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공자 (1)

2017.03.01 00:00:00

사상가, 학자 이전에 스승, 교육자였던 사람들의 이야기

스승이 없는 삶은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습니다. 좋은 스승 밑에서 음으로 양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는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지요. 그런데 동양철학자 중에는 위대한 스승이자 교육자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양철학자인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교육자로서 가진 모습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사상과 가르침들을 이야기하고 소개해 올리려 합니다. 총 12회에 걸쳐 연재할 것인데 기존에 교육과 동양철학자들을 관계 지어 이야기했던 논문, 저서에서는 하지 못했던 참신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보고자 합니다.


學爲人師 行爲世範

학  위  인  사      행  위  세  범


“배움은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행실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베이징 사범대학의 교훈입니다. 진정한 배움이란 것은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이것이 배움의 길인데 또한 스승의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자들을 단순히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자, 배운 것을 삶에서 구체화시키고 실천의 장에서 녹여내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려 제자들을 이끄는 자, 그런 사람이 바로 스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승의 모습은 누가 만들어냈을까요. 바로 공자입니다. 늘 호학하는 삶을 살면서 모범을 보였고 제자들에게 실천의 장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하고 격려한 사람. 공자 삶의 모습이 저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 그래도 저 말은 공자의 수제자 안연의 삶을 중국 남송 시대 황제가 평한 말이지요. 공자가 제일 사랑했던 제자 안연을요.


네, 공자는 스승입니다. 선생님이고. 공자하면 유학, 유교의 종사. 동양철학의 큰 어른이기 전에 스승이고 교육자죠. 안 그래도 많은 이들이 교육자로서 공자를 말해왔지요.


자로가 여쭈었다.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답했다. “아버지와 형이 살아 계시는데 어찌 듣는 대로 바로 행한단 말이냐?” 

염유가 여쭈었다.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답했다. “듣는 대로 그대로 행하여라.” 


공서화가 묻기를, “자로가 묻기를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부형이 살아 계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염유가 똑같이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듣는 즉시 행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감히 여쭤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염유는 소극적이기에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자로는 너무 나서는 까닭에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다.”


논어 선진편 21장입니다. 유명한 장이지요. 교육자로서 공자를 말해주는 장입니다. 제자 자로와 염유가 같은 질문을 했는데 스승이 각기 다른 답을 하네요. 그러자 옆에서 보던 공서화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하냐는 같은 질문을 했는데 왜 자로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하라고 했고 염유에게는 들은 즉시 행하라고 하는지. 그러자 공자가 답했지요. 자로는 성격이 급해 신중하라고 한 것이고 반대로 염유는 소극적이기에 분발을 촉구한 것이라고요. 


정말 유명한 장인데 스승 공자의 탁월함을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되는 장이지요. 교육자로서 제자들에 맞춤형 교육을 했다는 대목에 많이 언급됩니다. 정말 공자하면 철학자고 사상가고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교육자였습니다. 제자들을 키우고 만든 사람이지요. 


그래서 교육학 쪽에 공자 관련한 논문이 많습니다. 학위논문들도 적지 않은데요. 제자별 맞춤 교육을 했다, 배움의 문을 열어두어 누구든 제자로 받아주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며 교학상장(敎學相長)과 줄탁동시(啐啄同時)를 지향했다는 등 논문들에서 그러는데 우리가 교육자 공자를 말할 때 잊는 게 있습니다. 바로 사제관계라는 모델을 공자가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子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자  왈


논어를 보면 많은 절반 정도가 ‘자왈(子曰)’로 시작하지요. ‘자(子)’는 선생님인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이라는 말이지요. 논어 이전의 경전 서경처럼 당대의 권력자의 말이 아니라 정치적 지위와 권력이 없는 어느 선생이 말하고 제자들이 듣습니다. 그렇게 ‘자왈’로 논어 텍스트는 이루어졌는데 그걸 보고 ‘공자가 말하니 제자들이 듣는구나’ 하고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최초로 자왈이라는 형식이 등장한 경전이 바로 논어, 처음으로 스승과 제자. 이 사제관계란 모델을 공자가 만들어냈다는 것까지 생각을 해야지요. 


네, 그게 중요합니다. 공자가 처음으로 사제(師弟)라는 인간관계의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것. 기존에는 혈연 집단 내의 관계 아니면 정치의 장에서 군신관계 이렇게 친친(親親)과 존현(尊賢)이라는 말로만 설명되는 인간관계 밖에 없었는데 공자가 최초로 사제관계라는 모델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아주 무거운 의미를 가집니다.


주나라 초기부터 춘추시대 중반기까지 사회 구성의 기본단위는 씨족이었습니다. 혈연밴드 사회였지요. 그러다가 춘추시대 말 철기가 등장하면서 씨족집단이 급속도로 해체되었습니다. 5인에서 6인 규모의 소규모 가정이 만들어져 이들이 사회구성의 기본단위가 되었지요. 씨족질서가 무너지자 사회구성의 기본단위가 사라지고 인간관계란 게 사실상 진공상태에 놓이게 되었는데 그때 딱 어떤 사람이 등장해서 새로운 대안적 인간관계 모형의 틀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가 바로 공자입니다.


철기문명의 시작 씨족공동체의 해체 


서구의 분과학문적 프리즘을 가지고 동양철학을 연구하다 보니 문제가 많습니다. 문사철(文史哲)이 따로 노는 형편이고 그게 학문을 하는 방법에도 굳어버린 틀이 되었는데요. 많은 동양 고전은 단순히 철학텍스트가 아니라 역사서이기도 하고 문학서이기도 한데 그저 철학적 방법론으로만 접근하는 실정이니 정말 아쉬운 게 역사적 맥락의 접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파고들고 저술과 강의에서 역사적 배경, 환경을 충실히 보여주며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문제가 많지요. 사상가 각자의 문제의식과 당대에 해냈던 역할, 기능을 제대로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지요. 공자 사상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적 배경을 충실히 보여주면서, 특히 철기 문명의 도입과 연관 지어서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공자가 산 시대에는 씨족공동체가 해체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게 두드러지는 시대적 특징이었지요.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공자가 등장해 대안을 모색한 것인데 본래 춘추시대에는 동일한 조상을 모시고 사는 후손들끼리 읍(邑)이라는 마을에 같이 살았습니다.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는 유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며 같이 노동을 해서 생산의 결과물을 나누고 살았지요. 생산력이 턱없던 시절이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공동으로 노동을 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춘추시대 말부터 씨족공동체가 급속하게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파괴되었을까요? 단적으로 말해 철기 때문입니다. 철기가 등장해 철제 농기구가 사용되고 우경이 시작되면서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씨족공동체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는 생산이 씨족공동체라는 대가족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철기문명이 시작되면서 대여섯 명 단위의 소가족 단위로 생산단위도 변했습니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하던 일을 몇 명이서도 해낼 수 있게 되자 공동으로 경작하던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기존에는 생존을 위해 그들의 힘이 필요했지만 이제 밥만 축내는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씨족공동체는 해체가 되었습니다. 동일한 조상을 모시는 대단위 가족 하에서 혈연관계와 군신관계만이 인간관계의 전부였는데 절반 이상의 축이 무너져 버렸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공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을 밑에 두고 교육하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공자는 스승이 되었고 공자를 따르던 사람들은 제자가 되어 공자를 섬겼습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자식처럼 아끼며 가르치는 공자, 역시나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공자를 진심으로 따르며 부모처럼 섬기는 제자들. 교육이란 게 가문 내에서 비전(祕傳)의 형태로만 전수되고 혈연관계와 군신관계만이 지배하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아 가르치고 사제관계라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모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작이고 역사의 물꼬였지요.


생존과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학문을 매개로 한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기존에는 볼 수 없는 인간관계의 틀과 모범이 만들어졌고 스승의 상이란 게 처음으로 정립되고 스승과 제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란 게 만들어졌습니다. 가족이 아닌데도 삶을 같이하고 군신관계가 아닌데도 공동체의 내일을 이야기하며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살아갔고 세상을 구할 것을 다짐하며 모두가 구세의 주인공으로서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끌면서 나아갔지요. 스승과 제자 간에는 교학상장하고 제자들 간에 서로 열심히 격려하고 권면하면서요.


공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 그리고 교육자로서 공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사실이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답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교육자 공자, 스승 공자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처음으로 사제관계란 인간관계와 그 틀을 만들어냈다는 것을요. 


기존의 인간관계가 진공상태가 된 시점에 등장해 새로운 인간관계의 모형으로 사제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그때부터 사실상 동아시아 역사가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사제관계란 인간관계의 틀이 만들어지고 정착되고, 그때 문(文)의 세계가 열리고 문의 소프트파워를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역사가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기본적인 것, 아니면 당연한 사실은 이상하게 기본적으로 또 당연하게 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질을 보지 못하고 핵심을 비껴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고요. 아시는 것처럼 공자는 교육자이고 스승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고 그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공자의 위대함, 선구자적인 면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고 교육자로서 공자가 온전히 보입니다. 


임건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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