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적 삶으로 저어가는 자전거, 풍륜(風輪)

2017.08.23 17:40:12

김훈의 자전거 여행


강마을의 한낮은 그 뜨거움으로 세상을 익혀버릴 듯합니다. 이글이글 늦여름의 햇살은 뜨겁고 거세고 사납습니다. ‘폭염이라는 말도 모자라 핵더위라는 신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핵이란 말이 어쩌다 사납고 거센 것을 총칭하는 접두사가 되어 버렸을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해만 떨어지면 어딘가 숨어 있던 있던 벌레들이 무어라고 칭얼칭얼 노래를 시작합니다. “싸르랑 싸르르렁해금 소리처럼 들리다 시간이 깊어지면 힘차고 아름다운 거문고의 음율로 바뀝니다. 저는 이 소리들 중에서 방울벌레 소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저르렁 저르렁참 맑고 고운 그 소리가 들리면 이제 정말 가을이 왔구나.’ 하고 혼자서 딱 정해버리고 어딘가로 떠날 여행 가방을 싸고 싶어집니다. 특별히 정해 놓지 않고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처럼 그렇게 떠도는 삶을 동경하게 됩니다. 저 혼자 시작한 가을, 저 혼자 계속해서 읽은 책이 있습니다. 김훈의 기행수필집 자전거 여행입니다. 그의 글에는 유목적인 삶의 냄새, 바람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유목적 삶(노마디즘)이란 일정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동하는 삶을 뜻하는 말입니다. 땅에 뿌리내리고 토박이로 살며 정체성과 배타성을 지닌 정해진 형상이나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바람이나 구름처럼 이동하며 정주민적인 고정관념과 위계질서로부터 해당되고자 하는 사유가 유목적 삶의 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 바람의 사유가 그의 글에 박혀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펼치면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로 시작됩니다. 김훈의 자유로운 영혼이 바람이나 구름처럼 이동하고자 하는 욕구, 그의 자전거 풍륜(風輪)과 함께 유목적 삶의 향유가 드러납니다. 노마드에 대해 사유한 대표적인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유목민에게 역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로 나타냅니다. 그가 수필집의 첫머리에 세상의 길을 향하여 끊임없이 구르는 바퀴의 형태로 세상과 만나고 모든 길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추구합니다. 자전거는 그 자리에 멈추어서는 순간 넘어지는 것입니다. 유목민 역시 한 곳에 정주하는 순간 생성의 힘을 잃게 됩니다. 그 생성의 비밀은 끊임없이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새로운 힘을 밀어올리고 저어가는 안주하지 못하고 새롭게 짐을 싸야하는 사막의 유목민과 닮아 있는 것입니다.


장석주는 수필집 자전거 여행에 대하여 김훈이 자전거라는 아날로그적 도구에 의지해 이 땅의 산하를 누비고 보고 듣고 맛본 떠오른 생각들을 걸러내어 글로 빚어낸다고 하였습니다. 자연과 그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로이며, 자연에 대하여 미치지 않은 순결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작가의 시선이 자연의 순결성의 안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숲과 산에 대한 감탄은 책의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으며 나무들의 개별적 존엄이며 그 나무들은 소멸과 신생의 모둠살이를 반복하지만,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 것의 시간이라고 하여 숲을 자연이 아니라 문화의 영역으로 포섭하고 있다고 봅니다. 참으로 탁월한 해석입니다.

김훈의 아름다운 문체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인구(膾炙人口)합니다. 그의 문체에 대해 감각의 명증성에서 매우 선명한 생동감 아울러 직관에 의지한 명석한 인문학적 분석에서 깊이를 함께 얻으며, 문학적 명성의 상당부분이 그의 문체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또 그를 지독한 탐미주의자로 형상의 강성함과 꿋꿋함으로 우뚝 선 것들의 양명함보다 그것들의 그늘 아래에서 바스러지는 것, 사라지는 것, 죽는 것에 대한 애잔함에 마음을 빼앗기는 측은지심으로 무장한 이 시대의 작가로 장석주는 평가하고 있습니다.(장석주, 들뢰즈, 카프카, 김훈: 천개의 고원 그리고 한국문학의 지평, 작가정신, 2006 69p~71P)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같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간다. 프롤로그/ 17P

 

그는 숲과 나무의 생명력에 끝없는 환희를 보이며 크고 단단하고 위대한 것들 뒤에 숨어있는 작고 보잘 것 없으며 여린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생명의 핵심이 몸에 있음을 기억하고 우주와 몸이 교감하는 모습을 길 위에서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아직도 운동장에는 햇살이 뜨겁습니다. 그리고 그 햇살에 기대어 온몸으로 광합성을 하는 푸른 들의 벼들이 보입니다. 올벼는 벌써 몸의 한 자락에 낱알을 품고 서 있고, 대추나무 둥근 열매가 옹골찹니다. 저는 개학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면서 국악동아리 학생들이 연주하는 가야금 소리를 들었습니다. 설익은 대추알 같은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소리가 여물어 있습니다. 가을이 머지않은 곳에 있나봅니다. 여름 아이를 배웅합니다.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2000

이선애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