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수준이 곧 인간의 수준

2017.08.07 09:05:43

나의 '마아트'를 찾아서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박준 지음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구약성서에 담긴 신의 질문을 통해 만나는 종교의 진수



하버드대 고전문헌학 박사이자 고대 오리엔트 언어 권위자인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는 구약성서에 쓰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신약성서에 쓰인 그리스어를 비롯해 다양한 고대 언어를 연구해온 국내 유일무이한 고전문헌학자로, 이 책에서 성서의 본질과 우리가 잃어버린 종교에 대해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질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서에서 신은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명령하거나 알려주지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질문을 던져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도록 유도할 뿐이다. 이 책에서는 성서에 담긴 통찰을 읽어내고, 교리에 갇힌 종교, 원칙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위대함을 찾는 시간을 제공한다.  (책 소개에서 인용함)

 필자는 오랜 동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은 '성서'라는 신념을 고수하며 살았다. 성서는 나에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멘토였고 안식처였다. 참으로 오랜 동안. 다른 책들은 심심해서 읽을 수 없을 만큼 성서에 몰입하곤 했었다.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이겨내는 동안 내 눈물을 받아준 것도 성서였다. 잠언과 시편은 삶의 끈을 놓으려 할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단 하나의 끈이었다.  그리고 그 끈으로부터 홀로서기 하던 날은 많이 울었고 그 후로 몇 년 동안 정신적 방황으로 힘들었다.  이제 기독교는 여타 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인생의 모든 희망을 성서에서 찾던 시절, 나는 있는 그대로 성서를 읽었고 행간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게 성서는 진실이었고 정직이었기 때문이다. 성서는 나에게 어버이였고 스승이었으며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절대적 존재였고 생명수였으니. 모든 독서의 시작과 끝은 성서였다. 아프고 힘든 날은 성서는 위안이 되었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그렇게 절대적인 믿음은 사람에 의해서 무너졌다. 목자를 잘 못 만난 충격은 신도 성서도 부인하는 지경으로 나를 내몰고 말았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신이 계신다면 신자를 이끄는 목자가 그처럼 타락할 수 있는지, 부정과 거짓으로 설교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을 파는 목자라는 판단으로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절대자에 의지하며 수십 년을 버텨낸 신앙생활을 접고 무중력 상태로 살다가 이제 겨우 땅에 뿌리를 내렸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의 경외감은 아인슈타인의 종교관과 비슷해졌다. 성서를 덮은 지 몇 년 만에 이 책에서 반가운 음성을 만났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신비입니다. 아름다움은 모든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힘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모르는 사람, 더 이상 궁금해 할 수 없거나 황홀경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 말년의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성서의 행간을 읽고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한 종교학자의 시선이 신선하게 다가온 책이다. 명령하지 않는 신의 목소리, 기다려주는 신의 음성을 신의 중재자가 되어 번역해주는 친절함을 갖춘 책이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대인들의 신앙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성서를 다시 바라볼 여유를 안겨준 책이다. 신의 목소리,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순수한 책으로서의 성서를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참으로 몇 년 만에. 이 책에서 만난 에센스를 소개해 올린다. 나의 '마아트'를 생각해 보게 한 문장, '비극'에 대한 명쾌한 정의, 마지막으로 '정의'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은 압권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최선을 행한 도를 '마아트'라 불렀다.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3,000년 동안 지탱시킨 영적인 매트릭스다. 마아트는 우주의 균형이자 원칙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조화이며 심지어는 각 개인의 삶에 있어서 일생 동안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최선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개인의 최선은 우주와 자연의 원칙을 깨닫고 그것과 자신의 미션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마아트는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미션을 찾는 행위다. 인류 역사상 이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집트의 『사자의 서』다.

- 41쪽

 

지혜로운 자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문제를 더 이상 문제로 삼지 않도록 스스로 그 문제를 해소한다. 우리는 이러한 막다른 상황을 '비극'이라 한다. 인간은 비극을 통해 성장한다. -116쪽

 

에머슨은 이렇게 촉구한다. "당신은 인생에서 추구할 그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소문에 의지하지 말고, 당신 마음속에 있는 당신만의 우주를 찾으십시오. 그 우주는 우리 주위에서 우리의 관찰을 기다리는 자연, 특히 하늘의 별, 산, 강, 나무, 시냇가, 고양이, 아이의 얼굴, 어디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자가 아니라 당신만의 산과 강을 찾아 인내를 가지고 관찰하십시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신입니다."  -462쪽

 

정의란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  -306쪽

이 정의에 의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엄청나게 불의한 사회다! 사회 곳곳에 갑질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으니. 이 책을 덮으며 아직도 진행 중인 나의 '마아트'를 찾는 긴 여정을 동반해 줄 좋은 책이 주는 황홀경과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은 무더위가 주는 기적의 산물에 경외심으로 감사하는 중이다. 찌는 더위가 있어야 벼가 익는다. 과일들이 익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것이 진리이고 우주의 마아트다.

 

나의 '마아트'를 찾아서

 

이 책을 덮으며 <신의 위대한 질문>은 '인간의 위대한 질문'으로 재해석했다. 인간은 평생 질문하는 존재다. 어린 날 시작되는 세상을 향한 외적인 질문부터 나이기 들어갈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 답하는 내적인 성찰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받고 책을 읽으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동안 그 질문은 계속된다. 어쩌면 그 질문이 끝나는 날이 생의 마자막이리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道를 찾아 여러 갈래 길을 걷는 가하면, 오직 한 길로만 직행하는 사람도 있다. 길이 아님을 알고 되돌아 나오거나 막다른 길에 이르러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한 채 스스로 삶을 던지기도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허무의 낭떠러지 앞에서 날개를 달고 되돌아 나올 수 있으려면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질문의 수준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신의 위대한 질문은 곧 인간의 위대한 질문으로 치환하여 읽으면 훨씬 쉽게 읽을 수 있음을 책장을 덮고서야 깨닫는 아둔함이라니! 종교의 뜻이 최상의 가르침이란 걸 간과한 탓이다. 종교학자의 책임을 잠시 잊은 채 인문학으로 접근한 책 읽기였으니 첫 출발부터 사잇길로 접어든 셈이다.

 

언제부턴가 질문하기를 멈춘 채 가던 길로만 다니는 동안 나의 뇌세포는 죽어가고 있었음을 깨우쳐 준 책이다. 책은 도끼여야 한다는 지론이 맞다. 생각의 쓰레기로 넘쳐나서 느려터진 뇌를 비우고 업그레이드 하게 하는 책이 아니라면, 생각의 속도를 높여주는 책이 아니라면 도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찾아야할 '마아트'를 처음부터 다시 찾도록 도끼를 찾아준 이 책의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장옥순 전남 담양 금성초 교사 jos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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