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기의 재발견, 재개발

2008.11.01 09:00:00

개인기란 말은 원래 축구나 럭비 등의 구기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개인적 기량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그런데 요즘은 여럿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특기를 발휘하여 좌중의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재주를 ‘개인기’라고 하는 것 같다. 그야말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이 나만 잘해야 하는 재주 같은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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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기(個人技)’란 것이 유행이다. 아니 유행이 된 지 오래되었다. ‘개인기’는 물론 요즘 사람들의 유머 경향을 반영하는 말이다. 여럿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특기를 발휘하여 좌중의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재주를 개인기라고 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한 개인이 가진 개인기라면 노래 개인기, 춤 개인기, 운동 개인기, 솜씨 개인기 등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개인기 중에서도 유독 ‘말로써 하는(보여 주는) 개인기’가 관심을 끈다. 내 생각에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개인기 장르는 노래인데, 이 노래 개인기가 기계음으로 연출되는 노래방으로 잠적하면서, ‘말로써 보여주는 개인기’가 등장한 것 같다. 즉, 노래방 노래로서는 개인기다운 면모를 충분히 나눌 수 없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민주화와 더불어 권위주의적 대상을 비틀어 패러디(모방)할 수 있는 분위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말로써 하는 개인기’란 게 무엇인가. 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의 목소리나 화법 특징을 그대로 모방하여 연출하는, 이른바 ‘성대모사(聲帶模寫)’가 주종을 이루는 것이다.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같은 전직 대통령들의 성대모사를 잘 해내는 개인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만으로 방송에서 뜬 연예인들도 있었다. 방송 오락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들을 불러놓고 이런 식으로 개인기를 강요하다 보니, 으레 오락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그럴 듯한 개인기 한두 개는 미리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
  방송이 이렇듯 ‘개인기의 풍속도’를 유행시키다 보니, 일시에 개인기 열풍이 만연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학급 오락회 같은 곳에서도 개인기 소개가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이 경우에는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보여 주는 말투를 그럴 듯하게 모사하는 학생이 단연 인기를 얻는다. 심지어는 대학 사은회의 여흥 장면에서도 개인기 코너는 어김없이 살아난다. 돌잔치나 생일잔치에서도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모이면 돌아가면서 개인기 선보이기가 빠지지 않는다. 관광버스 안 풍경도 더러는 변하였다. 노래 부르기 일변도에서 노래 대신 자청하여 개인기를 보여 주겠다는 경우가 생긴다. 아니 개인기 위주로 차 안 오락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가이드들이 많아졌다.
  말이 변하면 세태도 변하는 법이다. ‘개인기’란 말을 이렇게 사용할 줄이야 그야말로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말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이니 굳이 이 말을 따져 보자면 이러하다. 개인기란 말은 물론 글자 뜻 그대로는 ‘개인의 재주’란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축구나 럭비 등의 구기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개인적 기량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그리고 이 ‘개인기’란 말은, 선수들이 팀워크(team work)를 이루어 조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량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쓰인 말이었다. 예컨대, “브라질 축구는 ‘개인기’를 앞세우고 독일 축구는 ‘조직적인 세트 플레이’에 강하다”라고 할 때 썼던 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개인기’는 스포츠와는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이 나만 잘해야 하는 재주 같은 것이 되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세태가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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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문제는 내보일 만한, 이렇다 할 개인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다. 성대모사와 같은 개인기는 다분히 타고나는 측면이 있다. 안 되는 사람은 죽어도 안 되는 것이다. 개인기 콤플렉스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 고민이 심각하다는 경우도 있단다. 개인기 자체가 안 되는 데서 생기는 열패감은 접어두고라도, 잘 나가던 분위기가 나 때문에 망가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그저 이 자리를 빨리 면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로 너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다 할 개인기가 없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이런 식의 개인기에 너무 주눅들 필요가 없다. 물론 연연해할 필요도 없다. 교단에 서는 선생님들에게 개인기는 어떻게 인식되는가. 더러 개인기가 모자라는 것이 아쉽기는 해도, 그것에만 빠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잘 쓰면 약(藥)인가 싶기도 하지만, 달리 교육적 보완의 기제를 갖추지 못하면 해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성대모사’개인기란 흉내 내기의 일종이어서 경박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 경박함과 더불어 개인기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좌중이 일회성 웃음을 나누는 데 일조를 할 뿐이다. 물론 성대모사의 내용을 특별히 의미 있게 준비하여 퍼포먼스의 수준과 질을 높일 수도 있다. 그렇게만 한다면 성대모사 개인기도 고급의 유머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대개는 그냥 웃자고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저 흉내를 잘 낸다 하는 정도의 기교가 되거나, 미운 대상을 고약하게 흉내 냄으로써 스트레스 해소성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선생님들은 더러 학생들에게서 개인기를 주문받고 고역을 치른 적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같이하여 어울리며, 어렵사리 개인기라는 것을 하지만, 스스로도 “에이, 이거는 아니다”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을 것이다. 잘 안 되는 개인기를 했을 때의 부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은 차라리 그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민망한 것이어서 낭패스럽다. 설사 아이들 앞에서 개인기가 그럴싸하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스승의 진면목을 가릴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 무언가 보완의 지도를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는 손사래를 치며 “선생님, 그런 것 못한다”고 완강히 거절한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 다가가 주지 못했다는 찜찜함이 남는다. 교육이란 것이,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진정한 의미의 개인기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지혜로운 판단이 아니다. 이렇게 소통이 중시되고 사회적 상호 작용이 중시되는 시대에 남과 어울릴 수 있고, 학생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소통 코드로써 나만의 개인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개인기는 나 자신에게도 은은한 기쁨과 그 나름의 보람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쯤에서 나의 진정한 개인기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 보면 어떻겠는가. 아니 더 본질적으로 개인기와 관련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더 좋을 듯하다. 물론 이 물음은 선생으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개인기라는 것이 사회적 자아로서 또는 교육자적 자아로서 나를 소통시켜 나가는 중요한 코드라면 나의 개인기를 이제부터 재발견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기는 새롭게 개발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하늘에서 새로 어떤 재능을 부여받을 수는 없는 일이고, 이전의 내 안에 있던 어떤 재주를 그야말로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탄생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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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의 개인기를 발견해 보자. 성대모사에 집착하지 말고, 기존에 내가 친숙했던 어떤 재주 하나를 재발견해 보기로 하자. 나는 그것을 ‘낭독의 개인기’로 설정해 보았다. 낭독하기란 별로 무리가 없는 평범한 재주이므로, 나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낭독의 재주를 재발견해 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낭독을 새로운 개인기로 개발하라고 한다면, 낭독이 뭐 그리 대단한 재주 반열에 놓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개인기 하나씩을 뽐내며 돌아가는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낭독을 하겠다면 너무 썰렁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꾸 해보면 이것이 예상 외로 썰렁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 물론 노력이 필요하다.
  낭독이 새로운 개인기가 되려면 약간의 창의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은 낭독의 개념을 조금은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그냥 글을 읽는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해서 글을 읽어 주는 이벤트로 낭독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읽어 주는 글의 내용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과 의욕과 동기에 부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목소리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발음이 얼마나 정확한가 등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나 자신의 개성적 목소리로 읽어 주면 된다. 상대를 위한 글 읽어 주기의 마음만 진정하다면 자연스럽게 공감을 주는 목소리 연기가 나오게 되어 있다.
  상황에 맞는 낭독 거리를 챙기는 일이 낭독 개인기를 꾸준히 진화시켜 가는 첩경이다. 나는 결혼 주례를 서는 자리에서는, 새 출발의 청신한 축복을 노래하는 유자효 시인의 <아침 송(頌)>이란 시를 정성껏 낭송해 준다. 더러는 하객들의 자리에서 박수가 나오기도 한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에게는 괴테의 <이태리 기행> 중 한 구절을 낭독해 준다. 마치 내가 괴테인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정성껏 읽는다. 동료들끼리 야외 나들이를 갈 때는 그 장소와 풍경에 맞는 느낌을 글로 써서 내 글을 내가 낭독한다. 때로는 술자리에서 내 순서가 되면 송대관의 <차표 한 장>이나 태진아의 <옥경이>를 노래가사만 뽑아서 낭독을 한다.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를 외워서 낭송해 주면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다. 오이디푸스가 마지막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하게 된 자신의 운명을 뒤늦게 알고 번민과 회한에 차서 통탄의 목소리로 전하는 대사는 그냥 보통의 낭독 연기로만 전하여도 관광버스 안의 동료 여행객 일동을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다. 해볼수록 노하우가 개발되고, 지적인 매력이 드높아지는 개인기로 진화됨을 알 수 있다. 물론 교육의 가치와 효과를 동반한다.
  우리들 안에 있는 개인기를 재발견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리모델링하자. 굳이 낭독의 개인기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어도 무방하다. 소통이 즐거우면 존재가 행복해진다. 선생님은 유독 더 그렇다.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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