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딥 러닝과 창의성교육

2016.04.01 09:00:00

인공지능(AI : Artificial Intelligence) 알파고의 첫 승리의 날, 자신감에 넘쳐 “재미있는 바둑을 두겠다”던 이세돌 9단은 당황했고, 세상 사람들은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완패했다”며 다시 침통한 표정을 지은 이 9단의 두 번째 패배 소감을 들으며 사람들은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의 지적 능력에 전율하며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감마저 들었다.

‘알파고 충격’은 단순히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 때문만은 아니다. 1997년 5월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에게 패했을 때도,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IBM의 ‘왓슨’이 세계 챔피언을 꺾은 것을 보면서도, ‘언젠가는 컴퓨터가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겠구나’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10의 170승’ 우주에 있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는 무한대 경우의 수를 펼치는 고도의 마인드 스포츠 바둑이 주는 느낌은 달랐다. 지난 3천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연마한 인간의 직관과 통찰력이 그저 5개월여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키운 기계의 능력 앞에서 너무도 쉽게 한계를 보이는 듯하여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위협받는 인류의 직관과 통찰력
구글은 ‘인공지능을 만든 인류의 승리’라며 축하하고 있지만, 세계의 과학기술자들은 복잡미묘한 심경에 휩싸였다. 왜일까. 속도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들은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를 넘어서는 지력을 지니려면 족히 십 년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소위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라는 딥러닝을 통해 무섭게 진보했다. 인간의 뇌, 신경망의 작용을 응용해 만들었다는 인공지능 컴퓨터는 전원과 인터넷만 작동하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경험을 주고 학습하면서 진화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지적 능력이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알파고가 작년 10월 판후이 2단과 대국을 끝낸 후만 해도 인류는 ‘그저 흥밋거리’로만 생각했을 뿐,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5개월 동안 기보 3천만 건, 한 달에 백만 건의 대국을 치르면서 마치 살아있는 생물이 점점 좋은 방식으로 진화하듯 유전 알고리즘을 통해 더욱더 막강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심지어 지치지도 않고 24시간 학습이 가능한 알파고의 한계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 짧은 5개월 만에 ‘신의 한 수’들을 변화무쌍하게 두는 알파고를 보며 우리는 이전의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라 ‘곧 기계가 인간을 대체 하겠구나’라는 위기감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더욱이 연초 세계경제포럼(WEF)이 낸 보고서에서 이미 아주 가까운 미래(50년도 아닌 5년 만에) 인공지능 등의 기술 혁신으로 무려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하지 않았던가.

벌써 석학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삶을 위협할 인공지능 개발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우려 섞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잠시의 퇴보는 있었을지언정 늘 진보하며 결과적으로 계속 발전해 왔다. 과학기술은 특히나 그랬다. 컴퓨터가 등장한 지난 반세기 남짓 동안, 그 이전 모든 시기를 통틀어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기하급수적인 발전과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왔다. 따라서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고 해도 ‘발전의 급류’를 막지는 못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급류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생존까지 위협받아야 하는가?

인공지능, 결국 인간 상상력과 창의력의 산물
공상과학(SF) 영화계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인 1968년에 선보인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9000)’의 모습은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럴듯하고, 놀라우리만큼 예견적 상상력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경악하는 인공지능도 결국 인간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창조한 기계와 힘으로 겨루며 좌절하지 말자. 달리는 사람이 자동차와 겨루지 않고, 디자이너가 대량생산 방직기계와 겨루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기능과 성능을 경쟁적으로 고도화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의 자리를 기계와 다툰다니 의미 없는 일이다.

예술하는 컴퓨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가디언지에 보도된 AI 트위터봇(Twitterbot)은 신경망을 이용해 사진들을 고흐 풍의 그림으로 바꾸어 준다. 미국 예일대에서 개발한 AI 쿨리타(Kulitta)는 악보와 음계의 조합을 분석해 작곡한다. 그러나 기계가 고흐의 모든 그림 패턴을 익혀 예술품을 만들고, 바흐 곡의 모든 특징을 학습해 바흐 느낌이 나는 작곡을 한다고 한들, 고흐 미술 데이터를 넣은 기계가 바흐 풍의 음악을 작곡하진 않는다. 물론 ‘경험을 통해 능력이 향상되고 매 순간 진화’해 결국 인간의 감성까지 지니게 된 영화 의 ‘사만다’ 같은 게 나온다면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미래학자이자 구글 엔지니어링 담당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말한 인간과 기계가 융합하고, 더 이상 미래변화를 예측할 수 없을 것이라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했을 때 생각해 볼 일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기함할 창조의 산물들은 모두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의 결과물이란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은 제약과 한계 상황이 올수록 비약적 발전의 돌파구를 찾는다. 1970년 달을 향해 지구를 떠난 아폴로 13호가 9시간 12분 만에 산소탱크 폭발로 우주미아가 될 위기에 처했을 때, 아폴로 13호의 대원 3명과 우주센터 직원들은 생환을 위한 모든 방안 찾기에 혼신의 노력을 했다. 그 결과 4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해법을 찾았고, 3명의 대원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계상황과 제약요건(constraints)은 인간의 창의성을 자극하고 발전시킨다. 방직기계가 19세기 초 노동자들을 대체했지만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기까지 번영해 온 것처럼, 인공지능이 21세기의 고급 직종까지 대체할 수 있으나 또 다른 돌파구를 찾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이러한 창의성을 개발·육성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 혁신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역량 함양의 과정과 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더해지는 것이며 전 세계가 창의교육으로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김윤정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조경제문화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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