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오이 100개, 어떻게 할까?

2017.06.12 09:55:10

인생살이 한 수를 배우다

얼마 전 주말에 아내와 시골을 다녀왔다. 경기도 이천과 안성인데 그 곳에 사는 아내의 지인을 만나러 간 것이다. 아내가 교직에 있으니 몇 년 전에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지인을 만나러 간 것. 오랜 만에 시골 바람을 쐬며 나들이 하고자 흔쾌한 마음으로 동행길에 나섰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양지 톨게이트를 나와 국도로 한참을 간다.
 
아내는 가는 중간에 농협 마트에 들려 커다란 수박 두 통을 트렁크에 실었다. 초대 받아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가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첫 방문지는 이천 설성면에 위치한 전원주택. 이곳에는 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주택을 직접 설계했다는데 멀리 이천호국원 노성산이 바라다 보인다. 집 근처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만발해 주택을 빙 둘렀다. 이 많은 꽃들은 교장 선생님이 직접 가꾼 것이다.
 
여기에 도착하니 안성 D초교 실무사들도 여러 명 모였다. 학교에는 국가공무원인 교원들과 함께 교무 인력인 행정실무사들도 근무를 한다. 그 교장선생님은 D초교 실무사들도 함께 초대한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는 과거에 같이 근무했던 교직원을 초대해 식사 대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계신다. 흙냄새, 풀냄새를 맡으며 주위에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식탁에 차린 음식물을 보니 보쌈용 돼지고기만 구입한 것이고 나머지 반찬들은 모두 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다. 모두 무공해로 신선채소가 대부분이다. 교장선생님은 음식 조리 솜씨도 좋아 우리 부부는 밥 한 공기를 금방 비웠다. 다른 사람들 표정을 보니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포도주도 한 잔 먹었는데 상큼하고 달기만 하다. 건배사는 ‘그.흙.향’이다. ‘그대 그리고 나, 흙에 살리라. 향기 나는 우리 인생‘이라는 뜻이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안내를 받아 정원 순례를 했다. 제1, 2, 3, 4 정원이 있다. 정원마다 모두 꽃이다. 잘 꾸며진 장독대도 보았고 설치된 예술작품도 보았다. 6년 동안 부부가 가꾼 것이라 한다. 땅속 저온 창고에는 발효식품이 저장돼 있다. 앞으로의 정원 설계 계획을 설명하는데 행복한 표정이 가득하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에게 한 번 쯤 이곳 방문을 권하고 싶다.
 
이제 석별이다. 교장 선생님은 텃밭에 가서 상추를 뜯는다.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농작물을 싸 주는 것이다. 우리도 도시텃밭이 있기에 조금만 담으라고 하여도 푸짐하게 건네 주신다. 아마도 베푸는 것이 일상화된 분이 아닌가 싶다. 아침 일찍 기상해 농작물과 꽃을 둘러보고 하루 첫 일과가 물주기라는 분, 주위의 자연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경이롭고 신비하다는 분이다. 전원생활에 푹 빠진 교장선생님이다.

 


오늘 두 번째 방문지인 안성으로 갔다. 부부가 반가이 맞아 준다. 부부는 아내와 같이 근무했다. 남편은 주무관, 부인은 그 당시 실무사였다고. 우리가 수박 한 통을 건네니 오이 한 박스를 트렁크에 실어 준다. 아마도 미리 준비한 듯 싶다. 칡차를 마시며 학교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떠나려 하니 텃밭에 가서 파를 뽑고 햇감자와 깨를 전해 준다. 이게 바로 옛 교육동지들의 따듯한 인심이다.
 
귀가해 보니 오이가 15kg, 무려 100개다. 우리 부부가 다 먹을 수 없다. 선물 받은 오이 100개, 어떻게 처리할까? 지금 우리 아파트 이웃에 살고 있는 지인들을 떠 올린다. 종이봉투에 10개씩 담았다. 5층, 6층, 8층, 9층으로 돌렸다. 그래도 남는다. 앞동 교직선배인 노인회장, 율전중학교에 근무하는 후배 교사, 이웃 아파트에 살고 있는 수원예술학교에서 포크댄스를 배우는 수강생 등에게 부지런히 나눠주었다.
 
아내의 말인즉, 이웃에 먹을 것을 나누어 줄 때는 최상품을 줘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오이를 나누어 준 지인들에게서 우리가 먼저 농작물 선물을 받았다. 우리가 먼저 따듯한 손을 내밀었어야 하는데 답례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순의 나이가 지나고 나서 깨달은 행복은 바로 내가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의 교직생활을 보니 내가 미처 하지 못한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동료교원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교무실의 실무사, 행정실의 주무관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그러니까 전전학교 교직원과 지금도 교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익만 챙기는 교직생활은 학교를 떠나면 그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후회하자 않는 삶이란 가족에게 이웃에게 아낌 없이 베푸는 삶이 아닐까?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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