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이름의 폭력

2017.07.11 09:14:05

카프카의 '변신'

독서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강가의 은사시 나무 가벼운 움직임조차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스무 살의 학생부터 지천명을 지난 저까지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책을 읽고 시를 낭송을 사랑한다는 한 가지 공통점으로 모입니다. 책이 아니면 절대 만나지 못할 사람들의 모임이 이제 1주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해 여름, 젊은이가 후미진 창원시 마산 합포구 완월동 산북도로 아래에 헌책과 커피와 맥주를 파는 헌책방 겸 북카페를 개업하였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일주일에 한번은 가서 커피를 마시고 맥주도 한 잔하고 이 카페가 잘 되기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오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아 늘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그 공간이 아까워 작은 쪽지를 가게 문 앞에 붙였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 시낭송을 할 동네 사람들 모이세요.’ 같은 동네 사는 친구가 함께 하기로 하여 찾는 이가 없으면 둘이 만나 책이나 읽자라고 하면서요. ^^


독서모임을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함께 읽는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을 읽고 시를 낭송하면서 영혼의 미세한 울림을 느꼈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멋진 생각을 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저희가 모이던 북카페의 젊은 사장님은 얼마 전 북카페를 닫고 다른 곳에 취직하였지만 함께 와서 책을 이야기합니다. 몸은 회사에 있어도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냅니다. 그 멋진 독서모임에서 이번에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이 변신이었습니다.


눈 맑은 스무 살 학생들은 카프카의 책을 읽고 벌레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소녀들이 어머니와 삼촌 또래의 사람들 사이에 앉아 초롱초롱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임을 젊게 만들어 줍니다. 카프카의 변신은 그 자체로 사유를 촉진시키는 소설입니다. 이 벌레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데 한 분은 치매 노인가 먼저 떠올랐다고 합니다. 젊어서 몸과 마음을 바쳐 가족들에게 헌신한 노인이 치매가 발병하는 순간 가족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것이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과 교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잠자가 아버지의 사과에 맞아 그것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자 축제를 하듯 가족들은 행복한 나들이하는 그러한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또 벌레가 된다는 것은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그 속에 삶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다양한 의견들이 밤이 늦도록 분분하였습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되어서 비로소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들뢰즈적으로 설명하는 동물-되기를 통해 탈기관체가 되는 것이란 철학적 해석으로 발전하기도 하였습니다. 향기로운 지성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9P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삶은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상황일까요? 나는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앞을 알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그레고르 잠자 처럼 더듬이로 세상을 더듬어가고 여러 쌍의 마디가 있는 발로 기어나갈 때 견딜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잠자의 가족들이 행하는 가족이란 이름의 폭력이 소설 속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족에게조차 성가신 존재가 되면 말없이 외면당하는 슬픈 일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제 사유를 깊게 합니다.

 

절기는 이제 작은 더위라는 소서를 지났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니 비 내리는 마산항의 불빛이 여름꽃처럼 피어납니다. 더운 날씨가 계속될 것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민음사, 1998 

 

이선애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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