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언(眞言)

2020.07.06 11:00:00

01

천마산 자락에 사는 H가 30년 전 옛 동료들을 초대했다. 해마다 모임이 있었지만 나는 참여를 하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꼭 좀 같이 오라는 H의 당부가 있었다. 아침에 C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 차로 다섯 사람이 가기로 했으니, 그 차를 이용하라고 한다. 약속 장소에 와서 차에 오르니 뒷좌석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옛 동료들이 셋이나 앉아 있다.

 

나를 보고서 누군가 말한다. “세월이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네.” 늙어 보인다는 말이다. 다른 한 여자 동료가 나를 달랜다. “박 교수,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대로야. 세월이 거꾸로 가는가 봐요.” 나는 잠시 기분은 좋지만, 이내 이렇게 말한다. “고맙습니다. 근데 하하, 그 거짓말이 사실입니까?” 어쨌든 옛 동료들은 솔직하다. 오늘은 솔직함이 지배한다.

 

차가 서울 도심을 출발하면서, 우리는 30년 전 함께 일했던 시절의 추억담으로 돌아갔다. 추억담이란 자유스럽다. 그때의 그 시간 그 공간, 그 모든 관계에서 이제는 구애받을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솔직하기까지 하다. 차 뒷자리의 J 여사가 내 주변 사람에 관해서 묻는다. “아, 그 기획부 K 씨는 잘 있나요?” 나도 K를 본 지 오래이어서 딱히 아는 바가 없다. 그냥 잘 모르겠다고 말해 놓고 보니, 너무 건조하게 답한 것 같아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그 친구, 그때 그랬잖아요. 무언가 물 흐르듯 유창하게 이야기할 때는 훅하고 빨려들었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살짝 속은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별 악의 없이 우스개처럼 말했지만, 그렇게 뱉어놓고 보니 나야말로 K에 대해서 살짝 미안해지는 마음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 동감이라는 듯 호응의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맞아! 맞아! 어쩜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지요.”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적극적 반응에 고무되어, K에 대한 말 하나를 덧붙인다. “한때 교육자료 사업을 했던 모양인데, 잘 안 됐던가 봐요.” 여기까지만 하고 말았어야 했다. 근데 뒷자리 사람들이 무언가 K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를 즐기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채었다고나 할까. 좌중의 화제를 내가 주도한다는 도취감 같은 것이 작용했다고나 할까. 나는 또 한 마디를 덧붙인다. “처음에는 잘 되었다는데, 믿음을 주지 못하니까 결국은 접었다지요.” 어라! K를 흠잡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어버렸지. 나는 속으로 나를 쥐어박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말에 크게 고무되었다는 듯이, 그동안 참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터놓는다. 추억담을 빙자하여 K에 대한 험담을 꺼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하다. 서로 맞장구로 화답하며 K의 허물을 들추어, 함께 즐긴다.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은 권장할 일이 못 된다. 이럴 때 험담은 그걸 맨 먼저 꺼낸 자의 책임이 크다. 그런 생각이 묵직하게 내 마음자리에 차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의 죄업(罪業)을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마음으로 짓는 의업(意業) 등, 세 가지로 구분하여 말한다. 오늘 나는 구업 즉, 입으로 짓는 죄업을 쌓았다. 그뿐인가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도 나쁜 구업을 짓게 한 죄까지 있다.

 

02

이 대목에서 ‘진언(眞言)’이라도 외워서 마음 안의 나쁜 기운들을 몰아내고 싶었다. ‘진언’은 불교 용어이다. 글자 뜻 그대로는, ‘참될 진(眞)’에 ‘말씀 언(言)’이니, ‘참된 말’이다. ‘참된 말씀’이니 이는 곧 ‘부처님의 말’이라는 뜻으로 통하게 되었고, 불자들은 이 진언을 외면 술법을 부릴 수 있고 귀신을 쫓아내는 신통한 법력이 생긴다는 믿음을 갖는다. 진언은 ‘주문(呪文)’과 같은 뜻의 말이 되었다.

 

진언이라면 불교 천수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 진언(주문)을 초등학교 때 만화책에서 접했다. 선한 주인공이 악한 상대를 물리치려 할 때, 주문을 거는 장면이면, 어김없이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가 등장했다. 발음하기도 쉽고 리듬감도 있고, 묘한 중독성도 있다. 그래서 놀이를 하거나 장난을 칠 때도 이 주문을 자주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 뜻도 모르고 장난처럼 중얼거렸으니, 일종의 ‘무의미 철자’인 셈이었다.

 

‘수리’는 ‘길상존(吉祥尊, 좋은 조짐을 주실 존자)’을 뜻하고, ‘마하’는 ‘크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하수리’는 ‘대길상존’이라는 뜻이 된다. ‘수수리’는 ‘지극하다’, ‘사바하’는 ‘원만한 성취’의 뜻이다. 즉,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하소서’가 된다. ‘길상존’에서의 ‘존(尊)’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길상스러운 말을 하라’는 의미도 된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말, 아름답고 훌륭하고 멋진 말, 남이 듣기 좋은 말, 칭찬하는 말을 함으로써 나쁜 구업을 씻으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 2016.6.29.). 그래서 이 진언을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 한다. ‘구업(입이 지은 죄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이라는 뜻이다.

 

‘길상스러운 말’의 핵심은 축원과 찬탄이다. 상대가 잘 되기를 축원하고, 그의 사람됨을 찬양하여 높여주는 말을 하는 것, 이것이 이 진언의 참된 의미이다. 상대를 축원하는 말이라면 모두 수리의 뜻이 된다. 예컨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외면서, 상대의 건강을 축원한다면,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많이 건강하세요, 지극히 건강하세요, 그 건강이 영원하세요’라는 뜻을 빌어드린 것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입으로 범했던 죄업을 장하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불자는 경전을 독송할 때, 먼저 이 정구업진언을 외운다. 경전에 담긴 참뜻을 알고, 거짓이 아닌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어리석음을 넘어서 진정한 해탈을 향하기 위해서는, 먼저 입으로 지은 죄업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구업진언을 외움으로써 그 동안의 잘못된 습관, 더럽혀진 언어생활을 깨끗이 씻어 내리는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이 진언의 뜻도 제대로 감득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내 무지와 어두움(未明)도 참으로 아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가 쌓아 온 내 구업의 아득함도 돌아 보였다.

 

03

대부분의 나쁜 구업은 분노나 질투를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설령 그 분노가 공적인 분노라 하더라도, 증오를 선동하고, 미움을 ‘학살의 심리’로 몰고 가게 하는 것이라면, 나쁜 구업을 천지에 쌓는 일이다. 이 다스림이 쉽다면 누군들 위대한 지도자가 되지 못할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상한 인간적 노력을 보여 주는 인물들이 없지 않다.

 

링컨이 죽고 40년 뒤 1905년경, 링컨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었을 때, 그가 쓴 이상한(?) 편지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링컨은 동료에게 화가 나면 ‘뜨거운 편지(hot letter)’라는 걸 쓰곤 했다. 자신의 분노를 솔직하게 토로한 편지였다. 다 쓴 편지는 책상 한쪽에 두고, 분노가 가라앉아, 사태를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링컨은 자신의 편지 하단에, ‘발송 금지 서명 금지’라고 써 놓았다. 분노를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전달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한번은 국방부 장관 스탠턴이 휘하의 장군에게 격노의 감정을 품고 있음을 링컨이 알았다. 스탠턴이 장군을 호출하려 하자, 링컨은 “그런 생각을 편지로써 질책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스탠턴이 편지를 쓴 후 링컨에게 읽어 주었다. 링컨이 말했다.

 

“멋진 편지입니다. 스탠턴 장관, 이제 그 편지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요,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링컨이 말했다. “나 같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집어넣겠습니다.” 스탠턴은 편지 쓰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며, 링컨을 쳐다보았다. 링컨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관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기분도 훨씬 좋아졌고요. 그럼 된 게 아닐까요. 그러니 편지는 버리자는 것입니다.” 스탠턴은 잠시 투덜거렸지만 결국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Doris K. Goodwin, <Leadership: In Turbulent Times>).

 

링컨의 ‘뜨거운 편지’는 일종의 ‘진언 효과’를 내었다 할 수 있다. 나쁜 구업 짓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지 않은가.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Leadership: In Turbulent Times)>의 저자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 Goodwin)은 이를 링컨의 남다른 리더십으로 평가하였다. 나만의 진언 하나씩은 품고 살아야겠다.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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