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 지키며 구석구석 떠날 수 있는 ‘탐험적 여행지’ 추천

2021.07.19 15:40:46

[여름방학 특집]
‘여행’의 의미도 변화시킨 코로나 팬데믹 시대

 

[이정기 여행작가]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의 활동 반경이 많이 줄어들었다. 멀리 가는 여행보다 주변으로의 여행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코로나19는 ‘여행’의 의미도 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살고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캠핑을 하거나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이용한 국내 여행 수요는 오히려 더 많아졌다.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과거에 신경 쓰지 않았던 여행지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탐험적 여행’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여행지를 피한다면, 바이러스도 피하면서 나름의 여행 욕구를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래서 올여름 코로나가 완화된 이후 언제라도 거리 두기를 하며 나들이 가볼 만한 곳들을 지역별로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시간을 잘 골라서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엄숙·장엄한 건축미에 압도되는 경험
서울: 종묘와 길상사

 

서울의 여행지로는 종묘와 길상사를 선택했다. 둘 다 조용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4대 궁궐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이지만 종묘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편이다. 그러나 일단 종묘를 방문해 보면 압도하는 건축물에 스스로 겸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유럽의 거대 성당에 들어왔을 때와 유사한 느낌이 있다. 
 

종묘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맞배지붕의 장엄한 건축미가 우리를 압도한다. 유교에는 혼과 백이라 하여, 혼은 하늘로 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에 따라 사당을 지어 혼을 모시고 무덤을 만들어 백을 모시는 형태로 조상을 모셨다. 이곳 종묘는 혼이 깃든 신주가 있는 곳인 만큼 엄숙하고 장엄한 느낌이 든다.
 

길상사는 엄밀히 말하면 전통 사찰은 아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받은 김영한 님(자야)이 시주한 사찰로, 원래는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개축 없이 그대로 사찰로 사용한 것이라 더 이색적이다. 길상사의 배경에는 백석과 자야의 슬픈 러브스토리가 담겨 있다. 한가한 시간에 방문해 그들의 애틋한 스토리를 찾아보기로 하자. 

 

 

 

연꽃을 바라보며 사색하기 좋은 곳
충청남도: 궁남지와 외암 민속마을

 

충남에서는 궁남지와 외암 민속마을을 찾아보면 좋겠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 34년(634년) 때 궁궐 남쪽에 만든 연못으로 삼국사기 기록에 따라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에서 수없이 많은 연꽃들을 볼 수 있으며 넓은 주변 공간이 조성돼 있어 나들이와 산책을 하기에 괜찮다.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 있으며, 기왓조각이 흩어진 건물터도 발견됐다. 특히 매년 봄부터 여름이면 연꽃들로 가득한 연못 정원이 된다. 연꽃은 혼탁한 환경에 자라지만 흔들림 없이 예쁜 꽃을 피워낸다. 연꽃은 꽃

과 열매가 동시에 피는데, 이는 불교에서 인과의 진리를 의미한다고 하니 사색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일 듯하다.
 

아산에 위치한 외암 민속마을은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다. 그래서 조용히 산책하기에 좋다. 외암 민속마을은 500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강 씨와 목 씨 등이 정착해 마을을 이뤘으며, 조선 명종 이후 예안이씨가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예안이씨 이정의 6대손인 이간의 호를 따서 ‘외암’이라 부른다. 아름다운 한옥의 멋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성리학을 완성한 이황의 흔적을 찾아
경상북도: 도산서원과 주산지

 

 

경북에는 안동의 도산서원과 청송의 주산지가 여행하기에 좋다. 1550년 3칸 규모로 검소하게 건축된 도산서원은 조선의 성리학을 완성한 대학자 이황이 직접 설계했으며, 이황의 사후 제자들이 도산서원으로 증축했다. 굽이치는 강변의 배산임수 지역이며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편이다. 성리학적 사상에 따라 소박함과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강조돼 있는 곳이니 사색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청송군의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길이 100m의 저수지이며 주변에는 100년이 넘는 왕버들 군락이 있다. 저수지 관람은 해뜨기 직전이나 해지기 직전의 빛을 담아야 더욱 아름답다. 이른 새벽 이곳에 간다면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리고 오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추천한다.

 

 

말의 귀를 닮은 신비의 명산과 삼림욕
전라북도: 마이산과 삼나무 편백숲

 

전북은 진안의 마이산과 고창의 축령산 삼나무 편백숲을 추천한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특이한 모양의 암석이 말의 귀를 닮았다. 1억 년 전, 이곳은 담수호였으나 7000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라 현재의 형태가 됐다. 이런 현상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경우다. 태종 이방원이 ‘말의 귀를 닮았다’라고 말한 것이 ‘마이산’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됐다. 마이산의 암석을 보면 구멍이 나 있는 ‘타포니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타포니 현상’은 보통 해안가의 절벽에 바람과 침식작용으로 나타난다. 미슐랭 그린가이드에 별 세

개로 선정된 신비의 명산으로, 비가 많이 오는 날 암석 위로 떨어지는 자연폭포의 모습이 볼만하다. 주차장에서 산책하듯 마이산 탑사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축령산 삼나무 편백숲은 모암리 방향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오는 편백숲으로, 3km의 숲길을 걸으면 내 몸이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건강해지는 삼림욕을 할 수가 있다. 그리 힘들지 않은 걷기를 해보며 이번 기회에 평소에 하지 못한 걷기 운동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편백에는 피톤치드라는 천연 항균물질이 있어 세균에 대한 살균이 뛰어나다고 한다.

 

예약해야 갈 수 있는 민통선 안 탐방
강원도: 펀치볼 둘레길과 청령포

 


강원도는 양구 펀치볼 둘레길과 영월 청령포가 갈만하다. 양구 펀치볼은 오지인 데다가 민통선 안쪽으로 예약을 통해 하루 200명만 탐방을 허용한다. 예약을 할 수만 있다면 코로나를 피한 최적의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양구군에 위치한 해발 500m 가량의 고지대 분지로, 과거 6.25 전쟁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미 종군기자가 펀치(PUNCH·화채), 볼(BOWL·그릇)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했다. 예약은 3일 전까지 가능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 1.5단계 기준 회당 약 30명 미만씩 운영한다고 한다.
 

영월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다. 강 사이에 섬이 하나 있는데 단종은 이곳에 유배됐다. 세조의 정난으로 단종이 왕이 된 지 2개월 만에 삼촌이었던 세조(수양대군)에 의해 유배된 것이다. 코로나로 해외나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그 마음을 단종을 생각하며 사색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물길이 휘감아 돌아 세상과 더욱 단절되었던 비운의 장소. 단종이 거닐었던 그 길을 걸어보고 태생적 인간의 외로움과 인생의 무상함을 깊이 느껴보자.
 

이정기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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