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겨울 산의 보석일까 얌체일까?

2018.02.01 09:00:00

김민철의 야생화 이야기

야생화 좋아하는 것을 아는 주위 사람들이 가끔 “겨울에는 무슨 꽃을 보러 다녀?”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겨우살이”라고 말하고 있다. 겨울 산에서 긴 망원렌즈를 갖고 나무 위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있으면 겨우살이 보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눈이 내린 직후이고 하늘도 파란 날에 겨우살이를 담는 것은 꽃쟁이 들의 로망 중 하나다.

겨우살이는 엽록소를 갖고 광합성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숙주 나무에서 물이나 양분을 일부 빼앗는 반(半)기생식물이다. 기본적으로 얌체 같은 식물이다. 겨우살이의 이같이 얄미운 점을 잘 드러낸 소설이 방현석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 있는 <겨우살이(1996년 작)>다. 주인공 서 선생은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고 복직한 고3 교사다. 그런데 가난한 제자의 진학지도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누이가 운전자 과실로 교통사 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런데 가해자는 사죄도 하지 않고 ‘법대로’ 만을 외치는 뻔뻔함을 보인다. 가해자 아파트에 찾아가는 길에 주인공은 얼핏 까치둥지를 겨우살이로 착각하는데, 어린 시절 누이와 겨우살이에 얽힌 추억이 있었다.



겨울 산기슭은 군락 하는 참나무와 상수리나무들로 온통 갈회색이었다. 그 갈회색 앙상한 가지 사이에 작은 광주리만한 크기로 피어난 황록색 잎과 노란 열매를 보고 나는 누이에게 물었다.

“저 까치집은 왜 파랗고 노래?”
“저건 까치집이 아니고 나무줄기와 잎사귀, 열매야.”
“왜 다른 상수리나무는 잎이 달리지 않았는데 저것만 달렸어?” 
“저건 상수리나무 잎이 아냐. 겨우살이야.”(…중략…) 
”예쁘니?” 
“응.” 
“그렇지만 겨우살이는 나쁜 나무야.” “왜?”
“겨우살이는 다른 나무들처럼 땅에서 물을 빨아 먹지 않고 다른 나무에 뿌리를 내려서 저 나무들의 물과 양분을 빼앗아 먹고 살거든. 봐라. 저 상수리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니?”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겨우살이에 꽃쟁이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겨우살이는 상록성이라 일 년 내내 푸른 잎을 달고 있지만 다른 계절엔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숙주 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는 겨울에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겨우살이라는 이름도 겨울에 돋보 이는 나무여서 생겼을 것이다. 꽃이 없는 겨울에 겨우살이가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식물인 셈이다.

겨우살이는 항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마구 채취해 웬만한 산에서는 흔적도 찾기 힘들다. 국립공원이나 높은 산이나 가야 겨우 볼 수 있다. 심지어 겨우살 이를 따기 위해 참나무를 베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니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함은 한이 없는 것 같다. 국립공원에서도 눈높이에서는 볼 수 없고 높은 나뭇가지에만 남아 있다. 그래서 겨우살이를 보려면 망원경이나 망원렌즈가 필요하다. 이처럼 보기 어렵지만, 초점 이 제대로 맞아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열매 사진을 보면 숨이 멎을 듯 기쁘다. 겨우살이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거리를 주지 않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겨울 식물계의 팜파탈(femme fatale)이다.


겨울 식물계 팜파탈 ‘겨우살이’
정읍 내장산은 지리산, 덕유산과 함께 겨우살이가 많은 곳이다. 내장산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나뭇가지에 새 둥지 같은 겨우살이가 달린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한 나무에 10여 개 있는 경우도 있다. 내장사에서 갈라지는 백련암 코스든 금선계곡 코스든 겨우살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내장산엔 겨우살이와 함께 열매가 빨간 붉은겨우살이(추천명은 붉은겨울살이)도 살고 있다. 좀 붉은 기가 있다 싶은 겨우살이를 망원렌즈로 당겨보면 어김없이 붉은겨우살이였다. 붉은겨우살이는 주로 내장산 이남에서 볼 수 있다. 겨우살이와 붉은겨우살이가 함께 살고 있는 나무도 많았다.

1982년 발표한 윤후명 소설 <둔황의 사랑>에 조선시대 탈춤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금옥’이라는 기생과 그녀를 사랑한 한 사내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 중 ‘그녀(금옥)의 어머니는 두 눈이 겨우살이 열매처럼 빨갛게 익어 있었는데…’라는 대목이 있다. ‘(남편이 죽어) 지나치게 울어서 그렇게 되었는지 독기가 뻗쳐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로 이어진다. 윤후명은 야생화에 조예가 깊은 작가로 유명하다. 1982년에 나온 소설에 붉은겨우살이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작가는 일찍이 1980년대 남쪽에서 붉은겨우살이 열매를 관찰했음이 분명하다.




높은 산에 가면 꼬리겨우살이도 볼 수 있다. 어느 해 겨울 태백산에 갔을 때였다. 산 입구에서 500m 정도 올라갔을 때 같이 간 일행이 갑자기 “와~” 하는 탄성을 터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초봄 생강나무 꽃이 핀 듯 꼬리겨우살이 열매가 노랗게 노랗게 무리 지어 달려 있었다. 꼬리겨우살이는 낙엽성이라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지고 열매만 남아 있다. 겨우살이 열매는 연한 노란색이고 대개 1~3개씩 모여 달리지만, 꼬리겨우살이 열매는 샛노랗고 열매가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점이 다르다. 꼬리겨우살이는 겨우살이에 비해 드문 편이다. 동백나무·감탕나무 등에 기생하는 동백나무겨우살이, 참나무는 물론 동백나무·후박나무 등에도 기생하는 참나무겨우살이도 꼭 한번 보고 싶다.

땅에 떨어진 겨우살이 열매를 먹어보니 달짝지근했다. 열매는 끈적끈적한 과육으로 채워져 있는데, 겨우살이 번식과 관련이 있다. 달콤한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다. 새가 열매를 먹고 배설할 때도 끈끈한 성분이 남아 있다. 이 성분 때문에 씨앗이 나뭇가지에 달라붙을 수 있다. 나무와는 기생하는 악연이지만, 새와는 먹이를 주고 번식에서 도움을 받는 공생관계인 셈이다.

서양에는 크리스마스 때 초록색 잎과 하얀 열매가 달린 겨우살이(미슬토)를 현관 안쪽 문 위에 걸어 놓는 풍습이 있다. 이 겨우살이 아래 서 있는 이성에게는 키스를 해도 된다고 한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도 이와 관련한 얘기가 나온다.

겨우살이는 겨울 산의 보석일까, 얌체인 ‘나쁜 나무’일까? 야생화 전문가인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한 기고에서 “겨우살이는 착한 식물인지 나쁜 식물인지 모르겠다”며 “다만 식물을 아주 조금 알면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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