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토종 허브’, 그 이름은 배초향

2019.10.04 10:30:00

 

“방아잎으로 만든 전 한 번 드셔 보세요.”

 

서울 종로구 한정식집에 갔더니 종업원이 부침개를 내놓으며 말했다. 푸른 방아잎을 넉넉하게 넣은, 노릇노릇한 방아잎 전이었다. 방아잎 향이 입안에 퍼지면서 고소한 것이 별미였다. 막걸리 안주로 딱 좋을 것 같았다.

 

방아, 방아잎은 남부지방에서 배초향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래서 배초향이라면 잘 몰라도 ‘방아잎’ 하면 아는 사람이 많다. 배초향은 잎이 작은 깻잎처럼 생겼고, 원기둥 꽃대에 자잘한 연보랏빛 꽃이 다닥다닥 피는 꿀풀과 식물이다. 산에서도 자라지만 마당이나 텃밭 한쪽에 심어 잎을 따 쓰는 식물이기도 하다. 잎을 문질러보면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좋다.

 

영화 <국제시장>에도 등장한 경상도 필수 식재료, ‘배초향’

한번은 서울 주택가를 지나다 가게 앞 조그만 화단에서 꽃과 잎이 풍성한 배초향을 보았다. 이 배초향 사진을 페이스북 등 SNS에 짧은 글과 함께 올려보았다.

 

배초향으로, 요즘 서울 시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선 방아, 방아잎이라 합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진한 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생이지만, 사진처럼 집 주변에 심어놓고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데 쓰기도 합니다. (라벤더, 로즈마리가 서양 허브라면 배초향은) 우리 토종 허브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설명을 달았더니 뜻밖에도 경상도, 특히 부산 등 남해안 지역 출신 분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부산에서는 매운탕·추어탕에 꼭 들어가야 제맛이 납니다.’(박○○)

‘마산 장어국에 들어가는 필수 허브지요~~^^ 그리운 향입니다~~^^’(이○○)

‘어렸을 때 이것 넣어 전을 부쳐 먹었어요. 요새도 제 고향에서는 그러지요.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참 향긋한데….’(조○○)

‘난 경상도로 시집와서 이 향기를 너무 좋아해! 매운탕엔 필수. 근데, 배초향이란 이름은 처음 ㅋㅋ 우린 방아잎이라고 해.’(김○○)

 

반면 다른 지방 사람들은 ‘방아잎이 이렇게 생겼군요’, ‘아하 토종 허브군요~’, ‘동네 화단에 있는 배초향, 그저 무심히 보았는데…’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부산 등 남해안 일대에서는 대형마트 야채 코너에서 배초향 잎을 팩으로 팔정도로 흔한 식재료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에도 배초향이 등장했다. 영화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덕수와 부인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옥상에서 살아온 인생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이 옥상 텃밭에 배초향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작진이 영화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운 아버지의 향기, 배초향 향기

김향이의 베스트셀러 동화 <달님은 알지요>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할머니와 살아가는 열두 살 소녀 송화 이야기다. 이 동화에도 배초향이 방아꽃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송화 아버지는 집을 나가 연락이 없는 지 오래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송화가 선생님 자전거를 얻어 탔을 때 ‘선생님한테서는 풀꽃 냄새가 났다. 칡꽃 냄새랑 방아꽃 냄새를 버무려 놓은 것 같은 냄새였다.’

 

“허리를 꽉 잡아라.”

자전거에 올라타며 선생님이 말하였다. 송화는 부끄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떨어져도 난 모른다.”

선생님이 갑자기 자전거 페달을 밟았고, 엉겁결에 송화가 선생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휘파람을 불었다. 선생님한테서는 풀꽃 냄새가 났다. 칡꽃 냄새랑 방아꽃 냄새를 버무려 놓은 것 같은 냄새였다. 송화는 선생님 등에 사알짝 얼굴을 대 보았다.

`아빠 냄새도 이럴까` 송화의 뺨에 발그레하게 꽃물이 들었다.

 

칡꽃은 한여름에 산기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칡도 꽃이 피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자주색 꽃잎에 노란 무늬가 박힌 것이 상당히 예쁜 꽃이 핀다. 특히 칡꽃 향기는 정말 그윽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좋다. 이런 칡꽃 향기와 배초향 향기를 버무려 놓은 것이면 어떤 향기일까. 송화가 생각하는 아버지 냄새가 그런 냄새인 것이다.

 

송화는 아버지가 없지만,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사는 영분이, 생물학자의 꿈을 키우는 영분이 사촌오빠 영기 등과 함께 산과 들에서 뛰논다. 그러다 불현듯 아버지가 이제 자리를 잡았다며 송화를 찾아온다. 아버지를 따라 도회지로 옮겨와 살지만, 송화는 고향 친구들이 그립다. 설날에 할머니는 전에 살던 마을 근처에 있는 망배단에서 굿판을 벌인다. 두고 온 고향, 이북 땅을 그리워하는 ‘통일굿’이었다. 할머니가 굿하는 것을 반대해온 아버지가 갑자기 북채를 잡으면서 북소리와 할머니의 춤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 책에는 방아꽃 말고도 많은 꽃들이 등장하고 있다. 송화가 앉아서 외로움을 달래는 ‘강가 습지에는 갈대와 부들이 배게 자랐고, 조리풀·수크령들이 얼크러져서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여기서 조리풀은 골풀의 다른 이름이다. 수크령은 길가에 흔히 자라는 풀로, 큰 강아지풀처럼 생겼다. 서울 청계천에도 물길을 따라 길게 심어놓았다.

 

송화는 아빠가 그리울 때 분꽃을 따서 입에 물거나 망초꽃을 따서 문질렀다. 망초꽃을 문지르면 ‘꽃밥이 으깨지면서 손끝에 노랑물을 들여 놓았다.’ 꽃밥을 으깼을 때 노랑물이 드는 것은 망초꽃보다는 개망초꽃이 맞을 듯하다. 송화가 길가의 쑥부쟁이를 꺾어서 검둥이 귓바퀴에 꽂아주면 ‘검둥이는 재채기하듯 몸을 털어 꽃을 떨구어 버렸다.’ 이처럼 작가는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책 마지막에도 글을 쓴 시점을 ‘1994년 분꽃 필 무렵’이라고 써놓았다.

 

‘훅’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전달되는 보랏빛 진한 향기, 꽃향유

배초향과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꽃향유와 향유가 있다. 둘 다 키가 60㎝ 정도까지 자라는데, 10월쯤 인왕산·우면산 등 서울에 있는 산에서도 보라색 꽃이 핀 꽃향유 무리를 볼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향기를 갖고 있다. 바람이라도 훅 불어오면 어지러울 정도로 향기가 진하다. 배초향은 꽃대에 빙 둘러 꽃이 피지만, 꽃향유는 꽃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피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꽃향유 꽃차례는 칫솔같이 생겼다. 향유도 꽃이 한쪽으로만 피지만, 꽃향유보다 꽃 색깔이 좀 옅고 꽃이 성글게 피는 점이 다르다.

 

야생화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 서울 근교 산에서 처음 칫솔 모양으로 생긴 꽃향유를 보고 이름이 정말 궁금했다. 지금처럼 앱으로 물어볼 수 있는 시대도 아니어서 야생화 책을 한참 뒤져서 이름을 알아냈을 때 정말 기뻤다.

 

이 꽃은 왜 한쪽으로만 피는지 궁금해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꽃 공부를 하면서 그 시절이 가장 재미있었다. 가끔 그때처럼 다시 열정과 호기심을 끌어올릴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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