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가슴으로 하는 것... 닦달한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2019.04.03 13:30:00

경기 상현고등학교 송수현 교장

“아시다시피 철새가 날아갈 때 V자 비행을 하는 것은 공기저항을 줄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앞자리를 서로 바꿔가며 날아가요. 일종의 고통분담이고 협력이죠. 학교도 마찬가지예요. 경청하고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상호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학교가 행복하고 수업이 즐거운 법이니까요.”

 

‘기러기 리더십’으로 유명한 송수현(사진) 경기 상현고등학교 교장은 “리더가 희생과 봉사로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진실은 통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교육 철학을 이같이 밝혔다.

 

“교직 생활을 하다 보니 교장이 닦달한다고 학교가 변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데 그러려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찾아 다가가는 게 중요합니다.”

 

송 교장의 학교경영은 믿고, 맡기고, 뒤에서 솔선수범하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교사들에게는 지적보다 칭찬을, 학생들에겐 지시보다 자율을 우선한다. 교과교육이나 체험활동은 교사들에게 믿고 맡긴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되고 절차와 과정에 이상이 없으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학교예산 집행도 교사들의 교육 활동을 최우선으로 한다.

 

교사들에게는 자율을, 학생은 자치를, 교장은 솔선수범

학생들에게는 자치와 자율을 중시한다. 학교 축제나 체육대회 등 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는 그들 스스로 결정해 운영하도록 한다.

 

“아이들한테 입버릇처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살라 하면서 어른들이 일일이 간섭하며 자율과 자치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은 이율배반 아닙니까. 뭐든 믿고 맡겨보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성숙하고 잠재된 역량이 큰지 알 수 있어요. 학생이나 교사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주는 게 행복한 학교로 가는 첫걸음이거든요.”

 

송 교장은 졸업식도 학생자치회에 맡긴다고 했다. 학생들이 사회도 보고 진행도 하게 했더니 오히려 더 질서 있고 참여 열기도 높아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뭐든 강요를 하면 사고 위험이 더 높아요. 학생들의 자발성을 최대한 살려줘야 학교생활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솔선수범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학생들과 함께 극기 캠프에 참여, 지리산도 오르고 전북 부안 신석정 문학관도 찾는다. 점심시간이면 마스크 쓰고 급식실 식탁을 직접 닦는다. 한두 번 그러다 마는 쇼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1년 내 급식실 청소를 하는 교장 선생님을 보며 이젠 반찬 하나 허투루 흘리지 않는다고 한다.

 

송 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출발한 이래 경기도교육청 장학사, 장학관, 경기도교육연수원 기획평가부장 등 전문직 경력과 함께 수원 고색고, 용인 백현고 교장에 이어 지난해부터 상현고 교장을 맡았다. 한때 경기도중등교장회 회장을 맡을 만큼 ‘교장 오브 교장’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가까이하고 싶은 교장, 멀리하고 싶은 교장

재밌는 일화도 있다. 지난 2016년 교장에 부임하자마자 교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주제는 ‘가까이하고 싶은 교장’과 ‘멀리하고 싶은 교장’으로 정했다. 교사들이 생각하는 바를 알아야 갈등을 일으키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무엇보다 교장이 먼저 변해야 학교가 달라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교사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었다.

 

설문에 참여한 교사들의 반응은 리얼했다. 몇 가지만 추려봐도 눈길을 끈다. 교사들은 가까이하고 싶은 교장의 덕목으로 ▲교사들과 소통하고 어려움을 들어주는 교장, ▲등교 시간이나 급식 때 아이들을 맞아주는 교장, ▲지시보다 지지해 주는 교장, ▲말보다 실천이 우선인 교장, ▲교사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교장 등을 꼽았다.

 

반면 멀리하고 싶은 교장으로는 ▲학기 초 연수 밀어붙이는 교장, ▲복도 순회 자주 하는 교장, ▲쿨메시지 자주 보내는 교장, ▲내가 옳다, 나를 따르라 식 교장 ▲언어폭력 교장 등을 들었다.

물론 학교가 교장의 노력만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송 교장은 교사들도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높이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교사는 기본적으로 제자들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장 훌륭한 교재입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언어와 행동을 보고 느끼면서 자라죠. 아이들 마음의 기준점이 되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교사, 그런 분들이 많을수록 우리 교육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수업에서 행복과 즐거움, 배움의 깨달음 얻는 상현고

상현고가 ‘수업 활동을 통한 행복 찾기’를 올해 교육목표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은 수업에서 행복과 즐거움, 배움의 기쁨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있다.

 

이를 위해 송 교장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학교 수업방식의 변화를 강조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육받는 시간의 80%는 교과 수업인 만큼 사교육에서 할 수 없는 교육으로 수업을 바꿔나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교육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수업 4유 3무’를 강조했다. 경청, 협력, 질문, 표현이 있는 교실과 잠자기 없기, 자습 안 하기, 맥락 없는 동영상 시청 안 하는 교실 만들기가 그것이다.

 

상현고는 또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다. 현재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와 과학과목 중심으로 고교학점제가 운영된다. 송 교장은 일부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고교학점제가 대학입시는 물론 고등학교 교육체제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며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오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에 들어가면 기존의 담임 중심 학급경영에서 학생 선택과목 중심으로 고등학교 문화가 완전히 달라지 게 되고 수업방식과 평가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 것이라고 했다.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숙명여고 사태도 지식 위주 교육과 치열한 경쟁, 지필평가, 객관식 평가에 집중하다 보니 발생한 것입니다. 학교 수업이 발표와 토론중심으로 바뀌고 과정중심평가 비중이 커지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죠.”

 

올해로 교직 39년 차, 정년을 1년 정도 앞둔 그는 후배들을 위한 무료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매주 토요일 전문직을 꿈꾸는 후배 교사들을 위해 무료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부족하지만 자신이 경험과 노하우를 물려주고 보다 나은 교육정책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전문직은 모든 교육가족에게 서비스하는 봉사자입니다. 군림하거나 따라오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죠. 지시 전달자가 아니라 대민 서비스하는 봉사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적 역량보다 인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교육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송 교장.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갈 때 비로소 마음을 움직이는 교육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먼 훗날 동고동락했던 후배 교사와 제자들로부터 그리움과 기억의 대상이 되는 교장으로 남고 싶은 게 마지막 바람이라고 했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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