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타령, 이름값 타령

2007.03.01 09:00:00

사람의 이름에는 두 가지의 기대가 있다. 하나는 이름의 의미처럼 괜찮은 사람이 되어달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이다. 다른 하나는 이 이름이 만천하에 높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기대, 즉 소통적 기대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이름만큼 ‘소통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숨어 있는 것이 또 달리 있을까?


누군가와 언쟁하다가 상대가 하는 공격의 말 중에, 듣자마자 숨이 탁 막히는 말이 있다. 하나는 “나잇값이나 하세요!”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값이나 하세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상대가 아무리 정중하고 부드럽고 경어체로 말해도 듣는 쪽에서는 치명적인 내상(內傷)을 입는다. 내상을 입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차라리 천한 쌍욕보다도 더 듣기 고약하다. 특히 상대가 나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경우는 그 모욕감이 오래 남는다. 그리고 오랜 모욕감에 비례하여 두고두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부질없는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두 개의 욕 가운데 어느 욕이 더 심한 욕일까 하고 묻는다면, 어떤 쪽이라고 답을 할지 모르겠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어 딱히 정답을 제시할 형편은 아니다. 내 경우라면 나는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이 더 심한 욕으로 느껴진다. 부연하자면 단순히 욕의 표현이 심하다는 문제라기보다, 이 욕으로 인하여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심리 기제가 더 강하게 작동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나잇값이나 하라는 말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경고로 쉽사리 해석이 되는데, 이름값을 못한단 말은 또 무엇인가.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 속에는 내 본명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는 물론이고 내가 달고 다니는 각종 직함들에 대한 불신과 조롱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직함이야 내가 얻은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 이름 석 자야말로 함부로 조롱당할 일이 아니다. 그 이름을 지어 주신 분들이 내 부모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모님까지도 함께 조롱을 당하게 된 것 같아서, 더욱 괘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저잣거리에서 하는 거칠고 질박한 댓거리 욕 가운데, “너 같은 놈을 낳고도 (네 어머니는) 미역국을 먹었겠지!”라는 것도 있다. 이름을 잘 보전하는 일이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일임을 실감하게 한다.

사람의 이름에는 기대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두 가지의 기대이다. 하나는 이름의 의미처럼 괜찮은 사람이 되어달라는 기대일 것이다. 이른바 존재에 대한 기대이다. 다른 하나는 이 이름이 만천하에 높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기대일 것이다. 이른바 소통적 기대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이름만큼 ‘소통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숨어 있는 것이 또 달리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이든 그 부모가 이름을 지어 줄 때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세상에 나아가 그 이름을 크게 떨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꼭꼭 담는다. 착하고 아름다운 딸이 되기를 기대하며 ‘선미(善美)’라고 이름 짓는 부모의 마음을 누가 모르겠는가.

내 이름만 해도 그렇다. 조부께서 내 이름을 ‘동방 인(寅)’자와 ‘터 기(基)’자를 가져와 ‘인기(寅基)’라고 지으셨을 때는, ‘동방의 기틀’이 되라는 큰 기대를 가지셨다고 한다. 이 나이 되도록 내 마음 하나도 제대로 닦지 못하는 나로서는 조상의 기대를 소중하게도 간직하지만 송구할 수밖에 없다. 교육학자 ‘이칭찬’ 교수를 처음 접했을 때, 그의 이름 속에서 내가 느꼈던 그 부모님이 품으셨을 사랑과 기대는 자못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어렵고 살기 힘들었던 옛날에는 ‘개똥이’라는 이름도 드물지 않았다. 설사 ‘개똥이’라고 이름을 붙이더라도 이름 속에 숨어 있는 기원의 의미는 어느 고상한 이름 못지않게 간절하고 각별한 맥락을 끼고 있다. 흙먼지 풀풀 나는 시골 길가에 마른 잡초와 자갈들 틈새에서 한 철 내내 말라 나딩구는 개똥! 그 개똥에 내재하는 미덕이 있다. 그 질박하면서도 검질기고, 누가 발길로 걷어차도 또르르 굴러가 다시 저쪽 잡초와 돌 틈 새로 처박히면서도 결코 부서지지 않고 버티어내는 모습이 개똥의 모습이다.
가난과 질병과 난리가 들끓던 세상, 개똥처럼 강인하게 살라는 기대가 이 이름에 들어 있는 것이다. 웬만 천덕꾸러기가 되어도, 상처 같은 것은 요만치도 받지 말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라는 간절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더러는 개똥이 민간에서 약으로 쓰이기도 하였다니, 남에게 유익한 바가 있기도 하였다. 이쯤 되면 ‘개똥이’란 이름이 만만한 이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개똥이’ 따위의 이름을 지니고, 그 이름에 담긴 소박한 기원을 어딘가에 안고, ‘개똥’처럼 살아왔던, 60, 70년대 아이들의 삶이, 오늘의 시점에서 그 나름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름과 삶의 관계가 크게 왜곡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름 자체는 모두 멋있고 세련되고 참해 보이지만, 온갖 주변 욕망에 찌들려 쉽사리 나약하고 작은 상처도 이기기 힘겨워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개똥이’는 어떻게 인식될지 모르겠다.

이름이 지닌 원래 의미와 기대를 손상시키지 않고, 그 이름에 부합되게 살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도덕이다. 일찍이 공자님도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정명(正名)’의 사상을 강조하였다. 이름[名]과 실체[實] 사이의 관계가 서로 어긋남이 없을 때 윤리가 설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름과 실체가 어긋나면 당장 오해와 왜곡이 생기고 혼란이 생긴다. 사물의 이름이 정명(正名)을 얻지 못하면, 즉 이름답게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물 자체가 왜곡된다. ‘수입 쇠고기’가 ‘한우 쇠고기’로 뒤바뀌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있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 정도로 ‘한우 쇠고기’는 이미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이름의 뒤틀림으로 인한 사물의 왜곡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 이름이 정명(正名)의 경지를 갖지 못하면 그 폐해는 심각하다. 우리가 자기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 사람이 이 사람 맞아?’라는 의문을 계속 투사하며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은 깊은 불신의 늪에서 갈등의 골을 깊이 파고 속임과 미움을 악순환 시킨다.

이름에 걸맞게 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름을 얻을수록 이름답게 살기가 만만치 않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기를 소망했던 시인 노천명은 이름의 무거움을 미리 알고, 이름의 운명으로부터 피해 가고 싶은 예감이 있었을까. 1938년에 발표된 이 시는 시인 노천명이 아직 이름 앞에 자유로울 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름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일찍이 바랐던 그녀,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일제 말 친일의 굴레에서 안타깝게도 훼손된다. 다시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그녀의 이름은 고초를 겪는다. 시대나 역사의 거울 앞에서 이름을 훼손하지 않고 보전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임을 느끼게 된다.

이름에 걸맞게 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은, 아직 세상에 이름을 크게 얻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더 하다. 요즘처럼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가자면 더욱 그렇다. 인터넷 소통 공간은 익명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익명성은 거침없는 표현의 욕구와 자유를 넓혀 주기도 하지만, 실명에 대한 책무성을 슬쩍 놓아버리게 하는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익명성은 우리의 숨은 무의식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활개를 쳐보고 싶을 때 기대고 싶은 언덕이다. 심리적으로 보면 익명의 공간은 숱한 유혹을 유발시키는 공간이다. 범죄를 꿈꾸는 모든 범인은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상황’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을 전제로 범행에 착수한다. 자신의 실명이 알려진 고향 마을에서는 예의범절이 반듯하다가도, 대도시 군중 속의 익명 공간으로 들어오면 형편없는 행동거지를 보이는 경우를 굳이 남에게서 찾아야 할까. 그래서 심하면 아예 내 이름을 팽개치고 사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 hangyo@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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