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주근깨 박힌 보리수나무 열매

2019.11.05 10:30:00

 

필자가 활동하는 야생화 모임의 2년 전 가을 정모(정기모임) 장소는 경남 산청군 황매산이었다. 그날 정모는 구절초·물매화·자주쓴풀 등이 주타깃이었지만, 필자에겐 더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보리수나무 열매였다. 등산로 주차장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 곳곳에 팥알만 한 보리수나무 열매가 다닥다닥 열려 있었다. 붉은 열매에 은빛 점이 주근깨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것도 귀여웠다. 어릴 때 ‘포리똥’이라 부르며 따먹은 추억의 열매였다. 약간 떫은 듯한 단맛이 나는 열매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아내와 나는 일행에서 뒤처지는 줄도 모르고 한동안 보리수나무 열매 따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6월에도 비슷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사람들은 보리수 열매라고 부른다. 봄에 익는 열매는 가을에 익는 열매보다 좀 더 크고 타원형인데, 이것은 뜰보리수 열매다. 보리수나무는 야생이라 주로 산에서 볼 수 있고, 뜰보리수는 일본 원산으로 화단 등 민가 주변에 많이 심어놓았다.

 

보리수나무와 뜰보리수 구분하는 것도 헷갈리는데, 우리 주변에는 흔히 ‘보리수’라고 부르는 나무들이 더 있다. 부처님이 그 아래에서 성불했다는 보리수, 독일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가 그것이다. 제주도와 남쪽 섬에서 볼 수 있는 상록수 보리밥나무 등은 일단 논외로 쳐도 그렇다.

 

첫 사랑 ‘그 남자’를 떠올리게 한 보리수나무

박완서가 첫사랑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에서도 주인공은 이 세 가지 나무 이름을 헷갈리고 있다. 이 소설은 2004년, 그러니까 작가가 74세였을 때, 50여 년 전 기억을 더듬어 쓴 소설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 이어 이른바 작가의 ‘자전소설 3부작’의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다.

 

시대적 배경은 아직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다. 주인공은 같은 동네로 이사 온 먼 친척인 남자 현보와 ‘닮은 불운을 관통하는 운명의 울림 같은 걸 감지’하고 매일이다시피 만나 어울린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을’ 느끼며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데이트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백수였고 주인공은 다섯 식구의 밥줄이었다. 결국 주인공은 일하러 다닌 미군부대에서 만난 은행원과 결혼을 결심하고 현보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 소설의 큰 줄거리다.

 

소설은 주인공이 50여 년 전 찬란한 한 때를 보낸 그 남자네 집을 찾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 남자네 집을 찾은 결정적인 물증은 ‘보리수’였다. 돈암동 후배네 집에 놀러 갔던 주인공은 돈암동 안감천변에 살던 첫사랑 그 남자를 떠올린다. 그 남자네 집은 사랑마당으로 통하는 곳에 홍예문이 달린 단아한 집이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가 있었고, 그 중 ‘보리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주인공이 보리수로 알고 있는 나무와는 달랐다. 주인공은 힌두 문화권을 여행했을 때 부처님이 그 나무 아래에서 성불했다고 들은 보리수, ‘뮐러가 노래한 린덴바움’으로 그 나무 아래에서 단꿈을 꿀 수 있는 나무 등 두 개의 상이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네 집 나무는 둘 중 어떤 것하고도 닮지 않았다. 주인공은 수목도감을 찾아본 다음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이파리 사이로 삐죽삐죽한 잔 가장귀엔 서너 개씩 빨간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보리수나무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이 나무들은 얼마나 있어야 그 밑에서 단꿈을 꿀만큼 자랄까. 한 오십 년쯤. 나는 보리수나무가 세월을 거꾸로 먹어 오십 년 전엔 그 무성한 그늘에서 관옥같이 아름다운 청년이 단꿈을 꾼 것 같은 착란에 빠졌다.

 

작가가 세 나무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몽환적으로 처리한 느낌도 없지 않다. 어떻든 빨간 열매가 달리는 보리수, 부처가 성불했다는 보리수,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는 각각 다른 나무다.

 

토종보리수·뜰보리수·인도보리수·슈베르트 보리수…

황매산에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엔 토종 ‘보리수나무’가 있다.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은 씨의 모양이 보리 같다고 붙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부처님이 그 아래에서 성불한 보리수는 뽕나무과의 상록활엽수로, ‘인도보리수’라고 부른다. 고무나무같이 잎이 두껍고 넓으며 인도처럼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열대성 나무로, 30~40m까지 자라는 큰 상록수다. 중국을 거쳐 불교가 들어올 때 ‘깨달음의 지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를 음역해 보리수라고 부르면서 보리수나무와 혼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월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립수목원·서울수목원 같은 몇 군데 온실에서나 볼 수 있다. 절에서는 이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보리자나무 또는 찰피나무를 인도보리수 대용으로 심었다. 절에 가면 꽃자루에 긴 프로펠러 같은 포(잎이 모양을 바꾼 기관)가 달린 이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혼란스러운데, 슈베르트의 가곡에 나오는 ‘린덴바움(Linenbaum)’이 보리자나무·찰피나무와 비슷하다고 누군가가 ‘보리수’라고 번역해 버렸다. 학창시절 배운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유럽피나무’라고 하는 종이다. 베를린에 갔을 때 이 나무를 가로수로 심어놓은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 린덴바움 아래)’ 거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나마 빨간 열매가 열리는 것은 각각 보리수나무와 뜰보리수로, 부처의 보리수는 인도보리수로 나누어 불러 혼란을 줄이고 있다. 그렇다면 슈베르트 보리수는 뭐라 불러야 할까. 계속 보리수로 불러야 할까, 유럽피나무라고 해야 할까, 글자수를 맞추기 위해 그냥 피나무라고 해야 좋을까.

 

같은 나무를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많지만 여러 나무를 한 이름으로, 그것도 수십 년 동안 고쳐지지 않고 부르는 일은 드문 일이다. 잘못 붙인 이름 하나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올바른 이름 붙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박완서 작가는 이 소설에서 첫사랑의 설렘과 열정을 매혹적인 문장으로 그려내었다. <그 남자네 집>이 인기를 끌었을 때 박완서 작가는 TV에 출연해 “소설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선생은 웃으면서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어주시고,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어 달라. 재미있게만 읽어 달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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