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 ‘존경받는 사람’ 키워야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 부자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을 빛내주면 그보다 더한 바람은 없다.
흔히 “아이는 부모의 얼굴이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의 성공은 곧 부모의 성공과도 같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부모의 사회적인 지위가 높더라도 자식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부모가 자신들의 일 때문에 제대로 자녀를 돌보지 못했거나 자녀교육에 소홀할 경우 아이는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가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자식이야기만 나오면 풀이 죽어 고개를 들지 못한다. 반면에 사회적 지위가 낮은 부모라도 자녀들이 남부럽지 않게 자라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외국의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간다면 그 부모는 언제나 남들 앞에서 당당해진다.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절로난다. 사는 것도 신바람이 난다.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데, 대부분 다음과 같은 유형 가운데 하나에 속할 것이다.
• A-type : 공부는 잘하지만 이재에 어두워 가난하게 사는 사람
• B-type : 공부도 잘하고 이재에 밝아 부자가 된 사람
• C-type : 공부는 잘 못했지만 이재에 밝아 부자가 된 사람
• D-type : 공부도 못하고 이재에 어두워 가난한 사람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B타입이나 C타입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B타입은 자칫 엘리트주의에 빠져 오만할 수도 있고, 반대로 C타입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단점을 각각 가지고 있다. 그래도 모든 부모들은 B타입의 유형을 바란다. 공부도 잘하고 커서는 부자로 살았으면 하는 게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 A타입은 이전에는 통했지만, 지금은 순진한 사람으로 무시당할 수 있다. D타입은 모든 부모가 가장 바라지 않는 유형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부자가 된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존경받는 사람’이다. 존경받는 부자, 존경받는 기업인, 존경받는 교사, 존경받는 학자, 존경받는 정치인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저마다 존경받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살만한 사회일 것이다. 특히 부자 중에서 존경받는 부자, 존경받는 기업인 등이 많을수록 사회는 그만큼 훈훈한 인정을 꽃피우며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가로는 현재 빌 게이츠를 꼽을 수 있지만 빌 게이츠보다 100여년 앞서 선행을 실천해온 기업인이 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으로 5대 15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나 발렌베리 가문보다 더 오랜 전통의 존경받는 부자 가문이 있다. 경주 최부잣집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12대 300여 년 동안 이웃에 대한 배려와 선행을 가문의 원칙으로 삼고 사회의 등불이 돼왔다.
부의 올바른 사용으로 신의 얻어
경주 최부잣집은 재산과 재물에 대한 원칙을 대대로 공유하며 가진 자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존경받은 부자의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했는가하면 마지막에는 대학설립에 전 재산을 쏟아부음으로써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런 부자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최진립(1568~1636)과 그 아들 최동량, 손자 최국선에 이르러 재물이 쌓이면서 ‘진사 이상 벼슬 금지’ 등과 같은 가훈을 실천해 최진립의 11대손인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12대에 걸쳐 300년간 존경받는 부자로 명성을 누렸다. 특히 경주 최부잣집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쌓은 부(富)의 쓰임새와 부자로서의 도덕성에 있다.
박경리가 쓴 소설 〈토지〉에는 동학당과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최부잣집의 윤씨 부인이 절에서 훗날 동학당의 접주가 되는 김개주에게 겁탈을 당한다. 그런데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이들 세력이 소작농들을 수탈하는 지주들의 집에 불을 지르면서 ‘응징’을 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최부잣집에도 김개주 등 동학당들이 들이닥친다. 최부잣집은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고 종택(宗宅)을 보존하게 된다. 김개주와 윤씨 부인의 ‘악연’이 오히려 최씨 가문을 구한 셈이다. 물론 최부잣집이 상대적으로 악행을 덜 저질렀음도 참작됐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한 곳에 정착해 살아왔다. 대대로 이웃들에게 신망을 얻는 가문은 명문가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패악을 일삼은 일부 양반가들의 경우 대대로 살아온 종택조차 온전하게 보존하기 힘들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처럼 동학혁명 등 사회적 격변을 거치면서 지역민들을 못살게 군 일부 악덕지주들은 처단의 대상이 되었고 종택마저 불에 타는 수모를 당했다. 대구 폭동 때에는 노동자를 착취했다며 수많은 공장들이 불에 타기도 했다.
명문가의 기준으로 현재까지 종택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지를 여부로 삼는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2006년 11월에는 경주 최부잣집 사랑채가 복원되기도 했다. 1970년에 원인모를 화재 이후 36년 만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악행을 저지러 불에 탄 양반가문의 사랑채였다면 결코 복원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문의 자부심을 유산으로 전승
이 사랑채는 최부잣집을 존경받는 부자로 만든 상징물로서 그 의미가 있다. 최부잣집이 12대 300여 년 동안 부를 이어 온 배경은 다름 아닌 절제와 남에 대한 배려였다. 오늘날에도 경주 최부잣집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이 쌓은 부의 쓰임새와 부자로서의 도덕성에 있다. 그 원칙들이 이른바 최부잣집의 수신(修身)의 철학인 ‘육연(六然)’과 제가(齊家)의 철학인 ‘육훈(六訓)’에 담겨있다.
최부잣집에서 오늘날 교훈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경영원칙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부의 안정을 도모한 데 있다. 여기에 부합하는 원칙으로 육훈 가운데 하나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를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수천 명씩 굶어죽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갖고 있는 논과 밭을 그야말로 헐값으로 내다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부잣집은 이런 논밭은 사들이지 않았다.
최부잣집은 다른 사람에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지 않았다. 최부잣집은 최대보다는 차대(次代)를 선택함으로써 장기적인 안목에서 부의 극대화와 안정을 도모했다. 재물이 넘치면 결국에는 시기와 질시를 받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는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주영 별장을 모 재력가가 헐값으로 사들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고 정몽헌 회장이 경영난으로 급하게 별장을 내놓자 당시 시세보다 싼 33억 원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모씨가 비난을 받은 것은 위기를 이용해 이를 헐값으로 재빠르게 매입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부잣집은 요즘 기업이나 개인 등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중시되는 ‘이미지 관리’에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복원된 사랑방은 과객(過客)에게 항상 개방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사랑방을 찾은 과객의 신분은 학덕 높은 선비, 풍류객, 협객, 잔반(殘班) 등으로 이들은 세상의 소식을 알고 있었던 정보전달자였다. 경주에 사는 최부잣집에게 이들은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정보 창구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특히 과객은 최부잣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주는 자발적인 홍보맨 역할도 했다. 이들은 각 지방을 다니면서 최부잣집의 후한 인심과 높은 학덕을 널리 알렸고, 그 때문에 팔도 전역에 최부잣집 인심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는 또한 오늘날 강조되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있게 한다.
경주 최부잣집은 또한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한다.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의 손자 최염씨는 독립자금을 댄 할아버지의 수행 비서를 했지만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대학설립에 사용하는 바람에 한 푼도 물려받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최염씨는 ‘최부잣집의 후손’이라 것만큼 더 값진 유산은 없다고 말한다.
사회 환원으로 신뢰 얻은 대기업
우리나라에 경주 최부잣집이 있다면 스웨덴에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 있다. 쉽게 비유하자면 발렌베리 가문은 한국의 경주 최부잣집과 같이 존경받은 부자의 길을 걸으며 스웨덴 사회의 등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우리나라의 삼성, 현대그룹과 같이 스웨덴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통한다. 발렌베리 그룹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수익의 일정부분을 사회에 내놓으며 양심적인 경영을 해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발렌베리는 처음부터 존경받는 기업, 존경받는 부자가 결코 아니었다. 이 가문은 은행을 만들고 큰돈을 벌게 된 이후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도움을 줌으로써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평판을 얻고 5대 150년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발렌베리가(家)의 역사는 안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지난 1856년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현 SEB)을 설립하면서 시작했다. 금융업에서 출발해 전자, 트럭, 의료장비, 제지, 산업공구, 베어링, 원자력, 항공기, 정보산업에 이르는 100여개 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발렌베리라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에릭슨(통신기기), 일렉트로룩스(가전), ABB(중전기), 스카니아(상용차) 등 발렌베리가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이름을 대면 금방 알 수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창업자부터 5대째 내려오는 동안 조용하되 적극적으로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발렌베리 가문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돈을 벌면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들은 막대한 부를 자신들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번 만큼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전통은 다음과 같다.
발렌베리 그룹은 수익이 나면 그 수익을 공익재단인 발렌베리 재단에 맡긴다. 발렌베리 재단은 수익의 대부분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자금으로 헌납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웨덴 사회 전체로 되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발렌베리 창업자 아들인 크누트는 1917년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크누트 앤 앨리스 발렌베리 재단(KAW)’을 설립했는데, 그 규모가 무려 4조원에 이른다. 이는 노벨 재단보다 규모가 크다. 그는 스톡홀름경제대학을 설립하는 등 공익사업과 도서관을 짓고 과학기술분야를 후원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기초과학기술 연구를 적극 지원해 스웨덴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발렌베리 그룹은 창업자들이 줄줄이 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창업자 아들 크누트와 3대 마쿠스 발렌베리 등도 재단을 만들어 현재 ‘크누트 앤 앨리스 발렌베리 재단’과 ‘마리앤느 마쿠스 발렌베리 재단’, ‘마쿠스 앤 아말리아 발렌베리 추모재단’ 등이 있다. 이들 재단은 대주주이기 때문에 순이익은 이들 재단으로 들어가고 있고 이를 통해 투자 회사인 인베스터는 스웨덴의 과학 인재 양성을 이끌고 있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 시청 앞 광장에는 전 재산을 기부해 재단을 만든 크누트의 동상이 서 있다. 발렌베리 가문이 그만큼 스웨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쌓았다는 증거이다. 스톡홀름시(市)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는 기꺼이 사재를 털어서 시민의 행복을 증진하는데 써달라며 시에 기부를 했다. 시민들은 그 뜻을 기려 그의 흉상을 시내 한 복판에 세웠다고 한다.
명가의 세상 밝히는 원칙과 신념
명문가들은 각기 나름대로 가훈이나 원칙, 전통을 가지고 있다. 전통이 없다면 명문가를 수백 년 동안 유지해 오기 힘들다. 전통은 특히 위기 때마다 이를 극복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원칙과 신념이 없다면 험한 세상에서 눈앞의 이익이나 불의와 타협하기 쉽기 때문이다.
명문가는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명문가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명문가가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즉, 자신을 부자로 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명문가는 사회와 궁합이 좋아야 진정한 명문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해 돈을 사용한다면 그게 바로 ‘졸부’라고 할 수 있다.
졸부와 명문가의 차이는 바로 그가 속한 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학혁명과 한국전쟁 때 사회와의 관계가 좋지 못한 양반가문들의 집이 불타기도 했고 또 공개처형을 당하는 등 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것은 재산을 모아 이웃을 돕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주변사람들과 궁합을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가족 간의 궁합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의 궁합을 잘 유지한 대표적인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 최부잣집의 사랑채가 소실됐지만 다시 재건된 것은 그 가문이 존경받는 부자로 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당한 재산이라야 후손들도 그 재산에 대해 떳떳하게 행사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재산을 일군 록펠러 가문은 5대째에 이르러 그 후손들이 가문에 자긍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선조들이 이룬 부의 축적이 한마디로 무자비했기 때문이다. 후손들은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룬 재산을 혐오하면서 결국 사회에 재산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내놓았다. 반면 발렌베리 가문은 록펠러 가문처럼 5대째에 이르고 있지만 그 후손들은 스웨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가문,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과 경주 최부잣집은 각각 5대, 12대에 걸쳐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을 실천하면서 존경 받는 부자의 본보기를 보여 왔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부자가 명멸해 갔지만 발렌베리 가문과 경주 최부잣집만큼 존경받은 부자의 사례는 결코 흔하지 않다. 특히 경주 최부잣집의 만석의 재물은 사라졌어도 그들이 남긴 ‘육훈’과 ‘육연’은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있다.
명문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 명문가를 탄생시키기는 불가능하며, 몇 대를 거쳐 정신과 철학이 이어져 가풍으로 자리 잡을 때야 가능한 일이다.
• 경주 최부잣집의 제가철학 육훈(六訓)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둘째,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 경주 최부잣집의 수신철학 육연(六然)
자처초연(自處超然) :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에게 초연하라.
대인애연(對人藹然) : 남에게는 언제나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하라.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에는 마음을 맑게 가져라.
유사감연(有事敢然) : 일을 당해도 겁내지 말고 용감하게 대처하라.
득의담연(得意淡然) : 성공했을 때에는 오히려 담담하게 행동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의에 빠졌을 때는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