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달라진다 ⑧ 이경옥 서울 숭곡중 수석교사의 ‘매체 읽기를 통한 배움·나눔·키움·아름다움(주제 선택 활동)’
글쓰기 수업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부담스럽다. 글쓰기는 어렵고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활동에 소극적이고 교사들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을지, 어떻게 수업을 구성해야 글쓰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경옥 서울 숭곡중 수석교사도 다르지 않았다.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길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요즘 아이들의 특성에 주목했다. 문자(文字)보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을 떠올린 것이다. 이 수석교사는 “학생들이 좋아하고 즐겨 보는 매체를 활용해 글쓰기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면서 “교과와의 연계성부터 학습 효과, 역량 계발, 동기 유발, 재미까지 각각의 요소를 고려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매체 읽기를 통한 배움·나눔·키움·아름다움’은 자유학기 국어 주제 선택 활동 프로그램이다. 영화, 그림, 노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글쓰기 주제에 대해 살핀 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게 핵심이다.
이 수석교사는 지난해 ‘다양성’을 큰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완득이’를 영화와 책으로 살펴보고 ‘나’에 대해 시를 쓰기도 하고, 시대를 풍미한 노래를 들어본 후 상황 노래극도 만들었다. 사물을 주제로 한 동화책을 읽고 자신과 비슷한 사물을 선택해 주인공으로 삼고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수업에 활용할 매체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자연, 사람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3월에는 사람을 매체로 수업했다. 이 수석교사는 “3월이면 학생들이 서로 낯설어하는 모습이 떠올랐다”면서 “‘손님을 초대합니다’ 형식을 활용해 자기소개를 하고 이구동성 게임을 하면서 집중력도 키우고 시·글 이미지 조각 맞추기 활동을 통해 모둠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꽃이 피는 봄이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는 자연을 매체로 삼았다. 지난 5월에는 운동장에서 ‘봄꽃과 함께 하는 시 창작하기’ 수업을 진행했다. 이 수업의 핵심은 자연을 오롯이 느끼는 것이다. 학생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자신의 생각과 정서가 담긴 언어로 담아내고 오래도록 느낄 수 있게 지도했다. 이 수석교사는 시 창작에 막막함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모둠끼리 꽃과 나뭇잎을 고르게 해 소재를 제공했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화이트보드에 써보게도 했다. 학생들의 생각을 확장시켜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느낌과 생각을 갖는 것처럼 자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라면서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염두에 두는 부분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글쓰기에 흥미가 생겼어도 막상 연필을 들면 한 글자도 쓰지 못해 답답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이 수석교사는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말해준다.
“글쓰기는 어른들도 어려워해요. 하물며 이제 갓 중학교에 올라온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어렵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당연한 거라고, 있는 그대로를 적어 내려가는 게 먼저라고, 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활동 자체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건 주제와 학습 목표에 맞는 매체를 찾는 일이었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내용인지, 선정적인 표현이 있는지, 교육용으로 활용할 만한 내용인지 등 고려할 요소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체를 찾는 데 한계가 있을 때는 교내 전문학습공동체와 교원 독서 동아리, 연구회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주제에 맞는 매체를 학생들과 함께 찾고 탐구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조차도 숙제로 여겨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올해는 국어 교과 수업에 매체 읽기를 통한 글쓰기를 접목, 재구성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3분 정도 ‘수업 전 생각하기’ 활동을 진행한다. 매체를 통해 그날 배울 내용을 예측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과 나의 생각을 기록, 축적했다가 글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수업하면서 글을 쓰지 못하고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을 봤어요. 사람마다 능력이 다른데 글쓰기만 고집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올해는 그 능력을 살려주자 마음먹었죠. 글, 그림, 만화 중에 자신 있는 방법을 선택해 기록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림, 만화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단 몇 컷의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함축해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수석교사는 “이를 계기로 글쓰기 활동에 대한 불만도 줄고 글로 표현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걸 깨닫더라”며 “의도하지 않은 성과”라고 귀띔했다.
“사실 가장 큰 성과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작은 사물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고 자기 나름의 의미도 부여하는 모습을 봤어요. 매체라고 하면 동영상, 파워포인트만 떠올리던 아이들이었는데 말이죠. 모둠 글쓰기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와 소통하고 협업하는 능력도 길러줄 수 있었어요. 이제는 수업을 시작하면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오늘은 어떤 매체로 글 써요?’라고 질문해요.”
‘매체 읽기를 통한 배움·나눔·키움·아름다움’에선 화려한 수업 스킬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수업의 흐름을 한 눈에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특히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덕분에 배우고 싶다는 동료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이 수석교사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단원의 키워드와 학습 목표에 맞는 매체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종종 수업과 연관 없는 매체를 그저 좋은 내용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경우를 봐요. 이왕이면 수업과의 관련성, 연관성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어요.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교과 융합 수업을 구성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같은 활동이지만, 교과에 따라 접근법이 다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