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 “보석 같은 아이들과 행복한 여정…야단치는 순간에도 사랑했지요”

2017.08.21 09:38:55

김성자 충남 예산유치원 원장
정년 앞두고 40년 회고록 펴내

떠나는 아쉬움에 매일 눈물 “참 많은 사랑 주고받아”
불신, 규제만 느는 현실…후배들 생각에 발길 무거워
꿈나무 키우려 씨름하는 교사들 땀, 헌신 알아줬으면

출발점 기초교육 중요, 농어촌 등 소외지역 더 필요
정부, 유아학교로 전환하고 공립유치원 더 늘려야
병설은 안 맞는 옷…아이들 특성 살릴 ‘단설’ 증설을

“요즘 후배 교사들에게 ‘내려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현장에서 소신껏 열정을 발휘해야 할 교사가 교육하는데 위축된다니, 교사들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김성자 충남 예산유치원 원장은 후배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 걱정부터 꺼냈다. 사립에서 8년, 공립에서 30여년을 울고 웃다 어느덧 정년을 맞아 회고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들!’을 펴낸 김 원장에게 책 제목만큼이나 아름답고 행복한 ‘옛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듯했다.


 
11일 예산유치원에서 만난 김 원장은 갈수록 유아교육 여건이 안 좋아지는 상황이라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유아교육 특성을 무시한 규제가 너무 심해 교육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어 노심초사라고 했다.
 
김 원장은 “매를 드는 건 당연히 안 되고 ‘노려보지도 마라’, ‘큰 소리도 안 된다’는 등 옭아매고 있다”며 “사실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면서 이상적으로 교육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수업시간에 주위 아이를 괴롭히고, 할퀴고, 때리고, 깨무는데 ‘얘야 그러지 마라’고 타이른다고 통제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게다가 갈수록 아이들은 거칠어지고 정서는 불안하고 말을 듣지 않는데 공문 한 장에 이런 요구가 날아오면 교사 속만 타들어 간다”고 덧붙였다.
 
회고록을 쓰고자 했던 첫째 이유는 천직 같은 유치원 교사직을 떠나는 입장에서 아쉬움 가득한 마음이 컸다. 그러나 써내려가면서 유치원교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아이들을 지켜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해달라는 요청을 빠뜨릴 수 없었다.
 
김 원장은 “매스컴이 교사들의 잘못된 점만 들추는 현실이 아쉽다”며 “아직은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참스승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아교육자들이 점점 힘들다고 한다.
 
“최근 어린이집, 유치원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뉴스가 연일 이어지면서 학부모들의 눈길도 싸늘해지고 있다. 일부 유아교육기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든 곳의 일로 여기고 교사들을 범죄자처럼 보고 있다. 이래서는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하기가 매우 어렵다. 교육당국은 지나치게 아이들에게 인격적인 조치만 할 것을 요구하니 교실에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리더라도 큰 소리조차 못 낸다. 원장 입장에선 늘 안전문제에 숨죽일 수밖에 없다. 선생님들도 너무 안쓰럽다. 내가 처음 교사할 때만 해도 아이를 맡기면서 때려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던 시절이었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학부모 상담을 해도 잘 안 통한다. 잘못을 하면 그에 맞는 벌을 줘서라도 고쳐 나가는 게 교육인데, 본질이 왜곡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국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뜻인가.
 
“유치원에까지 아이를 온종일 돌보도록 요구하니 학부모들의 관련 요청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유아공교육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문제로 교육 이외의 부담이 커진 공립유치원 교사들이 수업에 열정을 다하기 어려워졌을 뿐더러, 유아기 아이를 온종일 맡기는 그 자체가 유아교육 상 바람직하지 않다. 유아기에는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기관에서의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 실제 온종일 유치원에 머무는 경우 일찍 귀가하는 아이들에 비해 분리불안 등 정서상 문제가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공립 교사는 어떤 점이 더 어려운가.
 
“사립유치원의 경우 부모들이 적극 등원시킨 만큼 교원들과의 소통이 원활해 서로 간 이해가 잘 이뤄진다. 아이들도 교육과정을 잘 따른다. 그러나 공립유치원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끔 일반학급과 특수학급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아이들이 올 때가 있는데, 교육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자꾸 도망가려는 걸 제지하려 들면 엄청난 저항이 따라온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몸부림치는 아이를 가랑이에 끼워서라도 교육시킨다.”

―사명감이 없다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 눈물겨워 ‘그냥 특수반에 보내시죠’라고 권유하지만, 선생님이 해볼 때까지 해보겠다는데 말릴 수가 없다.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도저히 안 변할 것 같은 아이가 교사의 사랑과 보살핌에 의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 큰 감동이 밀려온다. 눈도 못 마주치고 대답도 안 하던 아이가 밝은 얼굴로 입을 떼 먼저 인사할 정도로 변하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모른다. 유치원교사가 아이를 다그친다면 그 자체가 애정이 있기에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지역에서 공립의 중요성은 더 크겠다.
 
“농·산·어촌, 벽지 아이들에게까지 양질의 유아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립유치원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꿈나무들에게 삶의 기초를 마련해주는 일 아니겠는가. 국가가 유아공교육을 더욱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사립과 공립 모두 겪어본 내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국가가 나서 체계적으로 유아기 아이들에게 공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반드시 확대돼야 한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 같은데.
 
“오래 전 일인데, 매일 세수를 안 해 눈곱을 달고 입가에 침 자국을 지우지 못한 채 지각하는 아이가 있었다. 직접 세수를 시켜주면서 ‘내일은 세수하고 와∼ 그러면 정말 예쁠 것 같아’라고 거듭 주문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는 역시 오전 10시를 넘겨 등원했는데 등에 빨래집게를 달고 있었다. 즉시 아이들의 놀림과 웃음이 가득 퍼졌다. 당황한 나머지 아이를 다른 장소로 데려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내가 자꾸만 유치원에 가야 된다고 했는데 새벽 늦게 장사를 마치고 온 엄마가 안 일어나 밖에 빨랫줄에 있는 옷을 급하게 당겨서 입고 왔어요’라고 답하는 것 아니겠나. 순간 나는 그 아이를 꼭 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마음을 추스른 후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 앞에 데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을 했는지 전해줬다. 새벽까지 일하고 잠든 어머니를 깨우지 않기 위해 빨랫줄에 걸린 옷을 걷어서 입고 왔다고. 그래서 집게가 달려 있는 줄 몰랐다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걸 깨우치고 그 아이를 위해 박수를 보냈다. 지역 공립유치원에서는 이런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유아공교육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오히려 단설유치원을 제한하는 시도가 나온다.
 
“유아교육과정의 특성을 잘 살리려면 병설보다 단설유치원이 훨씬 낫다. 병설은 아무래도 초등학생 교육과정이 우선인 만큼 유치원 교육과정을 거기에 맞춰야 하는 부담이 적잖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 아이들에게 우비를 입혀 운동장에 내보내는 수업을 한다고 치자. 비가 우비에 ‘탁탁’ 맞는 소리를 들어보고 느끼게 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막 뛰어다니다 운동장에 드러눕기도 한다. 병설에서 이런 수업을 한다면 초등학생, 교사들이 얼마나 놀라겠나. 이런 문제들로 인해 병설 교사들은 방어적으로 교육과정을 펴나가곤 한다. 우리 유치원만 해도 단설로 운영되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벽화를 그려 넣는가 하면, 물놀이 시설도 따로 갖출 수 있었다.”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변경하는 게 그 첫 걸음으로 볼 수 있겠나.
 
“선진국에는 이미 ‘유아학교’ 개념의 공교육 체계가 명확하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 유아교육계는 10년 전부터 유아학교로의 명칭 변경을 요구하고 있지만 늘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어도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회고록을 읽어보면 평생 행복한 교사 생활을 보낸 것 같다.
 
“40년 간 보석 같은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제 아이들과, 또 후배 교사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1년 전부터 매일같이 눈물이 난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랑을 주고받았다. 졸업한 아이들이 고교생이 돼서 스승의 날 꽃바구니를 들고 오는가 하면, 결혼식 때 청첩장을 주지 않았음에도 이 제자들이 어떻게 알고 참석해 축하해줬다. 또 앞집 살던 아이가 고교 교사가 된 후 내 제자를 학급에서 만나게 된 이야기도 큰 힘이 됐다. 학급 환경미화 겸 스승존경 문화 조성 차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 사진을 학급게시판에 붙여달라고 했더니 많은 사진 가운데 내 얼굴을 발견했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제자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은 유치원 때 가장 행복했고 나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더라. 물론 내가 원래 아이들을 예뻐하고 좋아해서 사랑을 많이 베풀긴 했다. 그러나 결단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마냥 잘해주는 교사는 아니었다. 안 되는 건 단호히 안 된다고 선을 그었고, 그 모습은 지금도 변함없다. 야단치고 큰 소리를 내는 순간에도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그랬다는 진심이 통했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들은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앞으로도 이런 교육풍토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병규 기자 bk23@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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