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그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끊임없이 달려야 겨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딜 수 있다. 내가 살아온 60여 년의 세월 동안 역동적이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그러나 인구와 기후를 비롯한 생태계, AI를 비롯한 에듀테크,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교육 및 교육자에 대한 기대와 자세 등에 있어 최근 몇 년의 변화 속도는 붉은 여왕의 나라보다 더 빠른 것 같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교육자가 변화를 선도하기보다는 힘들게 좇아가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비록 모두가 변화에 적응하느라 허덕이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미래를 살아갈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책임을 지고 있는 교육자들은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교육을 선도해야 한다. 교육자가 이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자기 학습, 즉, 연수다.
II. 연수 되찾기
1. 연수의 의미
연수(硏修)의 사전적 정의는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음”이다(표준국어대사전).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연수의 주체는 연수를 하는 사람, 즉, 연수생이다. 이는 연구(硏究)의 주체가 연구자인 것과 같다. 그런데 연구의 경우와 달리 연수는 연수를 시키는 사람이 주체이고, ‘연수자’는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보통 사용되고 있는 “연수 받으러 간다.”는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연수라는 용어는 우리가 과거부터 사용하던 훈련이라는 용어와 달리 서양의 용어 ‘training’을 번역한 것이다. 가령 교사 연수는 영어의 ‘teacher training’을 번역한 것이다. 영영사전에 보면 ‘training’은 “특정 직업이나 활동에 필요한 기술(skill.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지식, 기술, 태도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을 학습하는 과정”이다. 즉, 연수는 ‘학습 과정’인데 ‘특정 직업이나 활동에 필요한 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에 초점을 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도 당연히 주체는 학습자다. 누구나 다 아는 연수라는 용어를 이렇게 분석하고 있는 이유는 용어의 본뜻을 되찾음으로써 연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탐색하기 위해서다.
연수(硏修)와 유사 한자어인 연수(練修. 익힐 련, 닦을 수)의 뜻은 “인격, 기술, 학문 따위를 닦아서 단련함”(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되어 있어 연수(硏修)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기업 종사자 연수의 경우와 달리 의사나 교사와 같은 전문직종 연수의 경우에는 연수(硏修)라고만 쓴다. 그 안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학문 용어는 서구의 용어를 우리가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 번역한 것을 들여와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서구 학문 용어의 번역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teacher training’을 연수(硏修)로 번역한 것은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기 전에 배우는 사람(*연구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수양(修養)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가 이루어졌다. 교원대 김용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연유로 일본인들은 연구와 수양의 앞글자를 모아 ‘연수(硏修)’로 번역했다.
2. 연수의 주체
연수의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밝히고자 한 것은 첫째, 주체가 연수원이나 기관이 아니라 연수생이라는 점이다. 초·중등학생이 주체인 학습에서도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표현은 어린 학생이 아니라 성인학습자에게 적합한 것이다. 성인의 경우에는 자기가 주체가 되지 않을 경우 학습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특히나 의사나 교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의 연수는 성인학습자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자기주도적 학습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는 활동이다. 여기에 강제성이 개입되는 순간 연수는 왜곡된다.
3. 연수기관의 역할
연수의 의미에 비춰볼 때 연수기관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교원연수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나아가 필요한 제반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원이 갖춰야 할 새로운 지식·기술·태도가 무엇인지, 이들이 이해하고 적응해야 할 여건과 환경 변화는 무엇인지, 이들이 전문직종에 종사하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연수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밝혀 관련 프로그램을 개설·제공하고, 나아가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추가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타직종 종사자들과 함께 하는 연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변호사·성직자 등의 전통적인 전문직종 종사자, 일반 공무원, 대기업을 포함한 에듀테크 기업 종사자, 기타 서비스업 종사자들과 함께 하는 연수가 필요하다. 타직종 종사자들과 함께 하는 연수는 교원들이 교직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해당 직종 종사자들의 근무처에서 인턴처럼 근무해 보는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보탬이 될 것이다.
하나 더 필요한 역할이 있다. 의무연수의 내실화를 기하는 것이다. 교원은 자기주도적 연수와 함께 법이 정한 의무연수도 해야 한다. 의무연수는 주도적 연수와 달리 교원의 동기를 저하시키고, 시간만 허비할 우려가 크다. 연수기관은 의무연수 프로그램 개발, 참여 동기 부여, 만족도 제고 등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자기연찬에 무관심한 교원들이 연수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도 연수기관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4. 연수 목적과 내용
연수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것을 통해 하나 더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연수가 기술이나 지식 제공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수는 특히 수양(修養)을 강조한 용어라는 점에 나도 공감한다. 교직 종사자는 끝없는 자기 수양을 필요로 한다. 수양은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표준국어대사전). 특히 ‘품성과 도덕’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이는 동양의 ‘스승’의 의미에 부합한다. 연수의 한 축이 수양이므로, 특정 기술이나 지식을 연마하는 연수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수양의 목적이 반영되고 내용이 포함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기 수양의 기회를 제공하는 연수 프로그램 구성 및 운영에 더 내실을 기해야 한다.
스승에 대해 정의해 놓은 가장 오래된 글 중의 하나인 한유의 ‘사설(師說)’에 보면 “스승은 도를 전하고, 도를 익히는 데 필요한 공부를 시키며, 의혹을 풀어주는(傳道授業解惑) 사람”이다. 이처럼 스승에 대한 최초의 기록에도 스승이란 어느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능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와 함께 필요한 제반 능력을 길러 주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는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스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정의는 요새 유행하는 ‘멘토’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으며, 멘토보다 더 넓고 깊은 뜻을 가진 우리말이 바로 ‘스승’임을 알려 준다. 따라서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침과 관련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가르침의 본질이 특정 지식(교과 내용)의 전수가 아니라 도의 전파, 즉,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른 밈의 전파활동이라는 점이다. 이를 깨닫고 가르침의 본질에 맞게 가르치는 활동을 할 때 가르침은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라 커다란 즐거움이 될 것이다.
III. 나오며
가르치는 교사가 공부의 기쁨(學習悅)을 유지할 때 학생들도 교사를 통해 행복한 배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은 공부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하고 그를 자신의 생계수단으로 삼는다면 이는 죄를 짓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선생님의 모습은 ‘영원한 학생’인데, 이는 지속적인 자기 연수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
미래사회에서 교사는 이론 소비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론 생산자로서의 역량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론 생산 자격증에 해당하는 박사학위를 취득할 필요도 있다. 아니면 최소한 석사학위 취득을 통해 현장연구 수행 역량이라도 갖추어야 한다. 제대로 된 학위 취득 과정은 체계적이며 집중적인 연수임을 교육계가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