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신념 심어준 말 한마디
학기 초의 일이다. 올해 전학 온 고등학교 1학년 학생 A는 자기에게 공황장애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초·중학교 시절 경직형 뇌성마비로 발음이 어눌하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친구나 교사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그가 어느 날 활동보조인에게 들은 말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주로 날숨에 발음하는 일반인과 달리 들숨, 날숨에 말하는 A가 대화 도중 숨차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너 공황장애구나"라고 말한 게 잘못된 신념을 심어준 것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공황장애가 아니라고 진단했지만, A는 활동보조인 말과 검색 결과를 믿고 잘못된 신념으로 굳어져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며 학부모가 안타까워했다. 담임인 내가 보기에도 공황장애라기보다는 약자인 A의 방어체계이자, 사랑과 애정을 바라는 신호로 보였다.
알버트 엘리스가 말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EBT, 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가 떠올랐다. REBT는 인간을 이루는 세 가지 핵심 영역인 '인지', '정서', '행동'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인지가 핵심이 되어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강조한 이론이다. 그는 비합리적 신념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봤다.
이에 정확한 진단과 평가를 바탕으로 A에게 공황장애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동료 선생님들과도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일관된 지도를 해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A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공황장애가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자기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다며, 선생님께 꼭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너 공황장애 아니야"라는 확언은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대신 "힘들었겠구나! 그런데 너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다 네 편이야"라고 인정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A가 신념체계를 자연스럽게 바꿔나가도록 돕기로 했다.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인격 형성’이다. REBT에서 부정확한 언어가 왜곡된 사고 과정의 원인이 된다고 보듯 언어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언어의 긍정적 사용은 변화를 불러온다. “나는 ~할 수 없어요!"라고 호소하는 학생에게 ”너는 ~를 하지 않은 것이지"라고 표현을 바꿔주면, 무력감이나 자기비하에서 벗어나 긍정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긍정적·발전적 소통의 길로
고대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은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해 불안해진다’고 했다.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의 신념체계가 우리의 감정과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코로나 팬더믹의 장기화로 소통이 더 어려워진 지금 상황에서 사실 자체보다는 사실에 대한 생각과 사고, 신념이 더 크게 작용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여있다. 부정적이고 왜곡된 생각의 프레임보다는 긍정적인 소통과 발전의 프레임에서 함께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바라본다.