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무너진 교원인사, 학교는 선거판

2018.02.01 09:00:00

버스나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있다면 자리가 날 듯한 곳에 자리했지만, 끝까지 자리에 앉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말았던 경험을 한두 번쯤은 했을 것이다. 어떤 때는 마침 자리가 났나 싶었는데,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슬그머니 앉아 버리는 바람에 스스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좌절에 빠진 경험도 있을 것이다.


옆에 서 있던 사람과의 무언의 약속이 깨지면서 그 이후로는 옆 사람을 계속 경계하게 된다. 최근의 무자격교장공모제 확대 추진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불씨가 될 수 있다. 30여 년을 기다렸는데, 무자격자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상상을 해보라. 좌절과 반감은 어떤 위로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무자격자를 교장으로 임용함으로써 교장 임용 방식을 다양화하고 공교육 정상화에 이바지하겠다고 하지만 속내는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진영논리를 교장임용에도 적용하여 입맛에 맞는 교장들을 대거 임용하겠다는 것이다. 보은·코드 인사로 교육계를 뒤흔드는 사상 초유의 정책을 그 흔한 의견수렴조차 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진영논리로 무자격교장을 임용하는 예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교장 자격에 대해서는 자격증은 물론이고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젊은 교장을 임용하더라도 그 자격과 절차가 엄격하여 우리처럼 교육경력 15년만을 요구하는 무자격교장공모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학교경영자인 교장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행정지식 및 능력 등 모든 조건을 따진다. 사전에 철저한 교육과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이런 자격요건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교장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교장 권한 무력화를 바라나?
무자격교장공모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은 첫째, 단위학교 책임경영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교장 임용이다. 둘째, 권한과 책임을 가진 학교장을 임용하여 학교 여건에 맞는 교육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단위학교 교육력 향상이다. 셋째,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가 원하는 자를 당해 학교 교장으로 임용함으로써 수요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공교육 활성화 토대 마련 등이다(2018.3.1. 교장공모제 시행계획, 서울시교육청).


과연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지 기존의 교장임용제도를 통해 임용된 교장들과 교장공모제의 목적과의 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단위학교 책임경영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교장 임용’에서 단위학교 책임경영은 학교장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부나 교육청의 문제이다. 교장 역량이 부족하여 단위학교 책임경영이 안 되는 것이 아니
다. 특히 오랜 경험과 식견을 가진 교장들의 전문성이 부족해서라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규제와 제재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은 교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음 목적은 ‘권한과 책임을 가진 학교장을 임용하여 학교 여건에 맞는 교육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단위학교 교육력 향상’인데 공모제 교장들의 공통점은 권한도, 책임도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공모제 교장이 임용된 학교의 이야기를 인용하면 민주화를 외치면서 교장의 권한을 무력화시키고, 교직원회의나 각종 위원회에서 정해진 것을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학교장의 권한과 책임을 무력화시키는 형태의 학교운영 모습이 여러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 역시 현재의 교장임용제도로 임용된 교장들의 문제는 아니다. 도리어 공모제로 임용된 교장들이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목적으로 제시된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가 원하는 자를 당해 학교 교장으로 임용함으로써 수요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공교육 활성화 토대 마련’도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현재의 교장임용제도 아래서도 학부모나 학생 등 교육수요자가 원하는 교육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의견수렴 방법 등을 조금 더 정비한다면 이는 쉬운 일에 해당한다.


인기투표, 소신 경영할 수 있을까?
무자격교장공모제는 이런 현실을 모두 무시하고 자격 없는 교장을 임용한다는 것인데, 자격도 없는 교장이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학부모와 학생, 지역사회에 눈도장을 찍어야 교장으로 임용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학교 교육보다는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행 승진제도 하에서의 교장은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학교장으로서 다양한 지식도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임용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자격교장을 임용한다고 공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또한 해당 학교 구성원들이 선택해 준 교장이 자신의 소신 있는 교육철학을 펼칠 수 있을까 우려스럽다. 위에 제시된 목적달성보다는 교장의 권한을 무력화하여 입맛에 맞는 교장을 임용하겠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본다. 진영논리를 앞세워서 특정 노조 출신의 교장을 양산하여 학교 교육도 이념의 장으로 무장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교육대학·사범대학이나 교직과정이 설치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무사히 졸업해야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것이 1차 관문이다. 교사자격증을 취득했다고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교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과 절차 중 하나라도 거치지 않으면 교단에 설수 없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교사 임용제도이다. 이렇게 교사로 임용되어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구와 경험, 그리고 노력이 따라야 비로소 존경받는 교사가 될 수 있다. 만일 일부 교사들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자격증없는 교사를 다른 루트를 통해 임용할 수는 없다. 법을 바꾸면 된다는 주장을 할 수
도 있지만 이미 교원자격증을 소지한 수많은 교·사대 출신 예비교사들과 재학생들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자격증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교사를 임용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렇듯 교사도 안 되는데 교장은 된다는 논리는 더욱더 설득력이 없다. 이미 임용루트가 있어 수요를 충분히 채울 수 있음에도, 공급루트에만 무자격교장공모제를 끼워 넣는 것은 기존 교장들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의구심만 더할 뿐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교감은 경력 20년, 교장은 경력 15년
교직에 입직하여 15년 정도 지나면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낄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승진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교사들이 더 많다. 오로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에 전념하게 되어 교사로서 신나는 시기이다. 다시 말해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하여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완성해 가는 시기이다. 보통 5년까지는 수업을 재미로 하고, 그 후 5년은 교직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또 그 후 5년은 근근이 버티는 시기라고 한다. 15년이 지나면 교직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어느 정도 쌓았기 때문에 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매진할 때이다. 이른바 중견교사의 대열에 합류하는 시기이긴 하지만 중책을 맡기에는 조금 부족함을 느끼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무자격교장공모제에 너도나도 지원하게 된다면 교육력 저하라는 결정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교육공무원승진규정에 교감연수대상자로 선발되기 위한 최소한의 경력을 20년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감연수 후 교장자격연수를 받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시·도마다 다소 다르긴 하겠지만 적어도 5~6년은 지나야 한다. 최종 교장으로 임용되는 시기는 거의 30년을 교직에 몸담았을 때 가능한 것이다. 겨우 15년의 경력을 가진 무자격교장이 임용된다면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길러온 교장후보자들은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어 들 것이다. 교장임용의 다양화를 내걸고 있지만 기존의 교장임용제도에 대한 문제가 무엇이고, 현재 학교장들의 무능함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근본을 무시하고 특정 논리만을 내세우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논리는 없고 구실만 있다
무자격교장공모제에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특정 노조의 협조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실제로 지난 국정감사에서 나타났듯이 진영논리에 의한 특정 노조 출신의 무자격교장 임용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일부 시·도에서는 특정 노조 출신이 100%였다. 결국 무자격교장공모제의 확대는 교사들 간의 이념 논쟁은 물론 학교 교육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교장 임용을 두고 불신과 갈등이 조장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무자격교장공모제를 통해 교장으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능력보다는 불필요한 인기관리를 통해 이미지를 쇄신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을 살릴 수 없게 된다. 학교가 정치판이 되어 진영논리에 휘말릴 뿐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외면할 수 있다.


현재 교장임용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력과 근무성적평정 점수가 절대적으로 승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등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교장으로 임용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바로잡을 개선안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교사들의 지지를 받는 개선안은 중임평가를 내실화하자는 것이다. 평가를 해서 중임을 허가한다고는 하지만 형식적인 평가결과를 믿는 교사들은 많지 않다. 만일 8년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중임평가에 대한 다양한 기준을 설정하여 믿을 수 있게 하면 된다. 현재의 교장임용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검증되지 않은 무자격교장공모제를 확대하는 것은 이미 교장공모제 도입으로 교사들의 교장 승진이 더욱더 묘연해진 상황에서 최상의 대안은 아니다. 임기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행 교장공모제의 결정적인 결함이라고 본다면 자격이 있는 교장공모제도 폐지되어야 한다.


이를 유지한다면 공모교장으로 재직한 기간도 교장임기(4년+4년)에 넣어야 한다. 이 방안은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답보상태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렇게 하면 교장 승진자들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더 다양한 교장들의 임용이 가능하게 되어 굳이 무자격교장공모제를 확대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무자격교장공모제 확대만이 다양한 교장의 임용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무자격교장공모제를 확대한다고 해도 결국은 특정 노조에 몸담은 교사 중 극히 일부만이 무자격교장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특정 노조 교사들 사이에 또 다른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 목적 달성도 못 하고 교육계를 뒤흔드는 오류를 범할 뿐이다.


공모 교장 재직 기간 교장 임기 반영 검토해 볼 만
교장임용제도를 한꺼번에 바꾼다는 것은 교육계의 판을 바꾸는 것이다. 다른 분야라면 혁신적인 제도 도입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도 있지만 교육 분야에서의 혁신적인 제도 도입은 학생이라는 특수한 집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길 수 있어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단순히 젊고 유능한 교장, 교장임용의 다양화를 위한 것이라면 설득력은 더욱 떨어진다. 도리어 누군가 혹은 특정 집단을 위한 제도라는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교육제도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검증된 제도만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무자격교장공모제 확대는 무조건 철회되어야 한다. 항공기의 기장은 자격이 없고, 부기장만 자격이 있다면 그 비행이 제대로 될 리 없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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