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두렵게 하는 '히든 트라우마'

2015.03.01 09:00:00

‘히든 트라우마.’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해 생기는 충격은 후유증이 심하다. 특히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해 발생하는 애착손상은 마음을 잔뜩 얼어붙어 한다. 3월을 두렵게 하는 천덕꾸러기와 싸움쟁이들 중에도 ‘히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컴컴하고 싸늘한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줄 수 있게, 우리가 그들을 위한 봄햇살이 되어보자. 다시금 3월이 설렘으로 바뀔 것이다.

저는 3월이 좋습니다. 추위에 한참 웅크렸던 몸을 슬며시 녹여주는 봄햇살의 따스함이 좋고 새 학생들과 첫 대면을 상상해보는 설렘도 좋습니다.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까. 그 아이와 어떻게 지내게 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개구쟁이라면, 말썽꾸러기라면. 호기심과 기대감에 속이 다 간질간질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3월이 두렵기도 합니다. 쏟아져 나오는 잡무가 두렵고, 분노조절 못하는 학생을 만날까봐 두렵습니다. 어린이집 핵펀치, 땅콩회항, 문구점 차량 돌진 등 ‘순간’의 잘못된 행동으로 남의 인생은 물론 자신의 인생까지도 망치는 사례가 빈번하게 보도되는 요즘, 나 역시 한 순간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욱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과 불안감에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두려운 3월, 불안한 분노감정
사건사고 소식은 온종일 기분이 처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기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피해자가 걱정입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가 느꼈을 공포감과 처절함, 수치심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처참한 경험으로 인해 그 아이가 세상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에 아파하지는 않을까, 혹시 그런 매정한 세상에 대한 증오심과 보복심을 지니게 될까봐 걱정합니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는 트라우마는 ‘이벤트(사건) 트라우마’입니다. 사고, 폭행, 성추행 등 ‘당연히 없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받는 정신적 충격이지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발달적 트라우마’라는 것도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때문에 ‘히든(숨겨진) 트라우마’라고도 불립니다.

당연한 것을 못 받을 때 생기는 ‘히든 트라우마’
히든 트라우마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게 없을 때’ 발생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어린애가 어른들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할 때, 방치되고 유기될 때, 양육자와 안정적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맡겨질 때 입는 애착손상입니다. 뇌과학자에 의하면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면 거울 뉴런, 섬엽, 전두안와피질 등 공감, 감정적 자기조절과 사회적 감정 인식을 담당하는 두뇌 부위를 발달시키지 못해서 공감력 결핍, 범불안증, 우울, 공황, 도벽, 상습적 거짓말, 불신, 무기력감, 학습장애, 자해와 타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애착손상을 입은 아이’가 ‘학대 받은 아이’보다 더 심각한 복합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금 3월을 설렘으로 맞이하기 위해
이런 학생이 대체로 학교에서 왕따당하고 학교폭력 가ㆍ피해자가 될 확률도 높아집니다. 훗날 관심병사가 되고, 남녀관계를 어설프게 하고, 부부관계가 어렵고, 자녀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습니다. 심하면 공감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 기본 욕구에 대한 결핍을 과도한 섭식과 음주, 흡연으로 달랩니다. 성숙한 어른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허기를 미성숙한 성 집착(야동, 조숙한 연예)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심지어 선생님에게 이성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히든 트라우마는 사건 트라우마보다 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습니다.

3월을 두렵게 만드는 천덕꾸러기와 싸움쟁이들 중에도 누군가의 따스한 돌봄이 필요한 히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겠지요. 야단치고 벌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게지요. 이들은 컴컴하고 싸늘한 인간관계에 마음이 잔뜩 얼어붙어 있는 겁니다. 3월에는 우리가 그들을 위한 봄햇살이 되어봅시다.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숨어있는 그들의 감정을 만날 때, 트라우마의 어두운 그늘에 떠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다시금 우리가 3월을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겠지요.
조벽 동국대 석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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