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교언영색(巧言令色) 경계해야

2022.02.22 09:39:30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말이 있다. 바로 포퓰리즘(populism)이다. 우리말 사전에 의하면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형태. 대중을 동원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로 대중주의라고도 하며 엘리트주의와 상대되는 개념’이라 정의되어 있다. 이는 얄팍한 정치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실체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현재 2022년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화려한 기술만이 난무한다. 이는 깨어있는 민주시민들이 가장 경계할 대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양의 고전 <도덕경> 56장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구절이 나온다. 진정으로 도를 아는 사람은 도에 대해 말하지 않고,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함부로 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위(無爲)와 역설(逆說)로 대표되는 노자 철학을 대변한다. 반면에 유위(有爲·적극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공자는 말을 통해 가르침을 주려 했다. 하지만 공자 역시 말을 잘하기보다는 신중하게 할 것을 강조했다. 말은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과 소양도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말은 그 사람 자신이다’라는 명제가 된다. <논어>의 마지막 문장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不知言 無以知人也)”는 역설적으로 이를 잘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지혜롭고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말을 아낀다. 왜냐면 배움 앞에서 부족한 자신을 알기에 겸손한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다. 가르침에 앞서 반드시 실천함으로써 직접 보여주려 한다. 왜냐면 실천이 따르지 않는 가르침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온종일 떠들고 다닌다. 자신이 아는 알량한 지식으로 대중을 가르치려 들고 소위 선생 노릇을 하려 한다. 당연히 제대로 된 가르침일 수 없다. 이는 바로 알량한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정치인들의 속성과 다름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대선 후보들의 공언(空言)을 수없이 목격하고 분노해 왔다. 이는 마치 화장실에 갈 때의 마음과 볼일 보고 난 후의 마음이 전혀 딴판인 모습과 같다. 이를 경계하듯이 <논어> '이인편'에 실린 “옛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군자는 말에 대해서는 모자란 듯하고 행동에 대해서는 민첩하려고 한다” 등은 모두 말보다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위정편'에서는 “먼저 실천하고 그다음에 말하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스스로 먼저 실천한 다음에야 그에 대해 말할 자격이 생긴다는 통렬한 가르침이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믿음을 가장 중요시 해야 한다. 한자 믿을 ‘신(信)’을 보자. 사람(人)과 말(言)로 구성된 것에서 보듯 믿음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존립하는 근거로 세 가지(군사, 식량, 믿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믿음이라 설명한 공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사람이 진실해야 하는 것처럼 말 역시 거짓이어서는 안 된다. 말을 교묘하게 해서 듣는 사람을 현혹하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잘 알려진 “교묘한 말을 하고 꾸미는 얼굴을 한 사람 가운데 인한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는 구절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속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음흉한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화려하게 꾸며서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동을 경계해야 함이다.

 

공자는 “인한 사람은 그 말을 참는다(仁者 其言也訒)”고 했다. 한자 ‘인(訒)’은 ‘더듬다’ ‘둔하다’는 뜻으로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지 말고 마치 말을 더듬는 사람처럼 하라는 것이다. 말(言) 옆에 칼날(刃)이 있는 글자처럼 말이란 자신을 해치는 칼과 같다는 경계의 교훈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비굴할 정도로 아부를 하고 과도하게 몸을 굽히며 예를 표하지만 그런 행동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국민에게 잘 보여 환심을 사려는 의도, 진정한 모습을 감추려는 가식, 실력이 아닌 관계에 의존하려는 얄팍함이 바로 그것이다. 교언영색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수월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까지만이다. 상황이 변해서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되면 즉시 얼굴을 바꾼다. 이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 왔다. 대선 공약이 얼마나 충실하게 지켜졌는지 우리 정치사에서 찾아보라. 이제 우리는 교언영색으로 국민을 대하는 정치인을 멀리하고 경계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말만 듣고 그를 판단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일만 남는다. 

전재학 인천 세원고 교감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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