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놓칠 수 없는 보람이자 즐거움입니다"

2010.07.01 09:00:00

“어떻게 하면 지구를 콩알만 하게 만들 수 있을까? 질량과 무게는 같아야 해”, “앞에 나와서 칠판에 점을 찍을 수 있는 사람? 점을 찍고 어떻게 점을 찍게 됐는지 설명해볼까?” 매주 수요일 5교시 서울독립문초 방과 후 수업 ‘수학 원리 탐구반’에는 기상천외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수업 주제 역시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수의 족보’, ‘원을 직사각형으로 둔갑시키는 원의 넓이 공식의 원리’, ‘집합(“예쁜 사람 모여”하면 모일까? 말까?)’ 등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자극한다. 재치 있는 질문으로 수업을 이끄는 사람은 바로 이 학교 안복규(58) 교장. 그는 ‘수학 원리 탐구반’ 외에도 특별활동반인 ‘고전과 과학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탐구학습부’도 맡고 있다. 직접 수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안 교장은 “교감이 된 후부터 가장 아쉬웠던 일이 더 이상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라며 “교장이 되면 꼭 다시 즐거운 수업을 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이야말로 가장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수업은 나의 자아실현”
3월부터 학교장 특강으로 방과후 학교의 ‘수학 원리 탐구반’ 수업을 해오셨습니다. 수업을 시작하신 이유가 있나요?
“교감으로 승진한 후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고 슬펐던 일이 아이들과 더 이상 수업에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 지도하는 대로 아이들이 커 나가고 잘해내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제 성취이고 보람이어서 평교사 시절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 해왔는데 바로 그런 교사로서의 보람을 잃는 것이었죠. 그래서 행여 수업 결손이라도 생기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웃음) 교감 시절 교장이 된다면 꼭 다시 수업을 하겠다고 다짐해왔고, 교장 발령을 받자 마자부터 방과후 수업이나마 다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교장선생님의 수업을 ‘재치 있다, 재미있다’고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왜 수학 원리 탐구반 수업을 계획하셨고, 어떤 내용을 수업하십니까?
“전공은 아니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수학이 늘 재미있어서 교사 때부터 영재반 지도를 도맡아 왔습니다. 그런 경험을 살려 수학이 어렵고 자신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딱딱한 교과서 내용에서 벗어나 수학적인 호기심을 유발하고 원리를 이해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수학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치 있는 질문과 비유, 이야기로 수학 원리를 풀어내고 있죠.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예쁜 사람 모여라 하고 말했더니 다섯 명이 모였는데 다섯 명은 멍청한 사람일까요? 똑똑한 사람일까요?’하고 질문을 해요. 수학의 기준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 ‘~ 보다 예쁜 사람 모여라’ 해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아이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개설 당시에 50여 명이 지원했는데 반을 나눌 수 없어 3학년 이상이면 누구든 와서 들을 수 있는 열린 학급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전과 과학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탐구학습부’라는 특이한 이름의 특별활동반도 맡고 계신데 고전과 과학, 이야기는 서로 어울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요즘 책 읽어주기 연구학교가 화제인데 저는 책을 그냥 읽어주는 것보다는 교사가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소화한 후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훨씬 더 교육 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책을 읽어 주는 것 이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하니 교사가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부담은 있죠. ‘고전과 과학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탐구 학습부’ 특별활동반은 역사, 고전, 과학 전반에 걸친 내용들을 이야기로 풀어가고 싶어서 만들었습니다. 야사(野史), 정사(正史), 수학, 과학, 상식 등 제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강한 경험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스토리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잊지 않도록 해줍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제가 제 이야기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죠.”

항상 열려 있는 교장실, 학교장 칭찬제
교장실 문 앞에 ‘문턱 없는 교장실, 여러분의 방문을 기다립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띕니다. 인터뷰 중에도 아이들이 끊임없이 교장실을 찾아오네요. 쉴 틈이 없으시겠어요.
“학교장 칭찬제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인성교육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격려해주고, 최선을 다 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방법이죠. 담임선생님의 칭찬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교장실에 와서 직접 칭찬받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 될 것 같았어요. 하루 평균 20~30명, 많은 날은 100여 명이 교장실을 찾습니다. 공부 잘한 아이는 물론이고, 수업태도가 좋은 학생, 봉사를 잘한 학생, 연극을 잘한 학생, 신문일기를 잘 쓴 학생, 친구를 잘 도와준 학생 등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다면 칭찬받을 수 있어요. 학생들이 추천해 선정하고, 담임교사가 간략히 이유를 적어 교장실로 보내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칭찬합니다’라는 도장을 찍어주며 축하해주죠. 학기별로 평가선정위원회를 열어 시상도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한테 칭찬받으니 자부심이 커집니다. 이런 사소한 노력이 한 명의 아이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보람이 있는 일이죠.”

“성취율 10% 달성하면 무조건 표창”
독립문초 수학경시대회는 다른 곳과 다른 상의 기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답만 맞추는 교육을 하고 싶지 않아요. 수학경시대회에서 성적 우수 학생만 상을 받는다면 공부가 어려운 학생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상을 받을 수 없죠. 모두가 100점을 맞을 수는 없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면 그 노력하는 과정은 너무 훌륭합니다. 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 못하는 학생 모두가 소중해요. 그래서 저희 학교 수학경시대회에서는 누구나 성취율 10%를 달성하면 그것을 칭찬하기 위해 표창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공부”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들께 강조하시는 교육법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과정이 굉장히 중요해요. 사교육 문제라기보다 공부를 남에게 의존해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 공부를 계획하고 해내는 과정 자체가 공부이고, 그것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에서 남들과는 다른 창의력과 사고력이 길러집니다. 반면에 학원, 가정교사 등에게 의존하는 학생들은 공부의 과정 자체를 학원, 가정교사 선생님이 계획하고 진행하죠. 당장 지식은 습득될 수 있지만 절대로 창의력과 사고력, 자기주도 학습력은 길러지지 않아요. 정답이 맞고 틀리는 것은 당장은 눈에 보일지 몰라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원리를 본인 스스로 탐구해서 발견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진짜 학습법이죠. 저희 학교 교사들에게도 절대로 교사 중심의 수업은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늘 교사는 최소한의 제시만 해주고 학생이 더 열심히 주도하고 말하며 참여하는 수업이 되도록 하라고 하죠.”

초임교사 시절 학생들을 다시 부른 이유
37년간 교직생활을 해오셨는데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제가 처음 담임을 맡았던 충북 진천 학성초 27회(1975년 졸업) 졸업생 40명에게 최근 인증서를 줬어요. 지금 마흔이 넘은 제자들의 초등학교 시절 면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이제는 어엿하게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 된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 장점을 알려주고 싶었죠. 제자들의 자녀, 배우자들은 그 시절 제자의 모습을 알 길이 없잖아요. 한 명 한 명 초등학교 시절 각자 뛰어났던 점들을 기록해서 인증해줬더니 본인들도 기억 못 하는 일을 기억하신다면서 다들 놀라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37년의 교직생활이 생생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보람 때문에 교직생활이 참 즐겁습니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
이상미 월간 새교육 기자 smlee24@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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