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선생님’ 이의동 서울 문현고등학교 교사

2013.07.01 09:00:00

평범한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순수함과 단순함은 오염되고 죽어가던 프랑스의 오트-프로방스 땅에 생명을 불러들였다.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속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다. 여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닮은 교사가 있다. 2008년부터 성실하고 고집스럽게 학교에 나무와 꽃을 심고 있는 이의동 서울 문현고등학교 역사교사를 만났다. 평화롭고 규칙적인 그의 노동은 학교에, 교사들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을 불러들이고 있다.


학교에 재현한 ‘도심 속 농촌’

이의동 서울 문현고등학교 역사교사는 2008년부터 ‘농사짓는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다. 매일 아침 6시면 학교에 도착해 교정 곳곳에 심어둔 농작물과 나무, 꽃을 가꾼다.

“벼를 ‘쌀나무’라고 부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모내기를 통해 벼를 재배하는 이앙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학생들을 데리고 농촌체험활동을 가자니 오가는 시간이 체험활동 시간보다 길겠더라고요. 그래서 도심 속 농촌 모습을 작은 공간에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죠.”

이를 위해 그는 학교의 화단을 농토로 바꿨다. 고향에서 가져온 모를 심기 위해서다. 그런데 땅이 마사토라서 금방 물이 빠지는 게 아닌가. 결국 양동이로 하루에 스무 번이 넘게 물을 퍼다 부으면서 땅이 마르지 않게 했다.

“농부들에게 주말이 어디 있어요? 주말이나 방학에도 학교에 농사지으러 왔어요.”

이렇게 시작된 벼농사는 이후 고추, 상추, 호박, 가지, 고구마 등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양재고등학교에 있을 때부터 시작했는데 그때 김종근 교장선생님이 부임해 오시면서 화단이 농장으로 탈바꿈했어요. 밀짚모자를 쓰고 틈나는 대로 농사일을 했는데 혼자서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교장 선생님도 운동복 차림으로 나와서 도와줬어요.”

농작물 구입비용도 예산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농장을 운영하는 지인을 통해 무궁화 1000여 그루, 철쭉 1000여 그루, 보리수나무 20여 그루를 사서 교정에 심은 것도 이 즈음이다.

2011년 3월 서울 문현고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적을 옮긴 후에도 이 교사의 나무 심기는 계속됐다.

“문현고는 2010년에 개교한 신설 학교인데, 지대가 온통 돌밭이라서 농토를 개간하는 데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몰라요. 아마 그때 파낸 돌만 해도 세 수레가 넘을 걸요.”

이 교사는 학교 빈 공간을 찾아 밤, 감, 복숭아, 사과, 배, 모과, 대추, 체리, 포도 등 종류별로 2~3그루씩 70여 그루를 심었다. 일명 ‘학교 과일나무 100만 그루 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전국의 초·중·고·대학을 찾아보니까 1만 1500여 개의 학교가 있더라고요. 각각의 학교에 100그루의 나무를 심자는 ‘학교 과일나무 100만 그루 심기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는 자연학습의 효과를, 교사들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효과를, 국가에는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경제적 효과 그리고 관광 효과까지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그는 나무를 심기 전에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어떤 나무를 심으면 좋은지 먼저 설문조사를 했다. 학생들과 교직원의 의견을 반영해 나무를 심고, 교사마다 나무를 연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나무마다 교직원들의 이름표을 예쁘게 붙여줬어요. 1:1 결연을 맺어준 셈인데 교직원들이 참 좋아했어요. 자기 나무라고 자주 찾아와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행복해지더라고요.”

학생들에게 꿈을 주는 교사
처음에는 이 교사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교사도 하지 않았던 일을, 그렇다고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 일을 이처럼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학생들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교무실보다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에 더 많이 계세요. 선생님 곁에 가면 이건 무슨 나무이고, 저건 무슨 꽃이고, 열매는 언제 피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세요.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설명해주시는 모습에 처음 가졌던 낯선 인상은 다 잊어버리게 돼요.”

문현고 1학년 박현주 학생은 이 교사 덕에 학업 스트레스를 풀 돌파구를 찾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교사가 담당하는 ‘농작물 재배반’에도 들어갔다. ‘농작물 재배반’은 한국체육대학교 ‘토요일에 만나는 동아리 친구들’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고 있는 동아리 활동이다. 학교 정원을 활용한 각종 농작물 재배에 관심 있는 학생 13명으로 구성·운영되고 있는데, 매주 금요일 5~7교시에 이뤄지는 정기모임에 빠지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을 만큼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텃밭 만들기, 잡초제거, 거름주기를 비롯해 벼, 보리, 옥수수, 조롱박, 수세미, 단호박, 꽃잔디 등을 직접 심고 가꿨어요. 또 학교 연못에 금붕어, 잉어, 붕어, 거북이 등을 사다가 넣어서 기르고 있고요.”

2013년부터 ‘농작물 재배반’에서 활동하고 있는 1학년 김바다 학생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도 하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며 연신 미소를 보였다. 땀을 흘리면서 심은 농작물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보람도 느낀다. 자연스럽게 인성교육, 환경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교사의 특별한 교육법 중 또 다른 하나는 ‘쪽지 교육’이다.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삶의 지혜가 담긴 쪽지를 나눠주고 읽어준 다음 간단한 이야기를 해줘요. 물론 매 시간 다른 내용의 쪽지를 나눠주는데 이 쪽지가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해요.”

지난 10년간 책이나 신문, 텔레비전과 영화 등을 통해 접한 좋은 글귀들을 하나둘 모아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는데 지금까지 모인 문구를 합치면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잖아요. 저는 우리 학생들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열매 맺을 나무를 기대하며
이 교사는 자신이 심은 70여 그루의 나무가 5~10년 후면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월이 흐르면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풍성한 과일들을 맺게 될 테다.

“아마 그때쯤이면 저는 퇴직을 한 뒤겠지만 생각만 해도 뿌듯해요. 과일나무에 꽃이 피고, 벌과 나비와 새들이 찾아오는 모습, 학생들이 과일나무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교정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것을 상상하면 정말 그동안 흘린 땀이 헛되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죠.”

학교를 자연학습장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학교 과일나무 100만 그루 심기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그는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다는 동료 교사들의 메일을 제법 받고 있다.

“전국 각지의 초·중·고 교장·교감선생님들로부터 수십여 통이 넘는 메일을 받았어요. 대부분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묘목 심는 방법, 묘목과 퇴비 구입 방법 등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납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학교가 푸르러지고 있다. 더불어 학교 풍경도 행복해지고 있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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