 통과할 때면 성속불이의 오묘한 논리에 빠져듭니다. 경계라는 것이 단절이 아닌 동일의 개념으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이번 호는 불이의 경계, 당간지주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당간지주의 모범답안
당간지주는 크게 당을 게양하는 길다란 기둥인 당간(幢竿),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지주(支柱), 당간 아랫부분을 받쳐주는 간대석, 간대석과 지주를 받쳐주는 기단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을 갖춰 제대로 남아 있는 당간지주로는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등이 있습니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동서로 90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 있습니다. 발굴 결과 이곳에 서 있던 당간은 돌로 만들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아무래도 익산 지역이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산출되다 보니 백제 무왕 재위 시절에는 돌로 만든 미륵사지 동서탑이 들어섰고, 통일신라기 이후에는 당간까지도 돌로 만들었나 봅니다. 동쪽에 있는 당간지주 한 쪽에 조그마한 돌기둥이 서 있습니다. 당간지주의 키에 비하면 땅꼬마라고 불릴 만큼 작은 데요, 그 부러진 돌기둥이 바로 당간석의 한 부분입니다. 기단에는 안상(眼象)이 잘 드러나 있고 지주의 바깥쪽으로 선을 다듬어 놓았습니다.

최근에 익산의 한 석공업자가 익산의 돌을 사용해 주차장 인근에 당간을 복원해 두었습니다만, 지주 안쪽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인 간공(杆孔)이 나타나지 않는 등 정확도는 떨어져 보입니다. 하지만 당간이 있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참고자료로 활용할 만합니다.

금산사 당간지주도 기단부에는 안상을 새기고 양 지주의 바깥 면에 가장자리를 따라 세로띠를 돋을새김 하였고, 미륵사지의 것과 같이 지주 안쪽에 간공을 세 군데 뚫었습니다.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완벽한 당간지주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알려진 소수서원은 숙수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학자수(學者樹)라고 불리는 울창한 송림 속에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서 있습니다. 소수서원 경내에 들어서면 절터에 있던 석등 부재나 초석, 광배 등의 석물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절터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이지요.

숙수사지 당간지주나 앞서 언급한 당간지주와 같이 지주 안쪽에는 간공 외에 장식을 두지 않고, 바깥 면에는 세로로 돋은 선인 돌대(突帶)로 장식하고, 지주 끝부분엔 굴곡을 주어 치미를 연상시키는 일련의 양식이 통일신라기 당간지주의 정형이자 모범답안입니다. 이런 양식은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나 가야산 자락의 법수사지 당간지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도 마찬가지인데, 근래에 기단부를 새로이 복원해 놓았습니다.

당간지주도 개성시대
신라 도읍이었던 경주에서는 당간지주를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는 기단이나 간대석 부분이 땅에 묻혀있어 하부구조를 알 수 없으나 지주 바깥 부분에 여덟 잎의 연꽃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렇게 당간지주에 연화문을 새긴 경우는 중원 미륵리사지, 고창 교운리 당간지주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황룡사지는 백제 미륵사지와 버금가는 대규모 절터입니다. 이곳에는 부러진 당간지주가 남아 있습니다. 비록 파손되어 그 용도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을 처지가 되었지만 이렇게 큰 절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옛날에는 꽤나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 법합니다.

그 황룡사지 북쪽에 구황동 당간지주가 서 있습니다. 그 당간지주가 분황사의 것인지, 또 다른 절의 소속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 당간지주는 간대석이 거북모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길쭉하고 우뚝 솟은 당간을 등에 짊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딛는 거북을 상상해 보노라면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북이 부도비의 귀부로 활용되는 경우는 많으나 이렇게 간대석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사천왕사지 당간지주는 그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으나 안과 바깥을 모두 뚫은 간공이 원과 직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어 산청 단속사지의 그것과 닮았습니다. 건너편에 있는 망덕사지 당간지주의 경우는 다소 뻘쭘한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그 연유인즉, 원래 이 망덕사를 짓게 된 것은 사천왕사를 확인하기 위해 온 당나라 사신 악붕귀를 속이기 위한 눈가림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천왕사 아래에 급히 지어진 절을 사천왕사라고 안내받은 사신은 ‘이 절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望德遙山)의 절이다’라고 일렀음에서 망덕사로 불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망덕사지 당간지주는 별다른 특징 없이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사천왕사지 당간지주와 망덕사지 당간지주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듯 그렇게 서 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 대군을 문두루비법으로 대파한 데는 이 사천왕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망덕사 또한 자기가 사천왕사라며 우쭐대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 경주시내 주택가에 덩그러니 자리해 있는 삼랑사지 당간지주는 나원리 탑과 함께 경주의 백색미인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백색미가 돋보입니다. 특히 일반적인 지주와는 달리 지주 가운데 부분이 군살 빠진 듯 날씬하네요.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그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 최대입니다. 당간지주 사방에는 어떠한 조각도 없어 꾸미지 않은 투박한 멋이 있기에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갑니다. 어마어마한 지주 위, 아래에 원형 간공이 있는데, 간공에 손을 넣어 두드리면 아주 얇고 투명한 소리가 울립니다. 외강내유(外剛內柔)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요? 참, 그 오른쪽 지주 바깥쪽 간공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신기하게 머리가 쑥 들어간답니다. 머리가 크신 분은 안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PAGE BREAK]철당간
돌이나 철로 만든 당간은 아직도 몇 남아 있습니다. 나주 동문 밖 당간이나 담양 읍내리 당간의 경우처럼 당간석 이음새에 부분에 철테로 두른 경우도 있습니다만 철당간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계룡산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4개를 이어 그 높이가 약 15m에 달합니다. 원래 28개의 철통이 있었으나 1893년 벼락을 맞아 윗부분에 있던 4개의 철통이 부러졌다고 합니다. 기단부에 보이는 안상으로 보아 역시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록 상륜부는 없어졌으나 아마도 용머리를 한 용두보당(龍頭寶幢)이나 보륜 등의 장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용두보당은 당간 상륜부를 장식했던 용머리 모양의 장식물로 당을 걸도록 장치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존 당간 중에서 상륜부까지 완벽하게 남아있는 사례는 없습니다. 다만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제 용두보당이 당간지주용이 아닌 실내용으로 작게 만들어져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경북 풍기에서도 용두보당이 출토되었는데, 당간에 당을 게양할 때 도르레를 이용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안성 칠장사 철당간도 원래는 30단이었으나 현재 철통 14단만이 남아 있습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철통의 지름이 좁아지고 있으며 갑사 철당간과 같이 철통과 철통이 만나는 연결 부위에 철띠를 둘러놓았습니다.

법주사 철당간은 고려 목종 7년(1006년)에 처음 조성되었고 당시의 높이는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년)에 대원군의 명에 의해 당백전(當百錢)이 주조되면서 이곳 철당간이 수거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후 1910년경에 철통 30단으로 복원되어진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철당간의 대표 주자는 청주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입니다. 대개의 당간지주가 보물로 지정된 것에 비하면 국보 제41호로 지정되어 몸값부터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간은 사람과 자동차의 소음에 시달리는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어서 언제 훼손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용두사는 고려시대 사찰인데 화강석으로 지주를 세우고 철통 30개를 연결하여 당간을 세웠습니다.

현재는 20개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중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는데 그 끝 부분에 ‘준풍(峻豊) 3년’에 만들었으며 그 시기는 고려 광종 때인 962년으로 밝혀졌습니다. 워낙 금싸라기 땅이라 한 때 당간지주 바로 옆까지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지만, 청주시민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주변에 제법 넓은 공간을 확보하였습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의 고장 청주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찍어낸 고장이면서, 당간에 명문을 남긴 유일한 국보 문화재를 가져 가히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본고장이라 일컬을만합니다.

당간이 아닌 지주에 명문이 적힌 경우도 있습니다.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서쪽 지주 바깥쪽에는 모두 6행 123자의 글자가 쓰여 있는데, 이 명문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년(826년) 8월 6일에 돌을 골라 이듬해 2월 30일에 건립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당간지주에 명문을 새기는 경우도 아주 드문 경우라 하겠습니다.

괘불지주로
당간지주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괘불지주(掛佛支柱)의 형태로 등장합니다. 이 괘불지주는 당간지주와 그 생김새는 닮았으나 그 기능은 많이 다릅니다. 괘불지주는 불교행사가 있을 경우 법당 앞에 불화를 걸어두고 그 앞에서 법회를 갖던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초파일이나 개산대제 때 큰 절에서 괘불지주에 대형 불화를 내걸고 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위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말이 유래가 됩니다.

달라진 교원승진규정개정안이 발표되면서 일선 학교가 야단법석입니다. 내 몸 뚱아리를 휘감아 나가는 늦겨울 찬바람과 맞선 절터에서, 대답 없는 당간지주에게 물어봅니다. 정말이지, 가르치는 데만 전념할 수는 없을까 하고…. 이렇게 우물쭈물하던 차에 또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또 그렇게…. |울산 옥현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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