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희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책임연구원] 지난 4월,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속세 납부 계획이 발표됐다. 상속재산 26조 원에, 상속세만 12조 원. 눈이 휘둥그레지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런데 액수는 다소 적을지언정, 상속하고 증여하려는 행동 자체는 우리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입수한 ‘2015~2019년 상속·증여 분위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상속·증여재산 규모는 약 113조 원으로 2015년의 약 80조 원보다 41.8%나 증가했다. 정신적 가치든, 재물이든, 후대에 무엇인가 남기려 애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수십조 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중히 모은 재산을 물려주는 만큼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전략을 고심해야 한다. 절세는 그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중·장년층이 고려해야 할, 상속세와 증여세에 관한 이모저모를 풀어 본다.
상속세와 증여세, 어떤 차이가 있나?
우선 상속세와 증여세에 관해 간단히 짚어보자. 상속세란 고인이 남긴 재산에 붙는 세금이고, 증여세는 증여를 받은 사람이 그 이득에 대해 내는 세금이다. 모두 상속·증여재산에서 공제항목을 차감하고, 남은 금액에 세율을 곱해 계산한다. 심지어 세율 또한 10~50%로 같다. 다만, 상속·증여재산에서 공제하는 금액은 두 세금 간 차이가 있다. 상속세는 고인의 배우자가 살아있을 경우, 최소 10억 원이 공제되며(일괄공제+배우자공제) 그렇지 않아도 최소 5억 원이 공제된다(일괄공제). 증여세는 대상에 따라 다른데, 배우자의 경우는 6억 원, 직계 존·비속의 경우 5000만 원을 공제한다. 다만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하면 2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공제금액이 많을수록 세금이 줄어들므로 일단 증여보다는 상속이 더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증여도 장점이 있다. 유언(장)에 의존해야 하는 상속과 달리, 증여는 별도의 절차 없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 만약 물려줄 재산이 아주 많다면, 생전 증여는 사후 상속세를 절감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상속세는 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이 올라가는 누진 세제인데, 증여를 통해 사람과 시점별로 재산을 분산하면 상속재산 자체가 줄어들어 한계세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단, 상속 시점에서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은 모두 상속재산으로 간주하므로, 증여를 통해 상속세를 절감하려면 시점을 잘 조절해야 한다.
생전 상속설계로 자녀 부담 덜어주자
본인의 재산 상황을 자녀에게 미주알고주알 알려주는 부모는 드물 것이다. 유명 연예인조차 돌아가신 부모 빚을 떠안는 사례가 종종 보도된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자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부담이 될 수 있다. 퇴직 후에는 이르다 생각하지 말고 상속설계를 해 보자.
기본은 내가 가진 재산부터 파악하는 것이다. 예금, 부동산 등 자산뿐만 아니라 채무도 꼼꼼히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한편 이미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처분한 자산도 영수증이나 계약서, 이체확인서 등 증빙서류를 잘 보관해 둬야 한다. 상속개시일 기준 1년 이내에 처분하거나 인출한 금액이 2억 원을 초과하거나, 2년 기준 5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그 용처를 객관적·구체적으로 소명할 수 없다면 금액 일부가 상속재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산 현황을 잘 정리해두면 본인 사후 가족들이 상속재산 때문에 우왕좌왕할 일이 없다. 기한 내에 상속 포기나 한정 상속 판단을 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상속재산이 10억 원을 초과한다면(배우자가 없는 경우 5억 원) 미리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해 상속세를 낮춰볼 수 있다. 단, 이때 증여세를 조금이나마 절감하려면 10년 단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증여세는 동일인으로부터 10년 이내에 받은 재산을 합쳐 과세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계비속(자녀, 손자녀 등)에게 증여할 때 부부는 동일인으로 간주하므로, 남편 또는 아내가 이미 자녀에게 증여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어서 가족들이 상속세를 내기 곤란할 것 같다면, 자산 일부를 현금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상속설계는 은퇴 후 재무설계와 통하는 면이 있다. 자산과 채무 현황을 잘 정리해두면, 상속 여력뿐 아니라 은퇴자산을 충분히 모았는지 점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부담부 증여, 양도소득세 고려해야
증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대체로 현금 증여는 용돈이나 생활비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있기에, 의도적으로 배우자나 자녀에게 부를 물려주려는 방법으로는 부동산 증여가 더욱 빈번할 것이다. 이때 증여세를 절감하기 위한 ‘꿀팁’처럼 전수되는 수법이 바로 ‘부담부 증여’다.
부담부 증여란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보증금 같은 채무와 자산을 함께 증여하는 것을 말한다. 증여 재산가액에서 채무액이 차감되므로 부담해야 할 증여세도 줄어든다는 점이 절세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설명이다. 증여받은 쪽의 증여세 부담은 줄어도 증여한 쪽은 채무에 해당하는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빚을 다른 사람에게 넘김으로써 더는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이득에 대한 세금이다.
따라서 부담부 증여의 절세효과를 따지려면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일단 모두 누진 세제이므로, 주택의 가치가 증여와 양도로 쪼개지면서 한계세율이 낮아져 세 부담이 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본인이 다주택자이며 증여하는 주택도 조정대상지역 내에 있다면, 조금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2주택자의 경우 20%P,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경우 30%P나 양도소득세가 중과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도차익에 적용되는 세율과 증여세에 적용되는 세율을 비교한 뒤, 부담부 증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 어디까지가 증여?
부모와 자식 간 경제적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증여가 이뤄지기도 한다. 부모가 성년 자녀의 생활비나 학자금을 대 주거나, 결혼 비용을 지원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럴 때도 증여세를 내야 할까? 정답은 상황별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용돈, 생활비, 교육비 차원의 증여는 자녀의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가 핵심이다. 소득이 있는 성년 자녀라면 이렇게 받은 돈도 증여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력이 없는 스무 살 자녀는 학자금을 지원해도 세 부담이 없지만, 이미 직장에 다니고 있는 서른 살 자녀는 학자금을 받을 경우 증여세 납부 대상이 된다. 이는 조부모가 손자·손녀에게 용돈이나 교육비를 지원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결혼하는 성인 자녀의 혼수나 결혼 비용을 지원할 때는 어떨까? 통상 혼수에는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으나, 고가의 차량이나 귀금속을 제공할 때는 증여세가 과세 될 수 있다. 결혼한 자녀에게 전세자금을 지원하거나 주택을 사들여 주는 것은 통상대로 증여세 과세 대상이다.
한편 결혼식에서 받은 축의금의 경우, 누구의 명의로 들어온 돈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부모 앞으로 들어온 축의금을 자녀가 사용한다면, 증여가 되므로 증여세를 내야 한다.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본인 앞으로 들어온 돈은 본인이 직접 써야 세금 면에서 제일 깔끔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