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입니다"

2010.10.01 09:00:00

책 <우리말 동요 노랫말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의 저자 김양진 고려대 교수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동요 ‘과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과꽃’은 무엇일까?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는 동요 ‘다람쥐’의 다람쥐는 무슨 뜻일까? 아이에게 동요를 불러주다 문득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단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 바로 동요 속 노랫말의 어원을 찾아 나선 김양진 고려대 민족문화원 교수다. 국어학자로서 국어사전을 편찬하기도 한 그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담긴 동요 40곡을 찾아 <우리말 동요 노랫말들은 어디에서 왔을까?>(루덴스)를 펴냈다. 김 교수는 “한국어가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활에서 흔히 쓰는 일상의 단어들 속에는 우리만의 경험이 담긴 재미있고 놀라운 어원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면서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만으로도 한국어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요’와 ‘어원’은 연결 짓기 어려울 것 같은데 처음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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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요를 부르면서 알고 싶지만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설명해주지 않는 단어들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까맣게 잊고 지내다 어느 날 동요 ‘과꽃’의 과꽃이 무엇인지 묻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서 다시 그때가 생각났죠. 동요는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라 생활에 밀착되면서도 쉬운 단어들을 사용하는데 국어를 오래 공부해온 저도 찾아보지 않고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과꽃은 본래 ‘국화꽃’을 가리키던 말인데 국화의 옛말 ‘구화꽃’에서 입말이 줄어 ‘과꽃’이 됐어요. 그것을 확인한 순간 개나리는 왜 개나리이고 진달래는 왜 진달래일까 계속 궁금증이 생겼죠. 그래서 초등학교 교과서 안의 동요들을 찾아 어원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로는 아이가 잠들기 전에 동요를 불러주고 노랫말 속 단어의 어원 이야기를 해주니 아이도 한글을 쉽게 익히고 재미있어했어요.”

노래와 스토리텔링이 합쳐지면서 한국어 공부까지 되네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재미있는 어원들이 있나요?

“왜 ‘전골’이라는 희한한 단어를 쓸까요? 전골은 ‘전투모자’에서 온 말입니다. 옛날 전쟁터에서는 음식 해먹을 도구가 없어 전투모자를 벗어 사용했는데 쇠로 된 옛날 전투모에는 머리에 쓰면 움직이지 않도록 안에 골이 있어 ‘전골’이 된 것이죠. 참 흥미로운데 잘 모르고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한국어는 알고 보면 단어 하나하나가 얘깃거리이고, 스토리텔링이 됩니다.”

한국어에 유전자처럼 기록돼 있는 역사

설명을 듣다 보니 한국어 단어 하나에도 흥미로운 유래가 있네요.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말들에는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정서나 속 깊은 의미,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경험이 담겨 있어요. 우리는 한반도에서 대대로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 모든 역사가 다른 곳곳에도 있지만 우리가 쓰는 한국어에도 유전자처럼 남아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들을 의식적으로 잘 살펴보면 한국어에 대한 오랜 역사들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총각김치를 만드는 ‘총각무’는 옛날 총각들이 길게 땋은 머리 모양과 비슷해 총각무가 됐습니다. 다른 말로 ‘알타리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알타리는 오랑캐 족속 이름으로 역시 그들의 머리 모양과 비슷해 알타리무라 부르게 된 것이죠. 한국어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르는 우리의 경험 속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수많은 조상들의 경험이 말에 남았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경험 속 이야기 없이 들어오거나 만들어지는 단어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 고립되거나 도태되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이 되면 사라져 버리는 우리말들이 그렇죠. 단어만 습관적으로 쓰고, 그 안의 뜻을 모른다면 결국 그 단어를 설명할 수 없게 될 때 사라져 버립니다. 예를 들면 ‘얼짱’, ‘몸짱’이라는 말이 있는데 얼짱에는 ‘얼굴’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반면 몸짱에는 ‘몸’이라는 단어가 살아 있죠. 세대가 바뀌어도 ‘몸짱’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특별히 설명하지 않으면 ‘얼짱’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결국 몸짱이 좀 더 오래가는 단어로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비슷한 말이라도 어원이 불문명한 단어들은 옛날부터 소멸해왔어요. 단어를 쓰면서 우리가 그 단어의 유래와 역사, 단어가 가진 경험을 안다면 오래오래 우리 삶 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외계어 축약어, 세월 흐르면 자연히 없어져”

아이들의 언어생활 문제로 외계어, 축약어 사용을 많이 지적하는데 이런 문제들도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으로 해결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이미 그렇게 돼 왔습니다. 아이들이 쓰는 외계어, 축약어는 ‘말장난’인데 언어 습득 과정에 어느 10대에게나 있었던 일입니다. 자기 필요에 따라서 경험적으로 은어를 만드는 것이죠. 제 세대에서는 ‘손오공’같은 말이 유행이었는데 풀어쓰면 ‘손댈 수 없는 오리지널 공주병’이라는 식이었어요. 우리 세대는 다 알았던 이야기지만 지금 사람들은 일부러 설명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죠. 그 단어가 사람들의 일상어가 되지 않는다면 이해되지 않는 말들은 결국 없어집니다. 아이들이 쓰는 외계어나 축약어를 두고 우리말이 파괴되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 말들은 필요에 의해서 잠깐 쓰이는 시대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어요.”

그렇다면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아이들의 언어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언어가 경험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아이들이 우리말에 관심 갖지 않은 이유는 경험 속에서 살아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습득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을 제대로 모르고 그냥 문맥 속에서 알아들어야 하니 우리말은 어렵다고 생각하죠. 일본식 한자어, 중국식 한자어 등 종류도 많은 한자어가 가장 큰 문제인데 저는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친다고 한국어를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제’가 무엇일까요? 나라 국(國)에 사귈 제(際)라고 한자를 외워도 그 뜻은 잘 외워지지 않습니다. ‘제’ 자가 일본에서는 무엇과 무엇 사이라는 우리말의 접미사 같아서 일본에서 국제는 나라와 나라 사이라는 말이죠. 우리에게 들어와 쓰고는 있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니 또 무엇과 무엇 사이의 의미를 가진 ‘간’을 붙여 ‘국제 간’이라고 합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다음부터 국제라는 말은 어렵지 않고 뜻을 잊지 않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교육하기 어려운 단어는 결국 우리가 그 의미를 소화하지 못한 단어라고 생각해요. 단어들을 꼭꼭 씹어서 우리말의 오래된 단물들을 끄집어내 아이들에게 준다면 아이들도 ‘아! 한국어가 맛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역사나 여러 가지 경험치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노력, 그것이 지금의 언어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한국어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우리말 어원에 관심을 가지고 지도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말을 가르칠 때 단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함께 가르치는 것이죠. 그러면 굳이 공들여 설명하지 않고 그저 얘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언어의 역사성을 알게 되고 언어에 대한 친근감, 자신감을 갖도록 충분히 가르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의 어원에 대해 아이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동요와 어원은 음악, 국어, 미술 등 모든 과목에서도, 통합교과 수업으로도 활용될 수 있고 그 속에 단어 하나만으로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국어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사전에 대한 애착을 가질수록 우리말 실력은 늡니다. 특히 초등학생들만큼은 인터넷 검색을 지양하게 하고 사전 활용법을 교육했으면 해요. 국어사전은 한 단어만 찾으려고 해도 항상 여러 단어가 동시에 보입니다. 찾은 단어는 다른 뜻이나 용례까지 읽어보게 됩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이나 전자사전은 제한된 정보밖에 볼 수 없어 더 이상 확장이 되지 않죠. 문제는 아이들이 그것이 정보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연결해야 아이들이 창작을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항상 여러 면들과 맞춰서 새로운 면들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다면체 블록처럼 존재해야 합니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


김양진 교수의 재미있는 어원
● 고맙다 _ 고맙다의 '고마'는 본래 '신'을 나타내는 옛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신을 공경하고 섬기는 마음이 지금보다 더 많았는데 그래서 '고마'라는 말 자체에 사람들이 신에게 보이는 태도, 즉 '존경'이나 '감사'의 뜻이 포함됐다. '고마'에 '하다'가 붙어 '고마하다' → '고마합다' → '고마한 마음이 들다'로 쓰이다가 말이 줄어 '고맙다'가 됐다.
● 병아리 _ <훈민정음>에는 병아리를 '비육'이라고 썼는데 이것은 병아리가 비육비육 우는 소리에서 온 이름이다. 새끼를 나타내는 '아리'가 붙어 '비유가리'가 됐다가 '비가리'→ '빙아리' → '병아리'가 됐다.
● 범과 호랑이 _ 호랑이의 순 우리말은 '범'인데 호랑이 울음소리에서 온 이름이다.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에는 큰 범을 '대웜'이라고 했고 수렵소설로 유명한 작가 김왕석은 호랑이 울음소리를 '어흥'이라고 하지 않고 '엉'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숲이 울창한 산속에서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엉'이라고 들리는데 이것이 울리면 '범'이라고 들린다.
이상미 월간 새교육 기자 smlee24@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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