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기력에 익숙해진 아이들
경험 없어 당황…연수도 소용없어
물리적 통합에만 그쳐…차별 여전
공동체 생활 자체가 교육적 의미
일반‧특수교사 협력, 연수 확대를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장애학생들이 장애 정도에 따라 차별 받지 않고 비장애 또래학생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도입된 통합교육. 그러나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습내용이 어려워지고 대입이 목표가 되면서 통합교육을 포기하고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 물리적인 통합을 넘어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의 정서적 교류, 유의미한 배움이 일어나는 진정한 통합교육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학생 통합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봤다.
일반계고 특수학급에서 근무하고 있는 A교사는 최근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국어교과 수행평가가 이뤄졌는데 옆에서 보니 학생들이 평가지에 이름만 쓰고 바로 펜을 놔 버리는 것이었다. 통합학급 교사도 ‘그럴 줄 알았어’ 하며 종이를 걷어갔다. A교사는 “장애 학생들이 학습된 무기력에 노출됐다”고 말했다. 통합학급에 가면 ‘어차피 너희는 못할 거니까’ 하는 시선을 반복해서 겪다가 스스로 포기하게 되고, 이런 분위기에 오래 노출될수록 통합교실 속 장애 학생들의 고립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통합교육이 어려운 것은 일반교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처음 통합학급 담임을 맡은 서울 B중 C교사는 ‘몰라서 못 해줘 미안하다’고 했다. 장애학생을 맡아 본 경험이 없어 간단한 일도 어찌할지 몰랐기 때문. 청소시간 등에 쉬게 하는 게 배려인지, 뭐라도 맡기는 게 옳은지 알 수 없었다. 딜레마는 수업시간에도 그를 따라다녔다.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돌발행동을 할 때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봤다. 그는 “반 아이들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하다 결국 정서적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며 “학기 초 통합학급 교사 연수를 받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고 털어놨다.
겉보기에도 도움이 필요한 중증장애와 달리 정도가 경미한 경계성 장애 학생들은 통합교육이 오히려 더 어렵다. 인천 D초 E교사는 “학생들이 ‘쟤가 왜 장애인이냐’며 친구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따돌리거나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며 “제대로 된 장애 이해교육 없이 무조건적인 통합만 강조할 경우 오히려 차별과 편견을 더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특수교육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특수교육 대상 학생 8만9353명 중 일반학교 배치 학생은 특수학급이 4만7564명(53.2%), 일반학급(전일제 통합)이 1만5590명(17.4%)으로 전체의 70.7%에 달한다. 특수학급 학생 수도 2008년 3만7857명, 2012년 4만4433명, 2015년 4만6351명, 2017년 4만7564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장애학생들의 일반학교 배치 비율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 장애이해교육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장애학생 통합교육이 여전히 분리교육 현실에 놓여 있다는 것이 교사들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통합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학급 내에서 자신의 몫을 하고 어울리는 등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교육목표라는 것이다.
2년 전까지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일반학교로 전근 온 인천 F초 G교사는 통합교육의 효과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에서 가르쳤던 지적장애 학생이 G교사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것. 그는 “통합학급에서 사회성, 학습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며 “특수학교에 있었으면 중증 장애학생 사이에서 더욱 하향평준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를 보면 걱정스럽습니다. 특수학교 설립을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의 전부로 생각할까 봐요. 그러나 졸업 후 아이들이 나올 곳은 결국 사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더불어 살아가는 준비를 하는 게 통합교육인데, 특수학교는 분리교육을 하는 곳이거든요. 이번 일로 통합교육의 분위기가 역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돼요. 한계는 있지만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교사들은 통합교육을 보다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반교사-특수교사 간 협력, 교사와 학생들을 위한 장애이해교육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협력수업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서울 H초 I교사는 “특수교사는 학생 수가 적어도 전체 학년을 맡다보니 수업 준비할 것도 많고 수업시수도 23~26시간에 이른다”며 “이밖에 교육과정 운영, 방과후학교, 현장학습, 생활지도 등 별도 업무도 맡기 때문에 협력수업 준비는 꿈도 못 꾸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교사들이 수업준비와 협력수업에 공을 들일 수 있도록 특수교사 정원 확대, 실질적인 행정업무 경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원연수, 장애이해교육 확대도 요구했다. 2016년 통합학급 담임 기준 특수교육 연수 이수자는 15시간 미만 8410명, 15~30시간 미만 1624명, 30~60시간 미만 4827명, 60시간 이상 2만7220명이었지만 대부분 원격연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C교사는 “통합학급을 맡은 후 연수를 들으면 너무 늦는다”면서 “언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교사나 학생 모두 연수와 장애이해교육 등을 미리 받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원양성기관에서도 장애인 학생 멘토링 교육봉사를 실시하는 등 임용 전에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통합학급의 경우 체험활동, 단합대회 등을 통해 정서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도록 학급 운영비를 충분히 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